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신비로 가득 차있다. 방지거 아씨시 성인의 말씀대로 물은 순수하고 단순하고 정결하다. 물은 주제넘은 주장도 할줄 모르며 어느모로 보나 개성을 드러내지도 않고 얕은 데로 겸손되이 흐르면서 남을 깨끗이 씻어 주고 비옥하게 만들며 소생시키고 있다.
깊은 곳에 고이 고이 잠들어 있는 심연 속을 파고 들어가 그의 신비와 접해서 그의 독특한 매력을 감상한 분은 그 누구일까?
벅차서 세게 흘러개리는 강물을 보지 못한 사람은 또 그 누구이냐? 물이 파도를 일으키고 휘감기면서 용솟음칠 때는 아주 강한 우울증과 현기증을, 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 일으키며 견디어 내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물은 신비에 차있다. 순수하고 맑으며 자신을 바쳐 더러움을 씻고 살증을 풀어주기 위해 항상 대기하고 있다. 물은 또 한상 깊고 그윽하며 쉬지않고 심연으로 흘러내리며 우리를 깊은 곳으로 이끌고 있다. 물은 또 삼라만상의 생명을 힘있게 상징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교회가 천주님의 생명인 성총을 우리에게 넘겨주기 위해 물을 사용하는 이유를 얼마간이라도 알아듣게 되었다. 성세 때 묵은 인간은 물결 속에 파묻히고 죽는다. 우리는 물 속에서 새 사람으로 태어났고 『물과 성신으로 재생(再生)』했다. 우리가 성수를 찍어 성호를 그을 때 우리 안에는 물이 상징하는 깨끗함과 풍요함으로 즉 성총의 신비로 된 새 사람이 자라난다.
교회는 물을 강복하면서 물 속에 잠자고 있는 혼탁한 모든 힘을 몰아내고 물을 정화한다. 자연과 그의 미(美)는 언제나 얼마간의 해롭고 악독한 요소를 내포한다. 무심한 시민들은 이런 섬세하고 잘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저 지나쳐 버리기가 일쑤다.
교회는 이런 악마적 요소에서 물을 정화하고 축성한 후 천주님께 당신 성총을 내리시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시기를 간청한다.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 오면서 깨끗하고 거룩한 이 성수로 성호를 긋는다.
성총에 젖어 있으면서도 죄에 물들은 우리 본성, 비천하면서도 순수하고 고상한 것을 동경하는 우리 자신을 성수로 씻으면서 구령의 기호로 두르는 이 행동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인간은 빛을 위해 조성되었고 밤은 사실상 인간의 원수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빛과 의식이 지워지는 저녁에 정화와 해방의 힘을 갖고 있는 성수를 찍어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마음 속으로 『주여 우리를 모든 악에서 멀리하소서』하고 외치고 있다.
우리는 또 암흑에서 해방되며 의식을 도로 찾게 되는 아침에 우리를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광명으로 인도해 준 성세 성수(聖洗 聖水)를 회상하면서 또 성수를 찍어 십자성호를 긋는다.
재생된 영혼이 정화된 새 자연을 상징하는 성수와 십자가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의미 깊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黃旼性(가톨릭대학장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