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24) 고적감 ②
발행일1963-11-03 [제397호, 4면]
밖에서는 체면을 차리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 집에 일단 들어서기가 무섭게 흉악한 상으로 변했다.
『이년 애비한테 어쩌자구 거짓말이냐?』
『……』
『가지 말라는 교회는 뭣허러 가고 김진혼가 그 쓸개 빠진 천주학쟁이 애하고는 뭘 숙덕거리고 웃고 지랄 법석이냐?』
『………』
나는 잠잠히 듣고만 있었다.
그는 한 시간 이상이나 갖은 모욕을 내 머리 위에 퍼 붓는다. 그 숫한 욕설의 단어가 마치 탄환같이 내 몸을 뚫고 짖고나가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듣기 싫던 것이 차차 욕설은 욕설의 역할을 못하고 귓전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우리나라 말에도 욕설도 지독히 많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른 나라 말은 자세히 모르나 아마도 우리나라 말만큼 욕설이 풍부한 말은 드물이리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만큼 집안에서 욕을 많이 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해본다.
욕설이라는 탄환에 울지도 않고 굴복도 안 하는 나를 보자. 아버지는 주먹이라는 실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남자로서는 약골로 생긴 그지만 손은 컸고 그 주먹마디는 날카로웠다.
『팍, 팍…』
두 번이나 그의 주먹탄의 세례를 머리 위에 받았다.
욕먹고는 안 나오던 눈물이 주먹탄을 받고는 눈물이 솟는다. 일단, 눈물문이 열리니까 샘 모양 눈물은 하염없이 나온다.
그는 내 눈의 눈물을 보고는 사납던 입이 좀 아물린다.
『내가 울었다고 굴복한줄 아나보지 굴복할께 뭐야!』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반발심을 오히려 돋구었다. 내가 우는 만큼 굴복한 것으로 해석했는지 다음과 같이 명령조로 결론을 내린다.
『맹세해라. 교회에 또 다시는 안 가겠다구. 그리고 김진호도 안 만나겠다구』
나는 대답 대신 음성을 높여 울기만 했다.
무언지 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따위 맹세를 무엇 때문에 하느냐 하는 반항심이 울음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날 일은 약과였으며 이틀 후에 일어난 일이 나에게 크게 자극했다.
다음날 학교서 아버지한테 오라는 편지를 보내왔었다. 아버지는 그 날으 ㄴ못 가고 이튿날 학교에 다녀왔는데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저녁에 무심코 집에 들어서니 아버지의 안색이 달랐다.
『나순아 이리와!』
하더니 안방 구석에 모라넣고 묻는다.
『너 일전에 또 양키하고 같이 다녓다던구나?』
『훈육주임이며 「카운셀란」지 심리선생인지를 만났는데 집안의 감독이 틀려 먹었다고 내가 욕을 먹고 왔으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너 이년 어쩌자구 사내가 좋다는 소리를 선생 앞에서 하며 양키하고 같이 다니고 지랄을 했느냐?』
그는 내 변명도 듣지 않었다.
대번에 길게 자란 내 단발 머리채를 잡아 끌며 흔든다.
몹시 아팠으나 이상하게도 울고싶은 생각이 안 난다. 눈물주머니가 오구라든듯이 눈은 점점 말뚱해질 뿐이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당하기에는 내 몸이 너무 큼을 느낀다.
그도 그것을 느꼈는지 머리채를 잡았던 손은 놓고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했다.
『이년 딕슨인가 그 양키하고 충무로를 같이 걸어가며 무슨 얘기를 했느냐?』
『………』
나는 입을 꼭 다물고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년이 대답 안 할테냐!』
책상 위에 있는 「메들」자를 집어든다. 맘대로 하라는 마음으로 나는 꼼짝 안 했다.
『이년이 웃읍지도 않네!』
자 끝이 내 이마박을 쿡쿡 찌른다.
