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希望(희망) 루포] (3) 티끌모아 泰山(태산)
自助精神 기르는 4H로 시작
발행일1963-11-17 [제399호, 2면]
이 미완성의 이야기-다른 많은 위대한 이야기들처럼-는 1954년 매크린치 신부가 불과 2백명밖에 없는 신설 한림본당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시작한다.
이 젊은 외국인 선교사에게 신기한 것은 돌이 많고, 바람이 잦거나 비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그의 고향인 애관에서는 비가 2주일을 지나도록 오지 않으면 이상기후였고 바람과 돌이 제주 못지 않게 많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것은 석회질(石灰質)이 거의 없는 땅을 갈아서 심은 곡식의 수획이 많건적건 가을철만을 기다리는 안타까움, 근면이 쏟아넣은 노력만큼 많은 생산량을 걷지 못하는 것이나 원채 농사법이나 영농조건이 빈약한대도 농촌 부업이 전연 도회시되며 돼지를 빈손 안에서 기르는 것 등이었다.
「천주님을 위해서」라는 사명과 더불어 뛰어든 세계는 언어나 풍속이 다르다는 점에서 내심 불안한 매크린치 신부를 전연 개의치 않는다. 매마른 벌거숭이 마을, 황폐해 보이는 들판, 여자만이 득실거리는 섬나라, 하루 두끼를 겨우 먹는 혈색 없는 주민들 그리고 6·25 동란에서 밀려닥친 육지의 피난민 집단, 이것이 그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사람이 되길 자원했지마는 하룻밤 사이에 기와집을 한꺼번에 열채나 스무채를 짓겠다는 욕심장이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 사람이면서도 무조건 속수무책이니 팔장만 끼고서 있지를 않았다.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고 실천했다. 1만원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를 않았다. 그는 오늘 1원을 모으고 내일도 1원만 벌 계획을 세웠다.
그는 「한국의 기적」을 바라지도 않았고 「제주도의 기적」도 생각지 않고 다만 「_ 한림(翰林邑)」만을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
한 마리의 암돼지와 20여 수의 닭으로 그에게는 충분한 시작일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그에게 제주도민은 「사랑」을 요구했다. 이리하여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찾아주는 「사랑」을 가르쳐야 한다는 결론을 먼저 얻은 메크린치 신부에게 1957년 뜻하지 않는 손님 미군 찰스.앤드슨 대령은 4H운동이 제주도민에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조언을 했다.
이 나라의 기둥이 될 젊은이로 메크린치 신부는 1958년 2월 한림본당의 첫 4H 「클럽」을 조직하고 『훌륭한 농부가 되어 성실한 시민이 되고 우리의 손으로 이나라 재건에 이바지하자』고 다짐했다.
4H 회원은 훈련되고 돼지는 다시 육지서 16마리를 구입해서 종돈 1백50마리로 늘었고 회원에게 분양되었다. 분양된 돼지는 길러 새끼를 낳게하고 그 중 두 마리만 4H의 가축은행에 반환하고 나머지는 완전히 기른 회원의 소유로 한다는 4H운동의 원리대로 순조로운 시작을 하여 임 바드리시오(=메크린치) 신부와 회원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물론 철두철미 자조(自助) 정신이 전부였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