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54) 인간의 정감 ③
발행일1964-06-21 [제427호, 4면]
『차 먹자고 밖으로 나가자고 해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며 「새 와이샤쓰」를 꺼내입고 나비 「넥타이」를 달았다.
딕슨에게 아버지의 뜻을 전하고 우리는 마당에 먼저 나와 있었다. 외모로 보면 아버지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신사 「타잎」이었다.
버스나 전차를 이용하는 아버지가 특별히 「택시」를 붙들었다. 우리 집 근처에도 다방이 있는데 그는 일부러 명동으로 나와 복판에 분수시설이 있는 굉장히 큰 다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일부러 분수 옆 자리를 잡고 맞은 편에 딕슨을 앉히고 자기 옆에 나를 앉혔다. 「레지」에게 차를 시키고 나서 그가 입을 연 첫 마디는 영어였다.
『시가랫트!』
하며 그는 디슨 한테 손을 내민다.
딕슨은 호주머니에서 「럭키」갑을 꺼내 놓았다. 담배를 피워물고 그는 다방 안을 두루 훑어 보았다. 몇몇 시선이 우리에게 쏠리고 있었다.
그 모양은 마치
『나는 영어를 아는 사람이다.』
하고 먼데 사람에게 자랑이나 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 아버지를 유치하다고 보았으나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내가 딕슨을 보고 말을 할 때는 금방금방 통역을 해라!』
아버지는 나직히 나에게 말하더니 이윽고 딕슨에게 얼굴을 바싹 대며 버릇인 손짓까지 해가며 그자신이 얼마나 어진 아버지였던가를 한국말로 늘어놓기 시작한다.
(신물나는 소리 또 하는구나!)
속으로는 반발을 했으나 아버지의 기분을 돋궈주기 위해서 적당히 가감을 하면서 옮겼다. 먼데서 보면 우리 세사람이 다 영어로 얘기를 하는 것 같이 보였을 것이었다.
담배 한대를 피고나자 탁자위에 놓인 갑에서 다시 한개를 꺼내 불을 당기면서
『시가렛트 텐큐』
하고 그는 여느 말보다 크게 말했다.
그가 아는 유일한 단어를 말하기 위해서 담배를 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이 잠깐 중단된 틈을 타서 내가 걱정하고 있던 대목을 딕슨에게 전했다. 영리한 딕슨은 눈치를 채고, 기회를 보아, 입을 열었다.
『나는 나순이를 부평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원하는데 당신은 동의해 주시겠읍니까?』
나는 고대로 옮겼다.
『노오…』
그는 건너편에 앉은 남녀가 돌아볼 만큼 주위에 울리는 큰 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성난 얼굴은 아니었다.
『…그간 나순이가 집을 나간뒤 미칠듯이 내 가슴이 아팠는데 이대로 딴 집에 보내기는 아버지로서의 정이 허락할 수 없으니 당분간은 내 옆에 두어야 겠네』
아버지는 정감이 흐르는 표정으로 말하다. 내가 예상한 것 보다는 좋게 나온 대답이라 기쁘게 생각하며 그대로 딕슨한테 옮겼다.
『아마 그러실겁니다.』
딕슨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방에서 보낸 시간은 한시간이 넘었으나 애기는 거의 아버지 혼자였고 그것도 딕슨과 나의 장래에 대한 문제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화제는 지둘한 자화자찬을 멤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귀를 기울이던 딕슨도 나중에는 흥미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딕슨이 갈 적에 아버지는 먼저 집으로 보내자고 우리 사이에는 의논이 되었으나 아버지는 구디 역까지 따라왔다. 개찰을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는 또 남의 담배를 얻어피우며
『시가랫트 텐큐?』
하고 큰소리를 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칸에서 아버지는 전혀 말이 없었으며, 우엇인가 혼자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집에 돌아가서 또 머리채를 뜯기는 것이 아닐까, 하고 불안해 진다.
집에 들어와서도 그는 내가 집을 나간 일에 대해서 말을 안했다 .백양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뿜으며, 여전히 생각는 얼굴이다.
나는 아버지의 다변한 입이 침묵으로 들어간 것을 이상히 여기며 그 침묵 속에 잠긴 것이 궁금했다.
