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新聞人(신문인)이 지녀야 할 二重(이중)의 忠實性(충실성)
발행일1963-12-01 [제401호, 4면]
현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비오 12세의 국무성 차관으로 근무하고 계실 때 「빠리」에서 1954년에 열린 국제 가톨릭 신문회의에 참가한 이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교황은 가톨릭신문인에게 부과된 이중의 충실성의 요구를 강조하셨는데 즉 그에 대한 충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론에 영향을 주는 여러 방법 중에서 특히 신문이 그것들과 구별되는 특증은 그것이 매일의 사건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또 소식을 알고싶어 하는 독자를 주로 상대로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신문인이 진리와 정신의 교육이란 업적을 가장 흔히 해야 할 것은 매일의 사건이 그 기회가 되는데 이 사건들을 통제하고 제시하고 해석함으로써이다. 그러나 그것이 읽혀지고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대중이 알아듣는 말로써 호소하는 화법(話法)에 숙달되어야 한다. 누구나 또 일조일석에 신문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문의 이러한 벅찬 투쟁에서 가장 용맹한 열성이 불가피한 이 능력과 수완을 보충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가톨릭신문의 책임자들이 특히 이 면에 있어서 모든 이에게 부과되는 노력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회가 가톨릭신문에다 참된 가치를 갖는 이상의 첫 증언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여론에 봉사하고 그것을 계몽할 사명을 갖는 교회의 자녀들로부터 교회가 기대하는 다른 아무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들의 봉사 때문이다. 교회의 사명에 대한 신임이 박약해진 이들을 교우 가운데서도 만나게 된다. 때로는 그들한테서 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난을 듣게되는데 그들은 교회의 반대자를 관대하게 취급해야 한다면서 교회의 약점과 반대자들의 증가를 들어 그 책임을 즐겨 교회로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한 여론 앞에 어떤 이는 초조한 빛을 보이고 어떤 이는 실망을 보이고 있는 오늘 가톨릭신문의 첫 의무는 과연 무엇일가?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은 어머니에게 봉사를 갈망하는 교회의 아들이 되는 것이며 다른 무엇보다도 그는 교회에 대한 느낌과 사랑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가톨릭신문인은 오류를-어떠한 가명을 쓰고 있건- 폭로할 것이다. 그는 교회의 정신과 지도를 따라 교회의 큰 주장을 위하여 봉사할 것이며 특히 사회 정의와 세계평화의 면에서 그러하다. 다른데서 일어나는 교회를 거스린 무자비한 투쟁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나릴 것을 자기의 의무로 삼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의 눈에 아니 선의의 신자들에게까지 주교와 신부와 많은 신자들의 순교를 통하여 교회가 더욱 위대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애정있는 아들 신앙의 사람, 자기의 책임을 의식하는 자로서 가톨릭신문인은 보도의 결핍이나 우리 시대의 요구에 대한 무지를 인류를 위한 교회의 결정과 가르침으로써 보충 공헌하는데 섬세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요 교회의 가르침에 다 그 중요성과 당연한 영예의 자리를 주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보급시키고 그 훈령을 촉진하는데 그의 펜을 즐겨 바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기의 형제들의 현세적 영신적 선(善)은 위한 사업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