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 옵서버들이 보는 公議會(공의회)는?
발행일1963-11-17 [제399호, 2면]
제2차 바티깐공의회는 가톨릭교회의 거대한 재신과업(再新課業)인 동시에 분리된 교회들의 통합을 위한 가능한 소지(素地)를 장만하고 있다.
그 때문에 약 60명의 「프로테스탄」 교회 단체의 대표들이 초청되었다. 그들은 단지 「옵써버」(참관인)가 아닌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공식명칭 참관대의원(參觀代議員)이라 하여 대표의 성격을 밝히고 있다. 「프로테스탄」 교회 대표들이 공의회에 참관하고 있는 것은 공의회의 공번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지금은 어떤 오류(誤謬)를 규탄하고 단죄(斷罪)하여 완강한 호교(護敎)의 강벽을 쌓아 올려야 하는 싯점이 아니다.
여기 세계적으로 저명한 「프로테스탄」 지도자들의 비판의 소리를 들어보자. 그들의 관심사는 방금 토의 중인 의안 「교회의 성질」에서 남김 없이 취급하고 있는 중이다. (編輯者 註)
■ 감리교 복음신학 교수(알젠틴) 호세 M 보니노 博士
「사랑」이 제일 큰 것
敎會再新過程을 成文化 하려는듯
나는 「라틴·아메리카」의 한 「프로테스탄」으로서 2개월 넘게 초청받은 참관대의원으로 공의회에 나갔었다. (제1회기) 어떤 서로의 장벽같은 것을 털어놓을 길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 그와는 전연 ______ 방문을 쳐닫고 자기들만의 문제를 토의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들이 공의회에 참석하기 1년 전에는 가톨릭 「옵써버」들이 세계교회의(WCC) 총회에 나왔었지만 이것은 역사에 특기할 만한 일이라고 하고 싶다. 이것이 모두 교회 통합 운동의 일연된 활동인 것이다.
가톨릭 안에서 성서 전례운동 교회일치 및 사회참여 등을 통한 「가토리시즘」 자체의 재신(再新)을 단행하고 있는 것을 보아온 지 오래되었다. 이제 그것들을 성문화(成文化)하려는 것 같다. 그렇게 하여 교회는 만민·만방에 속한다는 의식(意識)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공의회가 ①가톨릭교회 밖에 있는 타고난(그리스도교 가정에서의 출생을 말함) 그리스도교인을 인정하는 분명한 신학상의 표준을 정하고 ②각 신앙간의 거리를 더 넓히는 식의 정의(定義)를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는 편의나 타협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 안의 진리의 형성은 그보다 결코 적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③종교의 자유 정치 경제력의 사용 및 실지 문제로서의 혼혼(昏婚=가톨릭과 프로테스탄의 결혼) 등 그리스교도들의 우애의 표적이 되는 약간의 곤란한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하는데 적극적인 진척이 있어야 한다.
■ WCC 비서(제네바 瑞西) 루카스.빗서 博士
共同課題 앞에서 分離感에 切實해야…
啓示問題 回避 못한다
제2차 바티깐공의회와 세계교회의(WCC)는 같은 「테마」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통합의 기운(氣運)이 얼마나 성숙되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분리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이 동일한 문제 앞에 놓여있음을 강력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멀리 뻗어 간다고 해도 상관없다. 「테마」들에 대한 합의는 오늘의 교회들이 그 어느 때보다 통합의 문제를 생각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도록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교회회의는 진정한 대화(對話)를 교환하고 있고 그것은 필경 오늘의 「테마」들에 이끌어 갔던 것이다.
「테마」들에 대한 합의가 곧 자신을 없애는 길이 아닌 것을 우리는 즉시 지적할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떤 공동의 문제와 통합의 문제와 그리고 전혀 동일한 국면을 당하고 있는 일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공동으로 긴밀히 검토해 갈 때 서로의 분리는 명백한 것이다. 그러나 공동의 문제를 앞에 놓고 이것을 다루어 갈 때 서로의 분리가 얼마나 절실한 것을 알게될 것이다. 분리의 의식(意識)은 이렇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만일 큰 난관 없이 긴밀한 협조로 공동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현재의 분리란 것이 얼마나 깊이 우리 자신 안에 뿌리박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공동의 「테마」에 대한 대화는 동시에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뼈아픈 차이를 가져다 준다. 그 차이를 극복하기 전에 분리의 아픔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계시(啓示) 자체의 문제 같은 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되고 있으니 그런 문제를 통해서 극복의 길을 더듬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자신을 택할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하나이 될 수 있는 길이겠다.
■ 장로교 스탄포드 大學(美) 종교학 교수 로버트.브라운 博士
敎會一致가 中心
焦點, 形式的 宗敎自由 아닌 神學上의 定義
공의회 결과로 어떤 부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 일치국이라는 성청 안의 한 비서부를 장만하게 된 것은 여러모로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현재 베아 추기경이 주도(主導)하고 있는 동 비서부는 가톨릭의 교회통합론이 어떤 형식적인 국한된데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그리스도교의 중심(中心)에 서고 있다. 우리는 동 비서부의 존립을 보다 크게 평가하고 싶다.
공의회의 진행은 별로 중대한 양상을 아직까지는 보여준 것이 없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어떤 의례적인 토의를 거쳐 도장만 찍어 넘기지 않고 진실한 의견의 차이를 털어놓고 전통에 상통하는 어떤 새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비(非)가톨릭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로마」의 「가토리시즘」은 단석(單石)같은 굉장이 큰 가치만이 아닌 것을. 내가 이번 공의회에 가장 크게 바라는 것은 __ 원칙으로서의 종교의 자유를 어떻게 선언하느냐 하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란 쉽게 말하고 있으나 그것이 단지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고 신념에서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근본의 문제인 것이다. 이런 직접 언급을 이번 공의회서 얻어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빠쳄·인·떼리스」(요안23세의 회칙)를 읽어볼 때 많은 오해를 풀 수 있는데 아마 그 정도가 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