『까닭을 묻고 때릴 일이 있으면 때리고 나무랄 일이 있으면 나무랄 일이지, 다짜고짜로 왜 때려요?』
나는 아버지의 얼굴은 쳐다 보지도 않고 말했다.
『…뭐라구 그래 이 년아 네가 맞일짓을 안 했단 말이냐. 어디 까닭을 말해 봐라!』
『길에서 말을 거는데 어떡해요 대답도 못하나요?』
『그래 무슨 말을 묻고 무슨 대답을 했느냐?』
『동대문으로 갈려면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에 길 가리켜 주었에요?』
나오는대로 둘러댔다.
『이년이 거짓말을 안집 밥먹듯 하는구나. 선생 말이 중부서 위로 숙덕거리며 지나가더라고 하던데?』
『숙덕거린거 없어요』
『너 사내가 좋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올드미스가 배기 싫어 그렇게 일부러 말한 거야요!』
『올드미스가 누구냐?』
『훈육 주임 뚱보선생말이야요. 그 선생은 시집 갈라고 애를 쓰는데 시집 못 가고 있어요.』
『그래. 그래서?』
『미군하고 말 한 마디 했다고 너는 왜 남자를 그렇게 좋아하니? 하길래 난 좋아요 한 거야요』
『이년아 선생한테 그 따위 말하는 년이 어디있냐?』
『더 남자를 좋아하는 선생이 나보고 그런 말하니까 그렇지!』
『이년아 내가 학교에서 너 때문에 얼마나 창피를 당한줄 아느냐 또 한 번 그런 일이 있으면 정학이나 퇴학처분 한다더라』
『……』
나는 퇴학도 어쩐지 두렵지가 않았다.
학교도 사실은 가기 싫었다. 아버지 옆도 싫었다. 아버지한테 한참 시달리다가 겨우 그 곁을 벗어나 건너방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열시가 넘었었다. 이불을 쓰고 들어누워 혼자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갈수록 학교도 집도 버리고, 어디론지 가버릴 결심이 조금씩 조금씩 여물어져 갔다.
그 결심과 함께 눈물이 핑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홀가분하기도 하다.
아버지도 학교도 무거운 짐만 같았다.
이튿날 아침, 습관적으로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는데…… 학교는 안 가고 거리를 되는대로 걸어 다니다가 점심 때쯤 집으로 돌아왔다. 식모보고 물으니 아버지는 한 시간 전에 나갔다는 대답이다. 아버지가 영어 웅변대회에 일등했을 때 준 가죽가방을 열어 그 속에 옷과 몇 권의 소설책을 넣었다.
그리고 「노트」장을 뜯어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나는 불효자식이니 찾지 말아주세요. 아버지는 나의 친아버지가 아니실거야요. 그러니 찾지 마세요. 그간 나를 키워주신 은혜는 이댐에 언젠가 갚을 날이 있을 거야요. 놀림을 받는 학교도 싫고 어디론지 가겠어요. 나순 올림-
어느듯 눈에 맺힌 방울이 「노트」장 위에 뚝하고 떨어진다.
편지를 접어 안방 아버지 책상 위에 놓고 가방을 들고 나설려고 하니 불안스럽기도 했다. 내 수중에는 버스회수권 이외에는 돈 한푼 없었다.
『어디 가우?』
식모 아이가 묻는다.
『잠간 좀 갈 데가 있어.』
복희에게 속으로는 잘 있으란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섰다.
무심코 오고가던 그 길들이 이날라따 낯설고 서먹서먹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내가 집을 나서면 장차 어찌될 것인가?』
뒷머리가 자꾸 끌리었으나 내 걸음은 이미 버스 정거장에 와 있었다.
『어떡허나?』
버스가 오기까지도 내 자신을 의심하며 망서리었다.
드디어 버스는 왔다. 몇 사람이 먼저 탈동안 나는 뒤에 우드커니 서 있었다.
차장이 등허리를 밀며 『빨리 빨리 타세요』하고 재촉이다. 내 발은 이미 버스 위에 올라 있었다. 버스는 동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