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49) 연극 ②
발행일1964-05-10 [제422호, 4면]
먼저 와서 앉아있던 딕슨은 나를 보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뜸 묻는다.
『아직도 너는 「틀러블」 속에 있느냐?』
『그게 무슨 뜻?』
『너는 집을 나가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이제 그 문제는 해결되었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와 잘 맞추어 나갈 어떤 자신이 내 마음속에 있었다.
『그건 너를 위해서 퍽 다행한 일이다.』
딕슨은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굳었던 표정 위에 담았다.
(이 사나이는 나의 일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있었구나?)
나는 그의 곱살한 가운데에도 날카로운 열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너는 오늘 여느때보다 더 명랑해보인다!』
딕슨은 말한다.
『어쩐지 나는 퍽 명랑하다! 며칠전에는 세상이 「쁘렉」색 같이 까맣드랬어!』
『너의 아버지는 너를 다시 귀여워 해주느냐?』
『아마 그렇게 된 거야!』
나는 연극조가 아니고 그러한 기대를 진정 맘으로 가졌던 것이다. 내 마음이 갑자기 하루 아침에 크게 성장한 듯한 지금까지의 아버지와의 불화를 이겨내고 해결할 힘이 내 자신 속에 생긴것 같았다. 어찌 생각하면 이것도 무의식중의 연극인지도 몰랐다.
『나는 미스양의 일을 나의 상급자인 부라운 상사에게 이야기하였더니 그는 이해있는 태도로 나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는 5년전에 본국에 있던 아내가 죽고 2년전에 과부인 한 한국여성과 결혼하여 부평에 한국가옥을 사서 살고있다. 네가 만약 부평에 온다면 그 집에 묵을 수 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딕슨에 대한 인식을 또한번 바꿨다. 그는 약한 사람이 아니고 꼼꼼한 성미였다.
이 순간 딛ㄱ슨에 대한 믿음으로 내 가슴은 부풀었다.
우리는 저녁 무렵에 「뮤직홀」을 나와 저녁을 같이 먹고 차도 마시고 돌아다녔다. 9시쯤 헤어질 적에 딕슨은 나에게 백원짜리 열장을 주었다.
『네가 좋아하는 물건을 하나 사주고 싶었는데 무엇을 사야할지 몰라서 돈으로 주는 것이니 네 맘대로 좋아하는 것을 사라!』
딕슨은 다정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시간이 늦은데 아버지한테 야단맞지 않겠느냐?』
그는 내가 합승을 타기전에 생각난듯이 가까이 와서 물었다.
『괜찮아!』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합승속에서는 집에 돌아가서 연출할 연극을 생각했다.
자동차에 치인양 다리에 부상을 내어 들어가기로 했다.
다리가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자동차에 치이는 방법을 연구해보았으나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늘씬하고 멋있는 다리르 ㄹ진짜로 다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동리에서 합승을 내리자 강숙이네 집으로 먼저 뛰어갔다. 강숙이 공부방에 들어서자 잉크 병을 열고 종이에 잉크를 찍어 왼쪽다리에 부벼댔다.
『얘, 왜 그러니?』
강숙은 의아했다.
너무 시퍼렇기에 방구석에 있는 걸레를 집어 문댔다.
푸른 색소가 하이얀 다리 피부 면에 스며들었다.
『멍든 것 같니?』
『왜 그러니?』
『자동차에 치인 것 같이 보이려구 아버지한테 늦게 들어왔다고 야단 안맞기 위한 연극이야!』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얘, 그래 가지고는 곧이 안듣겠다!』
『멍이 든데가 부어야겠지?』
『몽둥이로 좀 쳐줄까?』
강숙은 웃지 않고 말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를 아는 강숙은 자기 일같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안에 들어가서 다듬이 방망이를 가지고 왔다. 내가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강숙이는 방망이로 쾌 아프게 서너번 쳤다. 방망이 자국은 하얗다가 나중에는 붉어졌다가 별로 부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좀더 힘껏 쳐라…』
이번에는 강숙이도 먼저 보다 세게쳤다.
이번에는 제법 맞은 자리가 검붉게 자국이 나고 바른 다리보다 부어 보였다.
『가만있어 좋은수가 있어…』
강숙이가 나가더니 가는 막대기를 하나 들고 왔다.
『내 동생 회초린데 이걸로 맞으면 자국이 짝짝난다.』
아닌게 아니라 가는 막대기로 서너번 되게 맞았더니 흰피부 위에 완연히 자국이 나고 금방 부르텄다.
『좀더 때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강숙이도 이를 악물고 거듭 세번을 쳤다. 아파서 내눈에서는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잉크색과 피맺힌 매자국으로 부어오른 다리 모양을 보고 나는 안심을 했다.
『정말 아프겠다!』
강숙이가 안됐다는 표정을 하며 따라나왔다. 나는 오히려 명랑했다. 진정 내 다리는 아팠다. 오는길에 「켁」가게에 들어가서 이백원 주고 상자에 들은 「카스테라」를 사가지고 집 대문을 들어섰다.
대문 소리와 함께 욕을 하며 튀어나온 아버지는 자동차에 치였단 말을 듣자 그의 신경은 내 다리에 쏠렸다. 다리는 내가 보아도 몹시 아픈 타박상으로 비쳤다.
그리고 「카스테라」는 친구네 생일 잔치에 가서 상타기 「게임」을 해서 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잡수세요, 누구든지 상탄것은 아버지에게 드리기로 했어요.』
아버지의 입에는 노염대신 웃음이 떠올랐다. 이때 나는 놀랏다. 인간의 노여움과 미소의 사이가 이처럼 가까운 것인 줄은 몰았었다. (인생은 연극이야…)
나는 잠자리 속에서 또한번 내 스스로의 머리 속에 타일렀다.
그후 한주일 동안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전에 없던 비교적 평온한 날이 계속되었다. 늦게 들어간 날은 딕슨에게서 얻은 돈으로 아버지의 「넥타이」핀도 사고 과자도 사고, 양말도 사고 했다. 돈의 출처는 밝히지 않고 적당히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진호에게도 내가 그를 좋아하는 듯이 편지를 했다. 내가 그를 진정 종하하는지 아닌지는 스스로 따지지를 않았다. 그러나 학교는 다시 나에게 괴로운 곳이 되기 시작했다. 딕슨과 같이 다닌 것을 많은 학생들이 보고 수소문이 오고가고 있었다. 가장 내맘을 찌른 것은 양키한테서 돈을 받더라는 말이었다.
나는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것도 이때 느꼈다. 세상의 눈이 나를 감시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래 돈 받았다. 돈 받았으니 어쩔래-』
나는 수소문하는 춘자들에게 맞대놓고 소리쳤다. 그 이튿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하슬째는 교문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섰다.
며칠 안가서 아버지에게도 알려질건만 같고 학교와 아버지라는 굴레를 떠나고만 싶어졌다.
그날 낮에 책가방을 든채 역에 가서 인천행을 탔다. 부평서 내려 딕슨의 부대를 물어 부대촌으로 들어섰다. 딕신이 있느 ㄴ영문앞에 가서 딕슨의 이름을 대고 면회를 청했더니 공무중에는 면회할 수 없다고 위병이 딱잘라 말한다.
『나는 그의 친척되는 사람이니 꼭 만나야 한다!』
그제서야 위병은 전화기의 「다이알」을 돌렸다. 이 영문에서 연극은 통하고 사실은 통하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5분쯤 기다리니 작업복을 입은 딕슨이 놀란 표정과 반가운 표정이 뒤섞인 얼굴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