[聖地巡禮(성지순례)] (31) 平坦(평탄)한 「眞福八端(진복팔단)」山(산)
聖堂·修女院도 있고
발행일1963-10-13 [제394호, 3면]
거기서 떠나 진복팔단(眞福八端) 산에 갔다. 그다지 높지 않은 민듯하게 펑퍼짐한 산이다. 풀이 성글하게 자랐다가 말라버렸고 수녀원 부근은 깨끗하게 개간되어 있다. 돌을 다듬고 「시멘트」를 갈고 해서 제법 새뜻하게 꾸며진 성당에 들어가 주교 한 분이 미사를 올리고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참례했다.
『미사는 각자 사사로히 지내고 순방(巡訪)할 곳이나 단 한 곳이라도 더 순방할 일이지 금쪽같이 아껴야 할 이 시간을 어쩌자고 이렇게 낭비하려는고?』라고 나 혼자 불만이었으나 미사가 시작되고부터는 생각을 달리했다. 이곳은 예수께서 산상수훈(山上垂訓)을 하신 곳이다. 산상수훈하면 주 그리스도의 사상이 담뿍 담겨져 있는 것으로도 고마운 것이지만 수식(修飾)이랄까 웅변이랄까의 견지(見地)에서도 매우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다. 더우기 진복팔단을 우리에게 선포하신 곳이다.
진복(眞福)! 그렇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고 진실한 행복만이 인간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 진실한 행복을 얻기 전에는 인간은 언제나 괴로히 불안에 헤매는 것이다. 완전하고 안정한 참된 행복에의 갈구는 하나도 제외되지 않는 모든 인간의 소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 생을 얻어 태어난 인간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참된 행복을 변함 없이 누려본 사람이 있었던가 한 사람도 없었다. 행복을 추구했으되 고초가 앞섰고 행복이 닥쳤는가 생각될 때 이미 그것은 사라진다. 하루를 두고라도 노고와 근심 번뇌와 걱정, 아픔 슬픔 미안 무안 무료(無聊) 불안 공포 위축 실증 염증 그리움 외로움 귀찮음 등등 불교에서는 「백8번뇌」라 한다지만 잘게 나누면 백8만 되겠느냐? 이것들 중 하나에도 걸리지 않고 단 하루를 살 수 있는 사람도 어렵겠거널 완전한 행복을 차지한 자 이 세상에 그 누가 있겠는가? 대소장단 심천(深淺)의 차이는 있겠지만 위에 열거한 여러가지 이름의 고통은 아담 범명후(犯命後) 모든 사람이 해치고 지나가야 할 불행한 「장글」의 필연한 부수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 기어이 행복해야겠다. 만일 행복할 수 없다면 우리의 갈망이 너무나 애처럽고 우리의 노고가 너무나 허무하고 우리의 위치가 너무나 불쌍하지 않는가?
여기에 대철(大哲) 아오스딩 성인은 과감 적절히 우리를 깨우치는 말씀으로 천주께 호소하신다. 『천주여 당신을 문(問)하게끔 우리를 조성하셨으니 우리가 당신 안에 쉴 때까지 우리 마음은 불안하도소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애초 천주를 섬기게끔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천주의 계명을 거스림으로, 그 창조된 목적에 어긋나는 생활을 해서 지향(指向)된 괴도를 잃고 「쟝글」의 칙녕쿨처럼 얼키고 설켜, 갈등과 무질서와 죄악이 솟앙나 고통에 말려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행복되려면 먼저 죄악이 제거되어야 하고 죄악이 없는 곳에서만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죄악이 없는 곳! 이것은 오로지 하늘나라 뿐이다. 천당에 갔을 때 우리의 설움은 비로서 모두 가시워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사 중 열렬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