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착실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신자는 『배암과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사탄과 그의 무리들은 거짓과 겉 꾸밈으로 항상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읍니다. 그러기에 사탄의 무리들은 진실과 공손의 탈을 쓰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스승이시여 당신은 진실하시고 또 아무에게도 사정을 두지 않으시며 사람의 지위를 돌보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보십니다』하고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세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어떠한지 엿쭈어 보았읍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바치지 말라』 우리는 이교도(異敎徒) 황제에게 굴복할 수 없고 따라서 세금도 바칠 수 없다고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러면 그들은 본시오 비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을 반역자로 고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또 만일 예수님이 『바치라』고 하셨다면 그들은 백성을 선동해서 예수님은, 로마 사람들의 앞잡이요 천주의 백성을 이교도들에게 넘겨주는 자라고 선전하려고 했읍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 사람들에게 지배를 받게된 것을 수치와 모욕으로 생각했고 천주님만을 그들의 왕으로 모시었고 로마 황제를 왕으로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진실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슬기로워야 하고 얼마나 일을 신중히 다루워야함을 가르쳐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바치지 말라』고 하시지도 않고 『바치라』고 하시지도 않았읍니다. 예수님께서는 『겉꾸미는 자들아 왜 나를 시험하느냐?』 하시는 말씀으로 그들의 탈을 벗기시고, 『세납 바치는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며 놀라웁게도 그들을 꼼짝 못하게 하셨읍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보여드린 돈은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이교도의 돈이었읍니다. 로마 사람들의 돈을 오랫동안 써오던 그들이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물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세살의 것은 세살에게 바치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셨읍니다. 즉 너희들이 세살의 돈을 가지고 있고 또 사실상 그의 주권(主權)을 인정하고 그의 보호를 원한다면 그에게 세금도 바칠 것이라는 대답이시었읍니다. 충실치 못한 유데아 사람들에게 하신 더 중요한 경고의 말씀은 『천주의 것은 천주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천주의 것은 천주께 바치라!』고 하신 이 말씀은 더욱 의미가 깊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신자들은 두 영역(領域)에 처해 있읍니다. 성세성사를 받음으로 우리 신자들은 천주의 백성이 되었읍니다. 따라서 교회를 통해서 신자들을 다스리시고 당신의 복음과 은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시요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신자들은 세상에서 착실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읍니다. 즉 정당한 국가의 법률을 지키며 건전한 정부를 받들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야하며 직장에서는 충실히 일함으로 착실한 한국민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국민으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고 특히 인권과 자유의 보장을 받아야 합니다. 신성한 인권이 짓밟히고 자유를 빼앗길 때 그러한 국가와 사회는 머지않아 국민을 멸망과 혼탁 속으로 이끌어 갈 것이며 마침내 인간을 노예화하고 기계화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자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또한 열심히 건전한 정부와 사회를 이룩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천주님의 백성이 된 우리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이요 주인으로 모셔야 할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거니와 충실한 한국민으로서 천주님의 이름으로 자기 직분에 성실하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천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충실히 합시다. 이에 비로소 우리는 『세살의 것은 세살에게 바치고 천주의 것은 천주께 바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길 것입니다.
金 다미안 神父(경기도 안성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