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50) 연극 ③
발행일1964-05-17 [제423호, 4면]
『웬일이야?』
딕슨은 얼굴은 가까이 대고 나직히 묻는다.
『………』
웃으며 놀러왔다고 나는 얼버무렸다.
『학교서 오는 길이냐?』
『수업이 한시간밖에 없었어, 보고싶어 온거야요』
『집을 아주 뛰쳐 나온건 아니지?』
철망을 돌린 어마어마한 영문을 보니 내가 있을만한 곳이 없기에 딴전을 부렸다.
서울을 떠난 것만으로도 무거운 굴레에서 잠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잠깐 기다려!』
딕슨은 부대안으로 들어가더니 십오분쯤 후에 돌아왔다.
『부라운 상사의 집으로 가지!』
하며 공장지대가 보이는 쪽으로 걸어간다. 가는 도중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이 근방에는 직업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여자들이 많다. 그런 여자들과 혼동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병정들은 어쩌면 너를 그런 종류이 여자인줄 알고 가까이 할지도 모르니 조심해라.』
부라운 상사의 집은 일전에 딕슨이 말한대로 허룸한 한국 기와집이었다. 대청 마루에 소파와 의자와 탁자들이 놓여있었다.
부라운 상사의 부인은 삼십남짓한 나이인데 별로 「인테리」같지 않은 평범한 한국여성이었다.
양장은 햇으나 짧은 허리에 어울리지가 않았고 영어도 눈치로 알아듣고 손짓으로 모자라는 것을 표현했다.
딕슨은 부라운 상사에게 부탁드려 이 소녀를 잠시 이곳에 맡기기로 했다는 뜻을 전한다.
부인은 아래위로 나를 훑어 보더니
『집은 어디요?』
하고 묻는다.
『서울이야요』
『이 남자하고 어떻게 되지?』
딕슨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얕잡아 보는 눈치였다. 은근히 반발심이 생긴다.
『우리 오빠하고 잘 아는 사람이야요. 영어도 배울겸 사귄 것인데 이 근방에 동무네 집에 온김에 우연히 만난거야요..』
『아, 그래요!』
부인은 눈여겨 나의 몸매를 살핀다.
『학생인가? 책가방을 든걸보니? 올라와요!』
부인의 말은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마루에 올라가서 폭신한 「소파」에 앉았다.
『마담, 먹을 것을 좀 이 소녀에게 주세요!』
딕슨이 애교 띤 얼굴로 부탁을 한다.
『아니, 나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영어로 말했다.
『시장하면 빵이라도 좀 드릴까?』
한국말로 부인이 나를 보고 말한다. 사실은 배가 고팠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쥬스」는?』
목도 말랐지만
『조금만 주세요!』
하고 말했다.
부인이 「쥬스」를 만드는 동안 딕슨은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데 찾아오니 반갑다!』
하며 딕슨은 얄삭한 입술과 파랑눈에 미소를 담았다.
『오늘 저녁에 집으로 갈테냐? 나는 하루 이틀 여기서 묵게해 달라고 상사보고 청해두었는데』
『…………』
뭐라고 대답을 할까 생각하고 있을때에 부인이 「쥬스」 「그라스」를 들고 탁자 옆으로 왔다.
『노!』
나는 부인이 들으라고 크게 대답했다.
『저녁 일곱시 차로 돌아갈 생각이야!』
『아주 뛰쳐나온 것은 아니냐?』
딕슨은 다시 묻는다. 그 말귀를 알아듣고 부인이 주측하니 귀를 기울인다.
『집에서 기다릴텐데 여기서 자고 갈 수는 없는거야요!』
나는 곧 화제를 돌리고 「쥬스」를 마셨다.
딕슨의 잔은 「오렌지 쥬스」가 가득 들었는데, 내 「그라스」에는 삼분의 이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목마른 것은 참을수가 없어서 단숨에 훌쩍 마셔버렸다.
『더 드릴까?』
부인이 묻는다.
『아니요.』
조금 후에 곰같이 디룩디룩 생긴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부라운 상사가 들어왔다. 눈은 방울눈이고 코는 사자코였다. 몸과는 반대로 목소리는 명주실 같이 가늘었다.
그는 그 가는 목소리로 나를 보고 아름다운 소녀라고 말했다. 딕슨은 좋아서 웃고 있었다.
부라운 상사는 생긴 것 보다는 몸이 잘 우직이고 웃으운 소리도 잘 했다. 그는 나의 가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를 않았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부대의 졸병이 서너명 운깐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뭐냐 너희들!』
부라운 상사가 소리치니,
『어려뿐 아가씨를 보러 왔어요!』
하며 한녀석이 날보고 「윙크」를 한다.
이때 딕슨의 얼굴은 험악했다.
『시시하게 굴지 말아…』
딕슨은 날카롭게 문깐을 향하여 소리쳤다. 졸병들은 저희들끼리 뭐라고 숙덕거리더니 사라져 버렸다.
또 얼마후에는 키가 후리한 졸병이 하나 기웃 거리다가 휘파람을 되게내고는 갓다.
어스름하니 땅거미가 지고 내가 떠날 시간은 박두하고 있었다.
부인은 시계를 보더니
『일곱시 차를 타려면 지금쯤 나가야 할 걸!』
하고 말한다.
이 순간 나는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아픈척하고 배를 움켜쥐었다.
『왜 그래?』
민감한 딕슨이 보고 걱정스러이 묻는다.
『위가 아파요!』
『여보 소화제 주구려!』
상사는 이렇게 소리치기가 바쁘게 자기가 일어나서 장에서 약을 꺼내왔다.
『약 안먹어도 되요. 차시간이 바쁘니 역에 나가야겠어요!』
하며 나는 책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인사를 하고 문깐에 나올 적에 나는 배를 움켜쥐고 주저앉아 버렸다.
『몹시 아프냐?』
딕슨이 팔을 부축한다.
나는 몸부림을 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침대로 데리고 가오. 딕슨, 너는 뛰어가서 군의관을 좀 불러와, 내가 부탁한다고 그러게!』
딕슨은 뛰어 나가고 주인 부부의 부축을 받고 나는 안방에 있는 「더불벳트」에 엎드렸다.
침대에서는 과히 몸부림을 치지않고 상만 찡그리고 가만이 있었다.
『먹은 것이 체했나?』
부인도 걱정스러이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통을 참는 표정만 했다. 얼마후에 딕슨이 군의관을 데리고 왔다.
군의관은 원숭이 같이 생긴 젊은 사나이었다. 청진기를 대보겠다고 가슴을 헤치라고 하길래 싫다고 거절했다.
『의사한테는 헐수 없는거야…』
부인도 말하고 부라운 상사도 말한다.
『병자가 부끄러워할 건 없는거야…』
딕슨도 간곡히 말한다.
『싫어』
나는 고개를 흔들고 의사에게는 외면을 했다.
『그럼 아픈 증상이 어떤지 그거나 말해 보아라!』
의사는 이렇게 말하며 묻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위가 아프다고만 대답했다.
『아마 체한것 같으니 강한 소화제 먹여 보아야 겠군!』
하며 의사는 소화제를 주고 주사한대를 놓고 갔다. 그후 나는 차춤 찡그린 상을 펴고 조용히 엎드려있었다.
『지금 몇시야요!』
근 한시간이나 지난 뒤에 나는 물었다.
『일곱시 반이야 차는 벌써 떠났어!』
부인이 말한다.
『아이 어떻거나,』
하면서 속으로 나느 혼자 웃었다. 연극은 내 의사를 통과시켜 주는 인생의 「파스」와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