完成(완성)된 典禮(전례) 憲章(헌장)의 全貌(전모)
강론에 置重
司牧 兼한 祭祀 成立
實施에는 一定한 敎育 企劃 세워
典禮用語 完全히 自國語 써
地方性 尊重·簡素化에 注力
발행일1963-11-24 [제400호, 2면]
필자=전 미국 전국전례회의 의원장이며 「워싱톤」의 가톨릭대학 교수이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에서는 전례 분야의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으며 한편 NC통신원을 겸하고 있다. 프레드릭.막마너스 神父 記.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아마 신자들을 교회의 공식 예배에 들어서게 한 공의회로 역사에 길이 기념되리라. 10월31일, 전례에 관한 수정(修正) 문서의 끝장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킴으로 약 1년간 끌어오던 전례에 관한 130조목(條目)을 완성했다. 최종으로 약간 더 손질해야 할 일은 공의회전례위원회가 준비 중이다. 이 또한 2·3주간 내에 투표에 회부될 것이며 12월4일, 제2회기 종결까지는 완성된 출간물이 나올 줄 안다.
가톨릭의 전례는 무엇을 어떻게 개혁했는가 하는 것을 요약해서 말하면 ▲모국어(母國語) 사용을 허용하여, 그 고장의 사람들이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 것.
▲전례의 형식을 보다 많은 부분을 참여자들 위주(爲主)로 또한 그 지방성(地方性)을 허용하면서 보다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하였다.
▲사제와 신자들이 예배의 뜻을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
여기 관련되는 문서들이 전부 합의를 보게된 것이다. 그것은 곧 교회의 입법이요 교서가 된다. 가톨릭의 기도와 예전을 쓴 경본(經本) 등의 변경을 위한 포고(布告)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의 큰 관심은 각 본당에서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공의회는 신자들의 기도와 예배하는 생활에 무엇을 고치기로 했으며 그것이 매주일 미사에 어떻게 변경되느냐는 것이라고 하겠다.
주일은 바로 주(主)의 날이다. 이날 교회는 죽음(死)을 쳐이겨 부활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념하는 공식 예배를 드린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이 주일미사에 신자들이 하나이 되어 희생의 제사를 드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을 취하는 그 제사의 방법을 변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 대해서 2·3년래 아주 활발히 논의된 것은 전례의은 부분의 라띤어를 쓰는 대신 제 나라 말을 쓰고 제 나라 국어로 미사성제를 봉헌하자는 것이었다. 성서 서간경 및 복음을 라띤어로 읽고 번역한 것을 다시 읽고 할 것 없이 민중의 언어로 읽고 기구드리자는 것이었다. 미사의 성경 봉독으로 말하면 곧 천주의 말씀을 민중에게 전하는 일이겠는데 사제가 이를 공식으로 봉독할 때는 민중을 등지고 서서 그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읽어왔었다. 주일에 한해서는 그것을 반복해서 제 나라 말로 읽어왔다.
이런 것을 과감히 고쳐서 전반적으로 모국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은 가장 중대한 개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미사는 사제의 손으로 봉헌되지만 그 미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속해야만 하는 기도를 또한 크게 강조해야 한다. 즉 사제에 속하는 부분도 있고 참여하는 자들에게 속하는 부분이 있다면 신자들에게 속하는 대문은 전부 그들의 언어로 드려져야 할 일이다.
「글로리아」 「그레도」 그밖에 찬미경을 나 라띤어로 드리지 않고 국어로 드릴 수 있고 「상뚜스」 「아뉴스·데이」 등도 분명히 알아듣는 국어로 쓰게된 것이다. 미사 시작에는 서간경과 복음경 중간에 구약에서 나온 시편을 읽고 창(唱)하며 영성체 전에는 제헌경을 드린다. 이런 것은 실은 신자들이 드리는 노래요 기도인 만큼 국어사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곳에 따라서는 성영의 읽기와 창(唱)이 이미 부흥된 데도 있다. 성영은 천주의 감도(感導)하심으로 지어진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성가인 것이다. 미사 중에 이것을 다 자국으로 할 수 있게된데 큰 기대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필경 라띤문의 국어 번역이라는 지극히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공의회의 교부들은 일정한 교육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신자들이 본뜻과 기도의 본 의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미사의 모습이 달라질만큼 중대한 변경은 강론 형식이다. 강론이 미사에 잠시 들어있는 한토막같이 되지 않고 미사와 연결된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이미 공의회에서 결정된 이 강론은 적어도 다음 두 가지 큰 계획을 장만한 것이다.