십육년간 친딸입네 하고 키운 나를 지금에 와서 내 보내느냐, 혹은 계속해서 키우느냐 하는 문제일 건만은 틀림없었다.
『아버지, 내가 이댐에 잘 되면 아버지의 은혜만은 잊지 않겠어요!』
오히려 내가 침묵을 깨들이고 이렇게 말을 했다.
『부모를 모르는건 벌레나 다름없지?』
아버지는 위협조로 눈을 뜨고 나를 응시했다.
『아버지는 요새 돈벌이도 잘 안되시니깐 내 학비 대기 힘드실거예요. 그러니까 딕슨의 말대로 하세요….』
『…너를 진정 행복하게 해 줄만 한가 나는 그걸 자세히 알아 보아야 한다. 내가 만약 이 집을 나간 뒤에 불행하게 된다면 나는 미쳐죽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눈에 눈물방울 같은 것을 담고 나직히 말한다. 나는 이때 지금가지 아버지에게 한 일들이 좀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난 행복될 자신이 있어요.』
그러나 명랑하게 대답했다.
『너 혼자 덤벙댈 일이 아니다. 어른이 알아 보고 정해야 한다….』
아버지의 말은 부드러웠기에 나는 희망을 가졌다. 막상 십륙년간 살던 집과 인연을 끊고 떠날 생각을 하니 일말의 섭섭함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난 이곳을 떠나야 해!』
스스로 이렇게 다지며 후일 딕슨과 결혼했을 때는 아까 말한대로 경제적으로 아버지를 도우리라고 맘 먹었다. 다음 날은 별일이 없었고 이틀째 되던 아침 부평에 다녀오겠다고 하며 부라운 상사의 부대 「넘버」와 주소를 묻는다.
『혼자 가시게? 말도 모르시면서?』
『부라운 상사 부인이 한국여자라며?』
아버지는 전기 다리미로 손수 바지 주름도 잡고 머리에도 빗질을 여러번 하고 몸단장을 특별히 하였다.
혼자 가는 아버지가 무언지 좀 불안하기도 하였으나 일이 잘 해결되기만을 바라며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저녁 무렵에 돌아온 아버지의 기척을 듣고 신발을 거꾸로 신다싶이 반가히 뛰어나갔더니 대뜸,
『이년… 부평에 또 한번 갔단봐라 죽여버린다!』
하며 소리친다.
『아니… 아니, 왜 그래요?』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며 물었다.
『그까짓 놈들 다 틀려 먹었다! 이년 또 나갔단 봐라!』
하며 내 머리채를 잡더니 머리 뿌리가 지끈거리도록 한바탕 잡아 흔단다.
『이유를 말해보세요…』
나는 발악적으로 소리쳤다.
『애비가 알아보고,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아…』
그는 이렇게 말하더니 몹시 심술이 난 얼굴로 담배만 뻑뻑 빨고 모로 앉는다.
어바지의 입에서는 그 이상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외출하면서 나가면 죽인다고 위협하였건만 그가 나가고 나자 곧 부평으로 갓다. 부라운 상사 집을 가니, 부인이 혼자 있는데 과히 반갑지 않은 얼굴로 맞이한다. 까닭을 들어 보니, 바버지가 어제와서 천 「달라」의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왜 천 「달라」를 내라는 거에요?』
『나순이를 데려가려거든 그만한 돈은 그간의 양육비로 내놓으라는거야!』
『어마!』
나는 내몸이 한길에서 발거벗기운거나 같은 수치감을 느꼈다.
『상사가 화가 나서 「개라웉」을 해도 빙글빙글 웃으며 담배를 달라시지 않아? 「개라웉」 가라는 말도 모르시나? 딸을 팔아 먹으려는 못된자라고 하며 상사가 얼마나 노했는지 몰라!』
너무 도가 넘으니 수치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태연해진 내 자신을 발견했다. 「개라웉」하는데 영문도 모르고 담배를 달래든 아버지의 모습이 더구나 그 신사차림의 모습이 웃읍다기 보다 가증하다기 보다 불쌍했다.
나도 불쌍하게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아버지라는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