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53) 인간의 정감 ②
발행일1964-06-14 [제426호, 4면]
다음 일요일 오후 느지막하게 우리는 서울로 가는 미군용 버스에 같이 탔다.
버스 안에는 가족동반의 「구룹」이 몇 있었는데 하나만 제외하고 그들의 아내는 모두 한국 부인들이었다. 어린 아이가 제법 크고 둘 셋 되는 부부도 있었다.
(나도 장차 저 부인들 틈에 끼는 거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니 뒷덜미가 간지럽다. 그러나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각별히 나에게로 쏠리지는 않았다 가족동반이나, 친구?끼리 짝이 된 패들이나 제가끔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창가에 앉은 나는 창밖에 흐르는 풍경에 대해서 딕슨의 물음에 대답도 하고 내가 말을 걸기도 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서울까지 한시간 남짓한 버스안의 시간은 내가 일찌기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거리에서나 단한번도 맛볼 수 없었던 평화가 있었고 자유가 있었다. 딕슨은 가치(假齒)로 봉한 앞니를 들어내며 때없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오전중 부평의 교외길을 거닐때 동이 엄마의 이야기를 하였었다. 딕슨은 상사부인이 만나고 온 이야기를 듣고 그도 만나고 싶어했다. 그는 동이 엄마를 만나서 좀 더 나라는 존재를 알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나대로 동이 엄마를 그에게 만나게 하고 싶은 이유가 잇었다.
한국의 교양있는 중류가정 부인을 전혀 모르는 그에게 남달리 풍부한 정감과 활달한 성격이 잘 조화된 동이 엄마를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가장 좋은 이해자(理解者)일 것이라는 점에는 서로 일치한 기대를 가졌었다.
다만 내가 걱정이 된 것은 동이 엄마가 구제(舊制) 고등교육을 받아서 영어회화를 못하는 점이었다.
동이네 집에 도착한 것은 아직 이른 황혼 무렵이었다. 문을 두드리니 국민학교 다니는 어린 남매가 앞뜰에서 뛰어 놀다가 나왔다. 마침 동이 어머니는 시장에 가고 없었으나 아이들은 나를 반가이 맞이하며 들어 오라고 하였다.
딕슨은 아이들의 인상도 좋았는지 마루끝에 걸터 앉아서 앞뜰의 화초와 아이들 노는 것을 미소로 바라보았다. 몇분이 채 못되어 「보뿌린」「원피스」에 시장 광주리를 든 동이 엄마가 들어섰다. 나는 급히 위어나가 딕슨을 데리고 사정 이야기를 간단히 했다.
그동안 딕슨은 엉거주춤하니 서 있었다.
『온건 좋다마는 내가 말을 못하는데 어떻게 하니?』
동이 엄마는 독특한 낭랑한 음성으로 웃었다.
딕슨은 그 웃음 소리에 마음이 화하는지 굳었던 표정이 풀린다.
『처음 뵙겠읍니다.』
동이 엄마는 딕슨 앞에 가서 허리를 가볍게 굽히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딕슨은 말 뜻은 모르나 그 웃음에 풀리어 자기도 똑 같이 허리를 굽신한다.
『방안으로 들어 갑시다!』
동이 엄마는 거리낌 없이 한국말로 이렇게 말하며 우리를 동이 아버지의 서재인 넓은 온돌방으로 인도했다.
딕슨은 한쪽 벽을 꽉차게 메운 책장 속의 많은 서적과 니스 칠을 하여 유리판 같이 윤이나는 크림색 장판에 파란 눈이 두리번거린다. 책상 옆에는 생화(生化)가 놓인 다원형의 조그만 자개상이 있는데 동이 엄마는 꽃을 치우고 그 상에다 과일을 가지고 와서 놓았다.
과일을 권할 때도 동이 엄마는 한마디의 영어도 입에 올리지 않았으나 정감이 말의 뜻을 충분히 대신하였었다.
동이 엄마가 잠깐 나간 사이에 딕슨은 나에게 말한다.
『참 좋은 분이다!』
나는 기뻤다. 인간이 서로 통하는 것은 우러나는 정감이지 입 끝의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이 엄마는 말은 모르지만 우리와 합석하여 물을 건 문고 들을 건 들었다.
