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48) 연극 ①
발행일1964-05-03 [제421호, 4면]
『왜 그러냐?』
아버지는 내 앞에 와서 묻는다.
배를 움켜 쥐고 나는 아픈 시늉을 했다.
『다쳤니?』
아버지는 비교적 냉정하게 묻는다.
『아유, 아유!』
못견디는 듯이 비명을 올렸다.
이때 복순이도 뛰어나와
『왜 그러우?』
하며 팔을 잡고 일으키려고 한다.
서있던 아버지도 손을 내밀어 팔을 부축한다.
건너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방바닥에 몸을 내던지듯이 엎드러졌다.
『어디가 아프니, 배가 아프니?』
아버지의 얼굴에는 성난 감정이 절반과 걱정하는 빛이 절반 엿보였다. 웬만큼 아프다고 해서는 화풀이를 받을 것 같기에
『아야 아야! 아야아…』
하고 몸부림을 치며 배를 움켜잡았다.
『이년, 밖에서 무얼 쳐먹었느냐?』
넘겨 잡고 소리치는 아버지의 음성을 날카로왔다.
『아무것도, 머 …먹은거 없어요! 아야야!』
배가 뒤 틀리는 시늉을 계속했다.
『거짓말 말아! 먹지도 않은 배가 왜 아프냐!』
아버지는 내 머리곁에서 의심하는 눈초리를 던지고 있다.
어설피 연극을 해서는 들키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픈걸 억지로 참는 시늉을 심각히 연출했다.
『몹시 아픈가 보아요!』
복순이가 걱정스러이 말하고 있다.
『의사 선생님이라도 불러올까요?』
『……』
그만 두라고 소리치지 않는 것을 보니 연극은 효과를 낸 것 같디고 했다.
『배가 어떻게 아프니?』
아버지의 음성은 아깝돠는 부드러웠다.
『창자가 뒤틀리는 것만…』
말끝을 맺지 않고 나는 몸부림을 쳤다.
『어디 갔다가 이제 돌아오는거냐?』
『친구가 사준 국수 한그릇을 먹고… 얼마 안있으니, 배가 아파서… 친구네 집에 여태 누워있었에요…』
『친구가 누구니?』
『김민숙이란 아이야요…』
나오는대로 이름을 둘러냈다.
『그럼 그 국수 먹은게 잘못되었다! 미친년…』
하면서, 아버지는 안방에 가더니 밖으로 나간다.
『아버지 어디 가시니?』
얼굴을 들고 복순이에게 살작 물었다.
『아마 약사러 가셨나봐!』
연극을 정지하고 나는 엎드린채 조용히 있었다.
『좀 덜 해?』
복순이가 묻는다.
『이부자리 좀 펴다오…』
복순이가 펴준 이불을 푹 덮고 속으로는 웃었다.
조금 후에 아버지는 약병을 사들고 돌아왔다. 무슨 약인지 몰랐으나 주는대로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아프지도 않은 배안에 약이 들어간 것이 불안스럽기도 했다.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는 연극을 계속했다. 그리고 차차 덜 아픈듯이 몸은 조용히 하고 얼굴만 찡그렸다.
『좀 덜하냐?』
『네에…』
『진통제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아픈게 가실거다!』
아버지의 말대로 얼마후에는 아픔에서 해방된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꼬치꼬치 아버지는 묻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물음에도 먼저 말한 이상의 대답은 안했다.
『미친년, 싸돌아 다니기를 좋아하니까 병이 생긴거다!』
이것이 떠날때의 아버지의 「세리프」였다.
아버지의 눈을 벗어난 나는 입을 커다랗게 벌이고 웃었다. 자꾸 나오는 웃음을 질끈 깨물어 버렸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내몸은 극히 건강했다.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울을 보니 어제 불고기를 먹은 덕분인지 두 볼은 복숭아 모양 불룩해 있었다.
『어떠냐?』
아머지가 들여다 보고 묻는다.
『괜찮아요.』
얼굴을 숨기듯이 하고 마루에 나가서, 아버지의 구두를 닦았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하는 일이었다.
구두닦기도 아침에 생각해낸 하나의 「아이디어」였다. 어제 일을 추궁당하지 않으려고 무엇인가 아버지의 환심을 끄는 일을 하리라고 계획을 세웠다.
표면으로는 여느때와 같이 아버지의 표정은 굳어 있었으나 과히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구두닦이 아이 모양 침을 택택 뱉아가며 닦았다. 침을 뱉을때에는 아버지의 굴레에 반항하는 내 기분이 섞이어 들었다.
『잠깐 이리 오너라!』
구두를 다 닦자 아버지는 나를 안방으로 불러 들였다.
『앞으로 내 허락없이 나가면 정말 용서 안할테니 그런줄 알아라!』
명령은 엄했으나 비교적 음성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의 말은 벽에 던진 공이 던진 사람 쪽으로 되돌아가듯이 나의 고막에 부딪쳤을뿐 나는 그 반마디도 박지를 안했다.
며칠후에 삼학년 신학기에 들어서는데, 아버지는 이맛살에 깊은 주름을 잡고 교과서 값을 계산하더니, 책을 사왔다.
『이년아, 너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한다! 알았지?』
그는 책 보다리를 내앞에 던지며 말했다.
『수고하셨읍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꾸벅했다. 이런말도 나로서는 처음이었다.
물론 입끝으로 한 말이었다. 연극을 하면 되는거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전에는 쥐어 까도 안나오던 그런 말이 입끝에서 가볍게 만들어 졋다.
나는 이때 말이란 속에서 나오는 것과 입끝에서 만들어지는 것과 두 종류가 있는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이러한 계교를 내가 몸에 지녔다는 것은 나의 인간성을 불순하게 하는 것임을 이 순간은 깨닫지 모샇고 나는 오히려 내가 하나의 「푸라스」되는 지각을 가졌다고 자만했었다.
이 버릇은 학교에 가서도 고개를 들었다.
그날은 편지연락으로 딕슨과 「뮤직홀」에서 만날 날인데 시간은 하오 네시였다. 세시반쯤 공부가 끝나고 삼십분 사이에 갈 예정이었는데 공부가 끝나자 교내 「연극콩쿨」이 있다고 나는 그 「멤버」의 한 사람으로 뽑혀 연극연습을 해야하게 되었다.
나는 집에서 어느날 밤에 했듯이 금방 앞으로 고꾸라지며 배아픈 시욕을 했다. 의무실에서 소화제 한봉지를 얻어 먹고는 혼자 해방이 되어 교문을 나섰다. 교문까지는 를 쥐고 오다가, 그 문이 뒤로 사라지고 보는 눈이 없자, 「뮤직홀」로 뛰어갔다.
연극은 무대에서 할 것이 아니라, 집에서, 학교서 땅바닥에서 할 거라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