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35) 天下一品(천하일품) 포도주를 타볼山(산)서 얻어마셔
발행일1963-11-10 [제398호, 3면]
이곳에서도 한 주교님이 미사를 올리고 우리는 참례했다. 미사 후 그곳 수사신부가 우리를 안내하며 성전이 회회교인들의 침략으로 부서진 것을 어떻게 다시 세웠다는 것을 설명했는데 어디로 가나, 연설이 길어 골치다.
점심 때 포도주가 나왔는데 이거야말로 천하일품이다. 「로마」의 유명한 「프라스갓띠」에서도, 포도주의 본고장이란 불란서 「불도」에서도 도저히 얻어보지 못했던 좋은 술이었다. 아마 나의 일생을 통해 아직 일찍 이만큼 향기롭고 감미가 혀에 짝짝 들어붙는 술은 마셔보지 못했다.
속(俗)말로 둘이 마시다가 하나이 죽어도 모를 지경이다.
이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로마」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부터 우수운 말 잘 하시던 한 노인 대주교님이 한잔 맛 보시더니 『우리가 여기 있기가 좋습니다.』라고 소리를 지름으로 모두들 웃었다.
『우리가 여기 있기가 좋으니』 하신 말씀은 이곳에서 예수께서 헌성용 하실 때 주 그리스도의 아름답고 현란한 모습을 보시고 베드루 종도께서 『주여 우리 등이 여기 있기가 좋으니 장막을 셋을 지어 주께 하나 모이서에게 하나 엘리아에게 하나씩 하사이다』(마두 17장 1.9절) 하신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 그 주교님의 말씀이 아니라도 만일 이렇게 좋은 술을 끼니마다 준다면 몇 일을 이곳에서 더 소비한다 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술을 좀 더 달라고 옆에 주교님이 청하니 『더 가져다 드리겠다』더니 감감 무소식이다. 아마 저장해둔 것이 풍부치 못한 모양이다. 서운했지만 체면 없이 자꾸 조를수도 없는 일 단념할 수밖에.
안개가 온 산을 자욱히 덮었기 때문에 전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서운했다. 저녁먹을 때 매일 하는대로 내일 아침 미사드릴 성당을 배정받는데 주교님들 틈에 끼인 일개 신부인 나로서는 아예 마음에 드는 곳을 택해볼 염치가 없어 손을 들기를 단념했는데 『성모님 영보하신 곳에 미사드리고 싶으신 분 손 드시오. 한 분 더 없읍니까?』 하기에 좌중을 돌아봤으나 아무도 손을 안 들기에 손을 들었더니 즉시 내 이름을 묻는다. 내가 손든 후 다른 한 분 주교님이 손을 들었으나 『이미 끝났읍니다.』하고 내게 결정을 지어준다. 고마웠다. 내가 여태 많이 사양하고 있었던 것을 인솔자측에서도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에는 어떤때고 기회란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러한 것을 자기 실력과 주위의 환경을 무시하고 아득바득 덤빈다는 것은 제 정력의 소모요 남에게는 누가되고 미움받을 장본인 것이다.
성모 영보하신 곳이 무엇그리 대단한가 할지 모르나 사실은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하신 곳보다 더 중요한 곳이다. 천주 성자 인성(人性)을 취하사 우리 사이에 거처하신 제일 첫 장소가 바로 여기다. 따라서 강생구속사업의 제1첫 출발점이 이곳이다. 그렇다면 이 곳이 어찌 「베틀레헴」보다 중요치 않다고 하겠느냐? 내가 노린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저녁도 많이 먹었고 잠도 일찍 들어 잘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