그 사이의 통역은 내가 했다.
딕슨은 점점 맘의 문이 확 트인듯이 스스로 이런말까지 한다.
『나는 제대해서 본국에 돌아가더라도 다달이 나순의 생활비와 학비를 보내겠으니 부인의 집에 있게 해주세요.』
『아버지가 안계시면 그만한 일은 내가 해주겠어요, 엄연히 아버지가 계신데 제삼자인 내가 그렇게 하기는 어려워요』
동이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아버지의 이해를 얻도록 하라고 전한다.
우리는 시간 가는줄을 모르다가 아홉시가 되었을 때 조급히 자리를 일어섰다.
『저 부인의 집에 네가 있는다면 나는 안심이 되겟는데 내가 떠난 뒤 너는 어디에 있겠느냐?』
돌아가는 길에서 딕슨이 묻는다.
『집에는 안들어 갈 생각이야! 딴데서 하숙을 하겠어!』
『그건 나로서 불안하다!』
딕슨은 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든다.
『너의 아버지 집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느냐?』
『전혀 없다.』
『다시 생각해 보아라.』
『들어가면 다시 뛰쳐 나올거야!』
『그렇게도 있기가 싫으냐?』
『동이 엄마네 집이나 부라운 상사의 집에 있고싶다.』
『너의 아버지는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동의하겠느냐?』
『글쎄? 나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천행 차안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한참 얘기 했으나 해결점을 발견 못한채 부평에 닿고 말앗다.
며칠후 나는 혼자 동이 엄마를 찾아가서 다시 의논을 하였다. 동이 엄마의 의견은 아버지에게 모든 일을 탁 털어놓고 의논하는 것이 해결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 중개 역할을 동이 엄마가 맡기로 하고 나는 일단 돌아왔다.
며칠후 다시 동이 엄마를 찾아갔더니 아버지에게 자세한 전후 이야기를 하였더니 찬성하는 빛이 보였다. 너희들과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니 가보라고 한다.
기쁨과 불안이 뒤섞이며 돌아와서 딕슨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다음 일요일 아침 일찌기 우리는 미군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나는 행복감 보다 변덕스런 아버지가 딕슨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우울한 기분에 싸여 있었다.
우리가 아버지의 집에 도착하자, 예상한 것과는 딴판으로 아버지는 내가 집을 나간 일을 꾸짖지도 않았으며, 딕슨을 대하는 태도도 부드러웠다. 오히려 그는 좀 비굴하게 보일만큼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하던 버릇으로 나를 얼마나 사랑으로써 지금까지 키워 왔던가를 장황히, 늘어 놓았다.
나는 그대로 통역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의미의 말을 되풀이 했다.
『아버지는 너를 잘 생기고 믿음직한 청년이라고 말하고 있다…』
딕슨은 멋도 모르고 그 말을 들으며 좋아라고 웃었다.
『내 말은 긴데 네 통역은 왜 그렇게 짧으냐?』
아버지도 차츰 의심이 생격는지 이렇게 묻는다.
『영어는 짧게 전할 수 잇는 단어들이 많아요?』
하고 나는 시침일 뗐다.
『너의 아버지도 사실은 좋은 사람 같다!』
딕슨은 이렇게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속으로 「노오」했으나 가만히 있었다.
『아버지 집에 있기로 하면 어떠냐?』
아버지가 변소에 감깐 간 사이에 딕슨이 말한다. 나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자 딕슨은 나와 미리 의논한 대목을 끄집어 냇다.
『나순이의 생활비와 학비는 앞으로 제가 맡겠읍니다.』
내가 이 말을 우리 말로 전하자, 아버지늰 「뎅큐」를 연발했다.
『그대신 나순이는 나의 상사의 집에 있도록 하고 싶은데, 찬성해 주시겠읍니까?』
이때 아버지는 「뎅큐」하던 때와는 반대로 얼굴빛이 확 변했다.
『내 자식인데 결혼 전까지는 우리 집에 있어야지 딴데가 있다니 말이 안되지…』
『나는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한참 우리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럼 내가 부평에 가서, 너의 상사의 집을 보고, 상사도 만나 본 뒤에 다시 의논 하자…』
하며 아버지의 표정은 비교적 부드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