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1】 가톨릭시보 383호 질의 3에 의하면 칼빈은 절대적 예정설(絶對的 豫定說)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이단(異端)이라고 했는데 천주교에서는 예정설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인정한다면 그 차이점은?
【문2】 마음에도 없는 죄되는 말을 농담으로 하였을 때(예들면 아무개를 죽여버리겠다) 그 죄에 해당되는 생각죄(生覺罪가 있는 경우 예들면 9계나 10계)를 범한 것이 되겠읍니까?(서울 明洞 안당)
【답1】 천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시고 따라서 적어도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에 충분하고 필요한 성총을 주십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실상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고는 할 수 없읍니다. 천주님은 누가 이 목표를 달성하는가를 미리 아실 뿐만 아니라 미리 원하시고 또 예정하셨읍니다. 이것은 예정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신학상의 용어로 표시한 것이지 천주교가 예정설을 인정한다고는 말할 수 없읍니다. 예정설이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되기를 원한다고 하는 천주의 의지를 경시(輕視)하고 그 예정을 과장(誇張)하는 이단입니다.
이 예정설은 『그리스도는 다만 간선된 자만을 위하여 죽었다. 천주는 실지로 천국에 부린자만을 영원한 생명에, 불리지 아니한 자를 영원한 벌로 예정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서와 교부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문제를 죄에 한하야 간단히 생각해 봅시다. 천주는 물론 죄악의 원인일 수 없읍니다.
문제는 천주께서 죄악이 가능한 세계를 만든 것이 만인의 구원을 원하시는 천주님의 뜻과 모순되지 아니하는가에 있읍니다.
지금 여기서 A가, 권총으로 B를 죽였다고 합시다. 정당방위라면 죄가 아니되나 무죄한 자의 살인이라면 죄가 됩니다. 죄악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악한 의지(意志)입니다. 천주께서 여기 협력한다고는 할 수 없겠죠. 따라서 문제는 천주께서 왜 악한 의지를 허락하시는가에 있읍니다.
악한 의지는 자유를 전재로 합니다.
자유를 가진 인간을 만드신 이상 천주님은 죄악의 가능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자유를 가진 인간을 만드실 때 천주께서 잘못했다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럼 나쁜 사람이 될 것을 아시면서 왜 천주께서 그런 사람을 만드셨는가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지금 시험삼아 천주께서 만드시고자 하는 사람이 죄악을 범할 것을 예지하시고 만들지 아니했다고 가정합시다. 절대자이신 천주의 의지가 아직 존재하지 아니하는 유한하고 가능한 의지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는 모순을 당신은 지지할 수 있겠읍니까?
천주님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면서 그 자유가 남용되지 않는 세계를 만들 수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러한 세계가 된 것은 천주의 절대적 자유의 선택입니다. 천주는 완전무결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악을 허가하신 이상 그 전지와 성덕에 상응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예정에 대한 교회가 가르치는 것 중에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도 있으나 인간은 자유의지는 예정에 의해서도 영벌에 의해서도 침범되지 않고 천주는 죄인의 죄에 의해서만 영벌을 주신다고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것이 예정과 예정설의 차이입니다.
【답2】 마음에도 없는 죄 되는 언사를 농담삼아 했다면 죄가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언사를 씀으로써 남에게 죄짓는 동기까지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할 일입니다.
음란한 행동의 죄의 시작은 음란한 생각과 그 원욕입니다. 그러므로 천주님께서는 9계로 금하셨읍니다. 스스로 음란한 생각을 머물러 두거나 음란한 짓을 원하면 정덕을 거스리는 죄가 됩니다. 그러나 음란한 생각과 원욕을 물리치려고 애쓰는 동안은 죄가 안 됩니다. 10계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읍니다.
申相祚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