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36) 聖地(성지)서 나를 省察(성찰)하고 人生(인생) 走馬燈(주마등) 되새기며
발행일1963-11-17 [제399호, 3면]
아침 일찍 일어나 대기하고 있다가 합승이 오기에 타고 미사 드리러 갔다. 좁은 굴을 더듬어 지하로 내려가 제의를 입었다. 「메멘또」(산 이를 위하여 묵도하는 곳)하는데 이르러 나는 나의 과거와 현재를 반성했다. 아직 어머님의 젖이 내 생명을 기루시던 유년기의 내 모습은 하나도 상기할 수가 없다. 나라고 해서 발가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온 마을을 쏘다니지 않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 시절의 것은 도무지 기억이 없다. 따라서 그 시절에 내가 혹 무엇 잘못한 것이 있었다해도 그것이 비록 극악무도한 짓이었다라도 나는 후회할 아무런 책임을 느껴야 할 건덕지는 없다. 내가 그 때 잘못한 것이 있었다면 그 책임은 인간을 그렇게 조성하신 조물주께 돌리던지 아니면 범명(犯命)한 아담과 에와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잘못은 바지 밑을 막고 일약 어른이나 된 것처럼 우쭐거리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담벼락에 주렁주렁 달린 호박마다 말뚝을 박았다가 어머님께 들켜 회초리로 호되게 얻어맞은 것은 그것으로 댓가를 지불했다 하자. 먹고싶다는 욕심 하나로 전후를 가리지 않고 남의 참외밭 속에 숨어서 먹다가 개미떼한태 물리고 주인한태 들킬가 무서워 가슴이 조이던 일! 그 후 다시는 남의 외밬에 손대지 않았으니 그것도 그것으로 끄쳤다하자.
그러나 나는 얼마나 욕심을 부렸으며 얼마나 많이 남을 원망하고 미워했으며 얼마나 많이 남의 흉을 봤던가. 얼마나 많이 불만불평을 말했으며 얼마나 많이 상하를 구별없이 비난매도(罵倒) 했던가?
이러한 일은 내가 신부되기 전에 저지른 것은 그래도 용서받기가 쉬우리라. 그러나 모든 것을 천주 성의대로 생활해 나가겠다는 굳은 약속아래 외람되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신부가 된 후에도 내 모병은 고치지 못하여 얼마나 많은 악한 포양을 알고서 혹 모르는 사이에 저질렀던 것이냐?
남의 영혼을 구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거늘 오히려 남을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넌 결과는 없었던건가? 과연 일상 생활에 있어 나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였으며 나의 신앙이 내 생활에 어김없이 반영되었던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고 괴롭기 짝이 없다. 내 신품받을 때 그렇게도 굳게 다짐했던 일들! 하나 제대로 지켜 실행치 못했으니 불쌍하고 가련하기 그지 없다.
나는 빌었다. 이 모든 것을 다 용서해주십사고. 이 모든 것을 용서해주실 양으로 천주 성자께서는 바로 내가 지금 디디고 섰는 이 자리에 강림하사 사람이 되시기를 혐이치 않으신 것이 아니냐? 그것을 생각하니 비록 내 죄 더럽고 무겁기 그지 없다 해도 주 그리스도께 의지하려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내가 신품을 받으려고 제대 앞에 엎드렸을 때와 꼭같은 열정(熱情)을 이 곳에서 다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