그 첫째는 『천주의 말씀의 예식』(서간경·복음·강론)을 미사의 구성(構成)과 분명히 구분하여 아마 사제가 미사의 한 몫이 되는 이 부분을 신자석 또는 강론대에서 지도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서간경과 복음 읽는 장수가 2년 또는 3년 이상을 두고 더 많은 변화가 있도록 반복(週期)될 것이다.
이것은 사제가 그의 강론 다음으로는 주일 복음에만 맹종하라는 뜻은 아니다. 사제는 미사경본에 마련된바에 의거하면서 전반적인 진리와 교리신앙을 가르치게 한 것이다.
교리는 어느 다른 부분과 분리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합동(合同)되어야 한다는 것은 공의회가 가르쳐 주는 큰 교훈이라고 하겠다. 강론을 어디까지나 전례의 한 부분으로 성립시킬 수 있도록 이같은 마련을 하고 있는데서 잘 알아들을 수 있다. 가령 동정마리아에 관한 교리를 천주의 구속계획의 신비 안에 있는 「교회」에 합친 것도 그같은 뜻을 표현한 것이다.
만일 이같이 된 미사의 경본대로 나가면 그리스도의 신비성을 잘 나타낼 수 있겠지만 혹 장림 첫 주일을 당해서 혼배에 관한 것을 읽거나 강론하게 된다면 그것은 적당하지 못하겠다.
성경과 강론을 천주의 말씀의 참된 전달로 강조한 것은 하나의 교회일치의 경향으로 볼 수 있다.
이론상 교회가 이 부분에 등장할 수 없고 천주의 말씀은 모든 미사에서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실지로 주간날에 미사 중 강론 또는 성경을 읽어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문제시 되고 형식에 그치게 할수도 있으리라. 「프로테스탄」은 어떠냐하면 평소 이 「말씀」에 주력해 온 편이다. 가톨릭 예배의 이같은 발전은, 그들과 가까와진 것 같이 돋보일지 모른다.
모든 공식예배를 민중에게 돌린다는 것은 결국 행동적으로 거기 참여한다는 뜻을 포함한 것이겠다. 이 점은 앞으로 상당한 기간을 두고 강조되어야 한다.
향후 수년간 미사경본과 예절이 변경되어 가겠지만 그 중요한 것은 미사 끝에 마지막 복음, 기구문같은 것이 생약될 것이고 사제의 기구문같은 부분이 간소화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번 강조했음과 같이 신자들이 참으로 행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지 못하면 이런 변경이 큰 효과를 낼 수 없다.
딴 방면에서 전례발전의 앞날을 바라보자. 대화(對話) 미사란 말이 있는데 그런 미사가 따로 있는양 못마땅히 들린다. 모든 미사는 실질적으로 대화미사인 것이다. 어떤 미사임을 막론하고 사제와 신자들간에 「계」하고 「응」하는 대화이라야 하겠기 때문이다.
사제는 지도하고 주재하며 신자들은 거기 응답해가야 한다.
벌써 오랜 세월을 두고 교황들 주교와 신부들이 여기 주력한 보람이 있어 이 방면의 상당한 발전을 한 곳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어느 특별 「그룹」을 제외하고는 아주 생소한 곳도 있다. 신자들이 공동으로 응답하고 경문을 읽으며 성가를 부르는 일은 드물고 보통 침묵의 예절을 기행하고 있는 수가 많다.
비록 주일 미사가 아닌 때도 모든 미사에 적어도 신자들의 간단한 응답과 경문 드리기는 반드시 들어있어야 한다.
장래의 미사경본에는 미사의 신자들의 읽고 창(唱)할 부분이 명백히 들어가야 하도록 공의회는 명문(明文)으로 결정하고 있다. 이러한 변경의 본뜻은 앞으로 중대한 변혁을 가져오겠지만, 오직 거기 얼마만큼 성의 있는 공부를 해가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제와 신자들에게 똑같이 자각을 촉구해야 할 일이며 사제와 미사에 나온 다른 신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이 가장 완전한 그리스도 교도의 예배를 완성해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그 대충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과녁이 될만한 것을 집어서 말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신자들이 사제와 일치하여 행동으로 전례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의회의 가장 중대한 과업의 하나요 교회를 재신(再新)하여 새 활성(活性)을 불어넣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년만 해도 이같은 과감한 전례의 개혁을 찬성할 주교들은 한정되었었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만장일치에 도달한 것은 공의회라는 거대한 과업을 빌리지 않고서는 이같은 일을 감히 성취시킬 수 없었음을 경탄하면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NC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