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모두 큰 사회 혹은 작은 사회 안에 살고 있다. 국가사회나 교회사회나 그 사회가 훌륭히 발전번영을 하려면 그 사회단체의 지도자의 올바른 자세와 훌륭한 지도력이 요구될 뿐 아니라 흥망성쇠가 좌우되리만큼 지도자의 역량은 극히 중요한 것이다. 이 중대문제에 대하여 내가 느끼고 경험한 바 소신(所信)을 몇마디 적어보려 한다. 지도자로서의 없지 못할 첫째 조건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격(人格)이라야 하겠다.
인격자로서의 자세는 수치감에 민감해야 하고 경근(敬謹)한 마음씨와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소유자여야 한다. 잘못을 범하고도 아무 수치감이 없다거나 언어행동에 경솔하여 근엄(謹嚴)한 태도가 없다거나 수하사람들의 과오나 어려운 처지에 대하여 이해와 동정심이 없이 무자비하면 인격자로서의 존경과 사랑을 받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자신이 수행해야 할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전문지식은 물론이겠으나 각종 신문잡지 등의 애독으로 시사(時事)문제에 정통할 뿐 아니라 특히 교양서적을 많이 읽음으로 풍부한 상식을 갖추고 교양있는 「젠틀맨」으로서의 수양이 충분히 갖춘 자라야 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지도자로서의 단한번 상식에 위배되는 언어 행동이라도 수하 사람들의 빈축과 경멸을 살것이며 몰상식하고 예의를 모르는 사람으로 단정을 받으면 벌써 지도자로서의 자격은 상실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사용에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
『환도를 부리는 자는 환도로 망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지도자들에게 대해서는 마음에 다시 새기고 음미해야 할 다시 없는 소중한 좌우명(座右銘)이 아닐 수 없다.
권리는 신성한 것이다.
『모든 권리는 천주께로부터 온다.』고 하신 성경말씀대로 권리는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천주께서 주신 보도(寶刀)인 것이다.
절대로 권리는 사용물(私用物)이 될 수 없다. 어떤 지도자가 자신의 사적 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천주님이 주신 보도를 함부로 휘두른다면 틀림없이 권리남용인 죄악으로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권리사용은 질서문란을 막기 위하여 최후 수단에 불가한 것이다.
환도는 부득이한 경우에 눈물을 먹음고 사용해야 착한 장수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훌륭한 지도자는 훌륭한 봉사자이다. 성경에 예수님이 『나는 세상에 복사함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직 복사하러 왔노라』하신 말씀은 얼마나 훌륭한 교훈이며 예수님이 온 인류의 스승으로 또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고 계심을 단적으로 표현하신 말씀이라 하겠다.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은 인류를 위하여 가장 훌륭한 봉사자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전에 무수한 나라와 제왕들이 망한 이유는 간신들이 인의 장막을 두르고 임금들의 지혜구멍을 막고 질식시켰기 때문이다. 지혜있는 지도자는 아첨하고 자기를 칭찬해 주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음을 철저히 깨달아야 하며 『충성스런 말이 귀에는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다.』(忠言이 逆耳나 利於行)는 동양격언대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찾고 신비를 가려낼만한 아량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자신의 반대자를 적대시하고 제외해버리려는 그런옹졸한 지도자는 벌써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자라 아니할 수 없다. 반대자가 지도자를 해치려는 자인지 충정에서 이롭게 하려는 자인지 식별하는 방법으로는 반대자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하는 자인지 아닌지 알아봄으로 족할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의 장점은 여당 야당을 다같이 옹호함으로 국사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가리어 냄에 있다고 할 것이다.
반대당을 탄압하는 민주주의 정부는 벌써 민주주의가 아니며 결국 국사를 크게 그르쳐 망하고 말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로서 크게 발전한 것은 이 두나라의 좌수우수격(左手右手格)인 좌우정당이 다같이 자유로이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상 영미국의 예를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십인십색이란 말과도 같이 사람은 모두 천주님의 미묘하신 섭리로 각각 다른 소질을 타고났기 때문에 그 소질을 충분히 발휘함으로 생활경쟁에 이기고자 하는 승리욕은 천주님이 박아주신 본성이다.
지도자는 수하사람들이 가지는 소질이 무엇인지 면밀히 조사하고 관철하여 그 소질대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할 줄 아는 총명이 필요한 것이다. 음악소질만 있는 자에게 아무리 미술을 가리치려 해도 도로에 불과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때문에 장갑을 발에 신기고 양말을 손에 끼우는 식으로 인사행정을 한다면 부하가 불평불만 느러놓을 것은 자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예전 독재 봉건시대에는 야단을 치고 위엄을 떨고 나쁘게 말해서 위협 공갈 혹은 첩러로서 수하사람들에게 보종 굴복을 강요하는 것이 능사였으나 자유와 평등 정신이 골수에 배어있는 현시대에는 저런 공갈 협박 지도는 절대로 지도적 효과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시대를 모르는 몰지각한 자로서 배척을 당할 것이다. 오히려 이해와 칭찬과 격려와 선도(善導)로써 피지도자들에게 대함으로 가족적인 유대가 조성되고 창조정신과 사기가 진작되어 그 단체는 큰 번영과 발전을 볼 것이다.
아무리 부하가 큰 잘못을 범했을지라도 그의 인격과 명예를 존중하여 공중앞에서 정면공격 대갈질책 하는 따위는 점잖은 지도자로서는 크게 삼가야 할 것이다. 이는 절대로 지도가 아니요 자신의 야비한 감정폭로에 불과한 것이다.
단체의 지도자는 그 단체내에 질서가 잘 유지되어 있는지 늘 감시를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다. 질서가 문란한 사회와 단체에는 벌써 발전의 희망은 절망적이 아닐 수 없다. 단체의 법을 무시하고 각각 개인의 행동을 취함으로 질서가 파괴되었다면 지도자는 시급히 질서의 재정비를 하든지 이것이 불가능 할 때에는 지도적 역량과 자격의 상실로 그 자리를 물러나야 할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지도는 『내가 너희에게 표양을 주노니 내가 행함과 같이 너희도 행하라』하신 예수님의 성훈대로 착한 표양이다. 행실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인 것처럼 착한 모범없이 지도는 안된다. 어떤 지도자가 벌써 일반에게 주지된 큰 과오가 있어 권위를 잃었으면 벌써 지도자로서의 생명은 끊어진 ㅇ것이다. 그저 막연하게 대중을 향하여 인간개조의 구호를 외쳐서는 안된다.
어떤 국가나 교회나 사회단체의 그 수가 많지 않는 지도자들이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고 완전 개선(改善)되어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순박한 대중은 저절로 개조되고 사기를 갖고 용기와 희망으로써 사회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국가사회나 교회사회 할 것 없이 모든 지도자들의 책임은 중대하다. 더구나 우리 교회에는 언제든지 착한 목자로서의 지도자들이 요망된다.
착한 지도자로서의 단 열두 종도들이 온 세상을 움지기고 교화시켰으니 말이다.
사회에 지도자로서의 중책에 있는 분들에게 나의 20여년간 사회생활에 있어 느낀 이 소감의 일단이 다소 참고가 된다면 큰 영광으로 알겠다.
다언다사(多言多辭)에 대하여 합장하고 사과를 비는 바이다.
朴東俊(부산 온천동본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