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의향 - 人間尊嚴性의 認識
「인간의 존엄성이 전보다 더욱 널리 인식되고 존중되기를」
주 예수여 우리가 아담의 한 조상으로부터 나왔고 또 천주의 자녀되기 위해 불렸다는 것이 당신의 계시였나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 나타나시기 전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외교도로부터 무시당했나이다.
어린이 노예 불구자 늙은이들은 군인과 재능있는자 세력있는자 보다 천시되었나이다. 인간은 다만 이 세상에만 의탁하고 각 개인은 한 볼 수 있는 사회에서 각자 지정된 일을 하고 있나이다. 세상의 이러한 관념은 흔히 잔인성을 초래하게 되나 그것이 주인이나 노에로부터 다 같이 널리 인정된 한가지 체계였나이다. 약속의 상속자였던 유데아민족은 인간이 천주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들은 그들의 희망을 이 세상에 국한시켜 새로운 계시의 기대에 살았나이다. 당신으로부터 양성되고 성신으로부터 교화된 종도들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했나이다. 교회는 그들의 유산을 상속받았나이다. 새로운 세계는 죄와 은총에 대한 반항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탁월한 존엄성이 마침내 인식된 곳에 탄생했나이다.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선교사들은 복음의 빛을 세계 만방에 전파했나이다. 그러나 망망한 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이교주의(異敎主議)의 위험이 언제나 자설(自說)을 주장하고 있나이다. 세계의 면을 덮어 버리려는 그 노력은 그리스도교는 그 박력의 얼마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천주의 빛이 죽음의 어두움 속에 앉아있는 백성들에게 닿는 동안 어떤 그리스도교나라에서는 옛 암흑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고 있나이다.
개인이나 단체 이기주의와 나라와 대중의 권리의 해로운 관념은 인류의 기본적인 동등권을 잊어버리나이다.
형식에 있어 잔인하거나 세련된 새로운 이교주의가 우리 가운데 나타났나이다. 전체주의 국가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했고 우리가 마음 속에서 호의를 보여주었다는 것을 발견하기에 만족을 느꼈나이다. 설령 그들의 참을 수 없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어 해방될지라도 우리는 악과 더 일치하는 세상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신문 · 잡지와 라디오와 여론의 지배를 받을 수 있나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이렇듯이 사랑스럽게 선언한 그 인간의 존엄성을 희생하나이다. 주여 힘차게 반응을 보이고 우리가 천주의 아들이라는 영광스러운 사실을 느끼도록 우리를 도와주소서. 이전보다 더욱 더 당신 성부와 당신의 법과 당신의 교회에 속한다는 존재 의식을 우리에게 주소서. 우리는 당신의 신비체의 지체오 당신 우리의 양이요 우리 각자가 당신께 이름으로 알렸나이다. 당신의 모상을 다시 찾고 그같은 모상을 우리에게 완성케 하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 전교지 의향 - 神學校가 더 늘기를
「신학교들의 수가 증가하고 그 양성비를 가톨릭 공동체가 부담할 수 있도록」
1961년 4월 3일 요안 23세는 공의회 중앙준비위원회에 『전교지방의 요구 특히 사제직에의 성소와 신학교의 유지비에 관해서, 내 마음에서 결코 사라진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 일이 있다. 많은 이전 전교지방에 교계제도가 확립된 것은 옛 그리스도교 나라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교구에서 자치제를 실시한 결과요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상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요안 23세는 PRINCEPS PASTORUM 회칙에서 이러한 그릇된 결론을 내리는 위험에 대해 신자들에게 경고하신 바 있었다. 우리나라에 교계제도가 확립되었지만 아직도 포교성성에 예속되어 있는 것은 아직도 경제적 자립의 바탕이 마련되어 있지 않는 이유이다.
요안 23세는 1960년 6월 5일 아프리카 신자를 위한 방송에서 검은 대륙의 문제에 대해 『아프리카의 교회가 당면한 이 새로운 정세는 옛 그리스도교 나라의 형제적 도움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가 성성한 주교들은 지금도 선교사들로부터 버림을 받지 아니했다는 것이 그들의 진지한 희망이라는 것을 거듭 생각하기에 피곤을 결코 느껴서는 아니된다.』고 명확히 언급하신 일이 있다.
방인 성직자의 수가 증가하면 새 건물 건립 문제가 시급하고 물질 자원 획득의 제한을 또한 받게된다. 우리는 이러한 그들의 요구를 귀담아 듣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무거운 과일의 무게로 부러질 위험이 있는 젊은 약한 가지를 도우는 마음이다. 지금이 전교를 위한 결정적인 순간이요 전교가 교회의 중요 관심사이다. 우리는 애덕과 희생의 정신으로 희사하는 애긍과 함께 사제직에의 더 많은 성소를 위해 기구하자. 이러한 희사는 우리의 기구를 더 긴급한 것으로 하고 우리의 애덕을 더욱 실천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애덕은 우리가 특권으로 속하고 있는 큰 가정의 다른 지체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애긍은 그리스도교적 애덕의 요소적인 특징이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구원된 모든 이의 일치에서 결실을 맺는 보편성에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