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것에서 여러분은 얼마간이라도 알아 차리셨으리라 믿지만 가톨릭 신자인 여러분은 아주 평범한 일상 생활 안에서 만나는 사물이나 하는 일 가운데서 성스럽고 고귀한 것을 맛봄으로 여러분의 일상생활을 성화해서 충만하고 영원한 것으로 만드셔야 하겠다. 벌써 천번 만번 본 사실이라도 좀 더 반성하고 묵상하고 여러분은 지금까지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새로운 미관(美觀)에 접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런 미관을 보는 즉시로 거기서 은은하게 올려오는 말소리도 듣게 된다. 미(美)와 가까이 하고 대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 자신도 알게 된다. 참으로 위대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매일 생활을 우리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일상생활 안에 들어오는 일이나 사물을 천주님께로 가는 방법으로 사용할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고 듣고 행동함을 먼저 배워야 하겠다. 보고 들을 수 있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러나 진(眞)과 미(美)를 보고 듣는 것은 큰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기술이 없는 이에게는 이 세상이 어둡고 텅빈 벙어리로 나타난다.
천주께로부터 조성된 삼라만상은 천주님의 명에 의해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고 있다. 아무리 흔하고 비천한 사물이나 사실을 놓고서라도 우리는 껍질을 비집고 속으로 파고들어 그 속에 숨어있는 대부(大富)를 발견할 수 있게 되며 단순한 사실이 아주 위대한 비밀을 내포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 한 예로써 우리는 이제부터 계단을 깊게 바라보기로 하자.
우리는 수없이 계단을 오르내렸지만 무심히 기계적인 동작을 했을 뿐이다. 계단은 우리에게 반성할 기회를 제공했지만 너무나도 미묘하고 은근하게만 우리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일깨우지 못하고 있다. 영혼이 받을 수 있는 이런 신비로운 인상은 인간 이성(理性)의 차가운 분석작용을 일부러 피해가면서 우리 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다. 우리가 계단을 오를 땐 발만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 영혼까지도 같이 올라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우리 눈앞에는 한 영혼이 천주님의 왕국을 향해 올라가는 광경이 전개된다. 왜 그럴까? 천주님이 산꼭대기나 하늘 위에 계신 것은 아닐텐데! 천주께는 상하도 없고 우리는 그저 좀 더 순결하고 더 정직하게 됨으로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것 뿐인데!
혹시라도 계단을 오르는 것과 완덕 사이에는 무슨 연관성이라도 있는 것인지? 인류의 어느 사회에 있어서나 낮은 것은 무엇이나 비천하고 악한 것을 상징하고 높은 것은 고상하고 훌륭한 것을 상정하고 있다 또 위로 올라가는 것은 우리가 지극히 높으신 천주께로 감을 상징한다. 그실 게단은 우리를 거리에서 성당으로 인도하며 『너희는 기구하는 집으로 올라가며 천주께 가까이 가고있다.』고 일러준다. 성당 문 앞에 있는 계단은 『너는 지금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외쳐주며 제대로 올라가는 계단은 『너는 네 신발을 벗어라. 이곳은 거룩한 곳이다.』라고 모이서에게 천주께서 하신 말씀을 거듭하고 있다. 제단은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간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계단을 오를 적마다 위대하고 거룩하게 오르도록 하자. 비천하고 속된 모든 것을 하단에 버리고 드높이 솟아오르도록 하자. 주님의 부르심에 응해서 주님께로 올라감을 매일같이 경험하기로 하자.
黃旼性(가톨릭대학장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