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요 예술가인 장.꼭또가 지난 10월11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인이요 극작가요 영화 연출가요 소설가로서의 그와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실로 다기(多技)의 귀재(鬼才)이다. 그가 저술로써 「아카데미」 회원이 된 후 회화(繪畵) 특히 벽화에 있어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망똥」시청 결혼예식장의 벽화 『천마(天馬)』와 「빌프랑스」 어촌의 「성 베드루」 성당의 「프레스끄」(壁畵) 등이 유명하다. 오늘은 이 후자만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는 개인 성당을 갖고 싶었다. 그는 그 화법(畵法)에 격문(檄文)의 뜻을 주고자 하였다. 『「안띠꼰폴미스트」적 「꼰폴미즘」이 유행하고 있다. 「아방가르드」(前衛藝術)는 20세기의 고전주의가 된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러므로 자유로운 사람을 위해서 관습을 반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아방가르드」를 반대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렇게 항상 말하는 이는 꼭또였다.
여기 그의 「빠라독스」 보라. 『불란서 「아까데미」 회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러한 태도를 해설하기에 적합한 반지성적인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행동에 한 가지 작품을 접합시켜야만 하였다. 나는 한 성당의 장식이 훌륭하게 이 책무를 채울 것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였다. 혁명적인 행동을 이행하는 것과 「독마」가 되어버린 혁명적인 편의주의에 등지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매력을 꾸미고 아직 괴물에 정복된 시대, 말하자면 「매듀스」(희랍 慶文)의 머리의 매력에 정복된 시대의 역류(逆流)에 헤엄질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이것은 적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이 더 좋다. 도면(圖面)은 벽과 원천정을 덮었다. 그는 엷은 채색법으로 그렸다. 그러나 지성소가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는 위대성의 인상을 방해하지 아니하는 상쾌감이 있었다. 그것은 시상(詩想)으로 넘쳤다.
꼭또는 성 베드루의 일생의 장면을 시적으로 그렸다. 지방적인 민속의 「모띠브」가 좋았고 특히 건물 안에 수많은 그물을 매우 잘 어울리는 선과 점으로 그렸다. 이 화법이 다른 화가의 것보다 매우 다른 것이 확실하다. 그것은 어떤 불만을 느낄 수 있어도 좋다.
꼭또는 『여행자여, 들어가라 그러나 미학(美學)의 모든 정신을 버리라. 자기의 특권을 잃어버림이 없이 시인이 어부들과 순박한 사람들을 직접 가까이 하러 가는 그 방법으로 성당을 꾸미는 것이 문제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시인의 한 가지 작품이다. 그 작품은 시에서 나오는 미를 가지고 있다. 꼭또는 거기 영감(靈感)을 집어넣기를 잊어버리지 아니했다. 그러나 깊은 종교적 의의는 나타나지 아니한다. 우리는 성스러운 충동을 느끼지 못한다.
한편 우리는 꼭또가 친히 말한 그 범위 밖에서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이와같이 회화부분에 있어서도 근대주의적인 지성을 가짐으로써 모든 예술분야에 걸쳐 재래의 것을 쇄신하려는 천재성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