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38) 聖地(성지)서 유고 主敎(주교)와 談笑(담소)
바오로 宗徒 잡힌 「체사레아」로
발행일1963-12-01 [제401호, 3면]
산정(山頂)이라 그런지 본래 이 지방에 바람이 잦은지는 알 수 없으나 꽤 거센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닥친다. 발 아래 지중해의 파도가 밀어닥치고 흰 물결이 인다. 맞은 북편에 「쁘똘레마이스」라나 하는 곳이 보이는데 십자군이 상륙하던 곳이란다.
바다에 바짝 붙여 꽤 큰 바위로 성을 쌓았는데 아직도 성벽이 남아있어 지중해 거센 천년 파도에 도전하여 늠늠히 버티고 있다. 검푸른 바다 흰물결을-.
점심 때 어쩌다가 유고슬라비아의 세 주교님들과 마주앉게 되었다. 물론 아직 30대의 젊으신 분들이라서 그렇겠지만 입세도 깨끗하거니와 다른 분들보다 혈색이 월등히 좋으시다. 유고슬라비아인이라 해서 혈색이 유독 좋을리 없겠거늘 박해를 당하고 계시는 분들같지가 않다.
유고의 교회 사정을 물으니 갑자기 추연해지시고 옆에 분이 『내년에 또 만납시다』하니 『천주 원하시면』 하시는 대답이시다. 담배를 권했으나 피우지 않으신다. 대단히 겸손하신 분들이며 그 처지가 우리와 꼭 같지는 않다해도 동병상련격(同病相憐格)이었다.
점심을 끝내고 「채사레아」로 향했다.
연도에 군대 군대 나타나는 지질로 보아 틀림없이 메마른 황무지인데 이다지도 깨끗이 손질하여 옥토를 만들었는가 싶어 이스라엘인들의 끈기있는 노력에 새삼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렇다고해서 인가가 많은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 해서 어찌 이스라엘인보다 게으르기야 하겠느냐? 농번기에 농촌을 돌아본 사람이라면 알 일이지만 그야말로 뼈빠지게 일을 한다. 그러나 가난을 벗지 못하는 것은 웬일일꼬. 영농법이 나빠서 그런가 경작지가 부족해서 그런가. 아니면 삼동내동민하는 까닭일까? 확실히 경작지는 좁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악이라니 그럴 수밖에.
그렇다면 산악을 이용해서 생산을 마련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 국비로써 장학생들을 유학시키고 연구원같은 것을 세워 풍부하지는 못하나마 넉넉한 예산을 주고 우대해서 하루바삐 국토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겠거늘 소위 정치한다는 자들은 서로 상대방의 결점만 들추어내어 서로 지지고 복고들 야단이지, 하나 건설적 제안이라도 해 본적이 있었던가? 이러고서도 입으로만 늘 애국애족하니 울어볼 수도 없고 웃어볼 수도 없는 기막힌 사정이다.
남의 나라의 약진상을 보고 내 나라의 침체상을 생각할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추수한 후 겨우내 우리 농민들은 무엇을 하느냐? 술추념이 아니면 노름이다. 이들이 노름하는 것은 노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위정자들은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잠들지 않는 한 병신이 아닌 이상 한 시라도 거저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손을 놀리거나 책을 읽거나 농담이라도 해야한다. 농담을 할려니 밑천이 짧고 책을 읽자니 소위 고등교육을 받았다 하는 사람들도 귀찮아하는 것을 하물며 농민들이 즐겨하겠느냐?
그렇다면 남은 것은 손장난인데 적당한 부업이 있으면 좋으련만 수지맞을만한 일거리가 없으니 자연 손대는 것이 노름이요 1년동안 뼈빠지게 벌었던 것을 삼동나는 동안 다 까먹고 빚만 지고 나서는 것이다. 이것을 시정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주는 것이 위정자들의 할 일이요 그것이 농민을 위한 길이겠거늘 무엇들 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