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혼은 참으로 신비로운 존재이다. 이 세상의 사물 앞에 서서 영혼은 옛날에 아담이 온갖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가졌던 정서를 품게 된다.
영혼은 아무리 주위를 두루 살펴도 자기와 같은 조물은 발견치 못하며 따라서 자기는 사물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같지 않으며 오로지 천주께만 속해있다.』 확신을 갖는데 있어서는 고상한 영혼이나 저속한 영혼이나 다 마찬가지다. 차이는 육신의 움직임이나 태도 전체 또는 사물이 속삭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조물 전체는 영혼의 집 같이 되어 있으며 머지 않아 이들과 친밀해지고 한 가정을 이룬다. 조물은 언제나 영혼을 위해 상징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영혼은 조물의 이런 가치를 통해 자신의 깊이를 표시한다.
조물 안에서 영혼은 자신의 모상을 보며 자아를 발견하고 있다.
결국 「알레고리」는 이렇게 생각나는 것이다.
영혼은 먼저 자신을 싸고 도는 조물에 대해 서먹하게 느끼지만 차츰 조물이 담고 있는 신비와 접해서 정신을 가다금게 되고 갑진 영향을 받아 들이기에 이른다. 신비를 상징하는 예를 하나 들어 보기로 하자.
촛불은 어느 때 누가 보든지 고상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하늘 높이 솟아 오르는 흰초는 점점 뜨거운 광명으로 변해가며 그 끝에는 불꽃이 흔들리고 있다. 순결하고도 정열있게 보이는 촛불은 천주님 대전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부를 불사르고 있다.
초는 타없어지므로 전적인 헌신을 하게 되어 있다. 이럼에도 초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다만 바로보는 인간의 눈이 촛불에서 자아의 상징을 찾아내야 한다.
촛불 앞에 서서 당신 마음의 모든 고상한 뜻이 하늘로 솟구치게 버려 두시라! 그리고 『주여 나는 지금 당신 앞에 나아와 있나이다』하고 외쳐 보시라! 이때 순수하게 하는 촛불의 우아함은 당신이 품고 있는 마음의 정서를 얼마나 잘 나타내고 있는지를 깨달을 것이다. 불굴하는 충성심이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잡을수록 당신은 촛불이 상징하는 바를 깊이 깨닫고 『주여 이 촛불은 당신 앞에 단정히 서있는 내 자신이로소이다.』라고 외치게 될 것이다.
천주님의 섭리에서 오므로 우리 성소(聖召)에 부수하는 여러가지 의무를 우리가 회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이 의무를 끝까지 지고 가야한다. 왜? 나 어떻게를 찾기에 분망하지 말고 천주님께서 지워주시는 의무는 끝까지 지기로 결심하자.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를 짐은 그리스도의 명이며 천주님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생활인 것이다. 이는 바로 빛을 발하며 타는 촛불 같은 생활이 아니겠는가!
黃旼性(가톨릭대학장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