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33) 제네사렡 湖水邊(호수변)
베드루 宗徒 首位權 받은 곳에 敬堂
부러운 것… 이스라엘 畜農事業
발행일1963-10-27 [제396호, 3면]
다음 예수께서 베드루 종도에게 수위권(首位權)을 주셨다는 곳에 왔다. 「갈릴레아」 호수 옆에 조그마한 경당을 지어 놓았다. 성당벽에는 『내 양을 치라 내 고양을 치라』하는 성경구절이 라띤어로 새겨져 있다. 경당(敬堂) 발뿌리에는 「제네사렡」 시내의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구름이 낀 탓인지, 아니면 원래 고기가 많아서 그런지 제법 팔뚝만큼씩한 물고기가 호수 위에 펄쩍펄쩍 뛰고 논다. 그러나 어로(漁撈) 작업을 하고 있는 배는 보이지 않는다.
내 보기에는 아직 7·8세도 채 못되어 보이는 아이가 2·30필이나 되는 소떼를 몰고 온다. 황소도 코를 까지 않았다. 초원도 없고 메마른 이 고장에서 어떻게 그 많은 소를 먹이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언어가 제대로 통하고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소먹이는 법을 잘 알아보아 국토의 반 이상이 산으로 되어있는 우리나라에 축산을 일으킬 방도를 연구해 봤으면 하고 생각했다. 가난한 우리나라지만 적잖은 유학생들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생산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인문계통이요 아니면 소수의 자연과학 계통이지 축농계(畜農系) 학생은 나의 과문한 탓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학생들이 축농에 소질이 없기 때문이라고는 절대로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방면의 공부를 해서 고국에 돌아와 봤자 출세는 물론이요 밥버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크나큰 반성이 있어야겠다. 중농정책도 좋고 영농자금도 방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재래와 같은 고식적 영농방식으로서는 도저히 발전을 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축농방면에 소질이 있고 성실한 학생들을 선출해서 국비로 유학시켜 환국 후는 적당한 후원을 해서 이 나라의 영농방식을 과학적으로 발전시킬 국가백년계를 세워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먹고 떠드는 것이 정치가 아니라 침묵 중에서도 해야할 일은 하나 둘 순서대로 착착 진행시키는 것이 참다운 정치가의 할 일이 아니겠느냐? 이 생각을 가져 내 나라 현황에 비쳐볼 때 한심스러웠다. 우리들 모두가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가는 아니라해도 내 집안 내 한몸을 다스려야 한다. 내 한 집안 내 한 몸을 다스리는대로 순서와 선후와 경중을 바로 잡지 못하면 언제나 남에게 뒤질 수밖에 없다.
지혜를 짜고 노력하는대는 힘쓰지 않고 운이 어떠니 팔자가 어떠니 재수가 어떠니 하는 비굴한 핑계로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심지어는 중상모략으로 남의 성공을 방해하는 못된 백성들이 많으니 나라 꼬라지가 요 모양이 아니겠느냐?
돌아오는 길에 성지와는 관계 없는 「키비츠」 지역을 방문했다. 「키비츠」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농민의 공동생활, 완전자치제를 말한다.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은 종여나무 밑에 밀감나무가 우거지고 그 사이사이에는 채소를 가꾸어 두었다.
다른 농토보다 더욱 잘 가꾸어져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되지 않고 오히려 주택이나 의복은 다른 대보다 훨씬 빈약하다. 「키비츠」가 좋은 제도라서 시행한다라기보다 「키비츠」가 아니고는 생활에 나갈 수 없는 빈민들의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응한 제도란 감이 든다. 마치 공산주의가 부요한 나라에는 발붙일 수 없고 가난한 나라에 뿌리를 박는거와 같은 이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