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뗑의 夫人(부인)
라이사와 작은 兄弟會
발행일1963-12-01 [제401호, 4면]
1962년 정월 나는 마리땡으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았다. 이것은 「타이프」로 복사한 것이었다. 『나는 내 시간을 전부 내 일에 바쳐야 하겠읍니다. 편지 쓰는 것은 다 중지합니다. 내가 이 땅 위에 다시는 더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재량껏 하십시요. 내 회답은 더 기다리지 말고 내가 이렇게 죄송스럽게 굴지 않을 수 없는 자유를 용서나 하십시요 -마리땡. 이 편지 뒷면에 친필이 몇 마디 더 있었다. 내 아내와 함께 「뚤루즈」를 방문해 주기를 바란다는거와 그것은 예외(방문사절)로 삼고 싶다고 했다. 또 내가 제작한 「필름」을 함께 살고 있는 작은 형제회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초청에 달리 생각할 여지도 있을리 없다. 곧 가기로 마음먹었다. 몇해 전 내 집 전화통으로 마리땡의 음성을 들었다. 내일 「프린스톤」으로 와 주시겠어요. 당신이 아마 잊지 못할 분을 한 분 만나게 해드리지요』 그는 이런 급작스런 초대에서도 달리 설명을 달지 않았다. 이튿날 우리는 「프리스톤」으로 달려갔다.
마리땡의 서제에 앉았던 분은 예수의 작은 형제회 창설자 르네.바이옴 신부 바로 그 분이었다. 그의 얼굴은 나의 어떤 작품의 인물을 연상해주는 쉽게 그을 수 있는 선(線)이면서 그러나 진실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의 친구들도 모여들고 있었다. 이윽고 마리땡은 짧막한 소개인사를 했다. 『우리가 바이옴신부로부터 듣게될 말씀은 내 견해로서는 저 앗시지의 성 프란치스꼬 이래 교회 안에 일어난 가장 중대한 일입니다』고 하는 것이었다.
바이옴 신부는 평상 쓰는 말투로 마치 집 한 채를 짓고나서 그 경위를 말하듯 후꼬신부가 어떻게 예수님의 공생활(公生活) 전의 생애를 본받으려 했다는거와 어떻게 「나자렛」으로 가서 지극히 겸손하고 가난한 몇 해를 보냈었다는거와 그의 지도신부 우벨랭 신부와 편지질을 하고 뒤에 중앙 아프리카 사막 속으로 들어가서 이 수도생활의 규칙을 쓰기에 이르렀음을 줄잡아서 말하는 것이었다.
후꼬는 손수 지은 「타만라세트」의 작은 집에서 괴한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그 후 몇 해가 덧없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심은 씨는 싹트고 있었다. 바이옴 신부가 그의 미완성 수기(手記)를 손에 넣게된데서 시작한다. 그것은 「갈리레아」의 예수님의 가난한 목수생활을 그대로 본받은 수도규칙 그것이었다. 그것을 종잡으면 ①가장 가난한 자의 정착 없는 생활을 같이하면서 그들처럼 일하고 ②일정한 수도복을 걸치지 않으며 ③전교하려 하지 않고 선물을 받지 않는다. ④성체께 조배드린다. 『이것은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어떻게 천주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배우는 길이다』라고 후꼬는 말했다.
「로마」로부터 이 회 창설허가를 얻는데 바이옴신부는 8년 걸렸다. 그리하여 그는 후꼬신부가 피살된 바로 그 지점에다가 이 회를 세웠다. 2차대전 중 사막에는 8명의 「예수의 작은 형제」 회원이 있었다. 우리는 르네.바이옴의 잔잔한 음성을 듣는 중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2차대전 중 7명의 작은 형제들이 프랑수 군대에 동원되었다. 대전 후 그들은 다 살아 있어서 곧 후꼬의 무덤으로 달려 갈 수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오늘날 수백명에 달하는 작은 형제들이 땅 위 가장 처절한 가난의 밑바닥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3명씩 짝지어 그 고장 사람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이웃들이 입는대로 같은 입성을 차린다. 아프리카 같은데서는-그들은 옷이 없으니까- 이 수사들은 긴 옷 수도복을 입었다. 2명은 나가서 일하고 그 동안 한 명은 집안일을 하게 되는데 방은 네 개를 마련한다. 자는 방 한 칸 보통방 한 칸 제대방 그리고 부엌이다. 될 수 있는한 원시적인 그대로의 집모양을 하면서 그러나 정갈한 취미를 붙여둔다. 미(美)는 빈곤 속에서도 살아있도록 사랑의 실천과 무엇보다 관상(觀想) 생활을 한다.
가난 속에 묵살될 수 있는 영성생활을 이런 식이 아니고서 전해질 길은 없다. 실의(失意)에 찬 그들에게 깊은 영향을 보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바이옴 신부가 말하는 동안 라이사.마리뗑(마리뗑의 부인)의 얼굴 표정을 아직도 보는 것 같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글로써 표현할 수 있으랴. 나는 부인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만일 라이사를 말하지 않고 마리뗑을 말할 수 없다면 나는 내 그림이 그것을 표현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우리는 함께 잊을 수 없는 마리뗑 부처와의 그 날 오후를 지냈다. 더우기 잊을 수 없는 것은 바이옴은 잠시 말을 끊고 침묵의 순간을 주는 것이었다. 이(침묵) 또한 얼마나 값있는 순간이며 많은 시간이 천주님 앞에 다 헛된 것을 말해주었다.
내 차로 같이 떠난 바이옴 신부는 작은 형제 회원들이 어째서 마리뎅의 철학적 지도를 필요로 하는가 하는 것과 마리뗑의 철학을 어떻게 적용해 간다는 것을 들려주었다. 『사막은 침묵과 묵상을 거저 시켜주더군요』 그는 복잡한 거리로 나서면서 지원자들이 어째서 사막에서 수련하고 있다는 것까지 설명해 주었다.
라이사는 언제나 명상 속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그 방면으로 그의 사랑을 밀어갔는지도 모른다. 마리뗑과 분리할 수 없는 라이사, 그는 세상을 그의 명상처럼 하직했다.
마리뗑은 지금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작은 형제들과 같이 기거하고 있다. 수많은 기간을 허비했다고 말한 그에게 있어서는 작은 형제들과의 침묵의 순간은 무한이 값있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는 잡을 수 없는 라이사의 얼굴(필자의 스켓취)을 주저 없이 세상에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