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信徒(평신도) 눈에 비친 美國(미국) 겉 핥기錄(록) - 美國(미국) 가톨릭 안팎 (12) 미국 회장님
발행일1964-05-03 [제421호, 3면]
우리 한국에서 보는 바와 같은 「회장님」이 미국엔 없다.
우리나라 「회장님」이란, 신부님을 돕는, 범위도 넓고 깊이도 어지간한 특수제도 같다.
미국의 대개의 성당에는 어른복사가 있다. 이분이 곧 성당의 제의실을 간추리기도하고, 제대 정비도 또 성당 종치는 일, 심지어는 본당사무실 일까지 돌보는 곳도 있다.
물론 직업적으로 한다.
허지만 미국 본당에서 한국의 「회장님」같은 구실을 하는 분이 여럿 있긴하다.
연보를 걷는 분이다. 그러니까 굳이 회장님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글쎄 「연보회장」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한국에서처럼 교우들한테 연보 주머닐 돌리고, 나중에 그 돈의 뒷처리까지 해주는 일은 없다.
연보금을 받아들인 다음에 제대 양옆 궤짝에 예물로서 바쳐진 다음엔 이 「연보아저씨」의 일은 끝난다.
미사후 신부님 방이나 사무실로 그 연보를 따라들어가 연보를 세어드린다든가 또는 그 돈 처리를 한다든가의 일을 일체 안한다.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본당신부님 자신이 회장님들의 간섭을 받고자 회장님들의 직원을 확대시켜 드리고 있는 곳도 있을 정도지만-.
『난 정말 골치아프게 돈을 일일이 다루기 싫어, 회장님들께 다 맡겼디. 이 본당 자치회서 돈 계산부터 사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획예산까지 세워 본당신부의 허락아래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새벽 미사에 나와 미사경본 읽기, 임종대세주기, 초상집 방문, 연도 드리기, 연보 걷기, 연보세기, 본당사업계획 및 추진하기… 실로 우리 회장님의 일 범위는 한계가 뚜렷치 않을 정도로 넓고 깊다.
회장님들은 교회일이라면 덮어놓고 열심히 해야만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회장」의 본분으로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개인주의가 발달된 미국에서는 회장의 하는 일의 한계가 명백한듯이 보였다.
연보만 거두어서 제대앞에 바치면 그만이다. 돈을 세는 것도 본당신부 책임하에 센다. 보좌신부님도 돈 세는 일을 돕긴해도 돈의 집행에 대해선 오직 본당신부님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다. 물론 본당신부님은 1년에 한번 총 결산서를 교우 앞에서 서면과 구두로 공개 보고하고 교구 당국에도 보고하게 되어있다.
한국처럼 평신도삽도직의 구실을 좀 덜하는 미국의 교우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부님의 본당운영을 의심하거나 신부님의 사생활을 간섭하려는 교우들은 별로 없다.
그것은 개인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남의 사생활은 침범하지 않는 것을 상식적인 「에티케트」로 삼는 나라니까.
그러니까 교회윶지이고 회장이라고 해서 본당신부님의 본당운영방침에 직접 관여나 비판을 정면으로 하는 경우는 드문듯 하다.
『그야 물론 본당신부님이 회장께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 왔을땐, 우리들 의견을 말하긴 합니다만… 우리가 일일이 간섭을 하면 신부님도 일을 못할거에요. 돕는다는게 까딱 잘못하면 훼방꾼이 되기 싶단 말에요.』
미사를 마치고 난뒤 연보를 걷고있던 미국회장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자기 자가용을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태서 주일날도 사제관은 쓸쓸하기만 한가보다. 그래도 사제관 안의 신부님들은 연보금 정리와 고해성사 주는 일로 바쁘기만 하다.
『일요일만 되면 더욱 바쁜 신부님께 하찮은 잡담을 늘어놓기 위해 신부님 방을 뚜들겨서야 되겠어요?』하는 것이 미국 교우들이 평신도로서 본당신부를 돕는 길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도 본당신부님을 돕는 일의 한계만큼은 뚜렷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적극적인 협조자로서도 말이다. 평신도사도직의 분야는 사회대중속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