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連載講座(지상연재강좌) 敎理敎授(교리교수)의 現代化(현대화) (3) 敎理講話(교리강화)의 主題(주제)
성 바오로 宗徒(종도)의 宣敎師的(선교사적) 敎理敎授(교리교수)에 나타난 것과 오늘에 提示(제시)된 것
발행일1964-06-28 [제428호, 4면]
(성 바오로 종도의 선교사적 교리교수에 나타난 것과 오늘날 최선의 교리교수에서 제시된 것)
우리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주제를 매우 명백히 드러내어야 한다. 마치 벽돌이나 「시멘트」 그외의 재료를 써서 잘 쌓아올려야 건물이 된다는 것과 같다. 그것을 병치(並置)해둠으로만 건물이 되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교리교수법에서도 하나의 조직적인 「메시지」를 형성해야 한다. 초대 교회의 위대한 교리교사인 성 바오로는 특히 교리강화의 주제를 완전히 알고 있었다. 그의 서간성서는 교리의 풍부성에 있어서 훌륭하다. 그와 동시에 내용의 중심 「테마」를 잡는데 있어서도 뛰어난다. 그의 교리는 중심신비라고 하는 하나의 함축성 있는 사실로 되돌아간다.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그의 특수한 성소는 『천주의 영원한 계획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되었다.』(에페소 3-8)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는 것이다. 즉 그가 온 세상에 선포해야 할 「메시지」는 그리스도 안에 우리에게 주어진 측량할 수 없는 천주의 부(富)라고 하는 중심신비이다. 그같은 사상이 로마인에게 보낸 서간 끝에 같은 말로 표시하고 있다. (로마 16-25) 「코로새」인에게 보낸 서간에도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신비가 그의 모든 교리교수법의 요소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코로새 4-3) 또 그는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인식으로 인해 우리는 천주의 신비를 더욱 완전히 인식한다고 한다. (코로새 2-2)
그의 종도적 「메시지」의 내용은 단순히 그리스도였다. 그의 전 설교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사도직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있었다.
그리스도의 신비가 근본적인 「테마」요 그리스도교적 교리를 일치시키는 원칙이다. 천주 성부가 당신을 당신 성자 안에서 우리에게 드러내셨고 우리를 방문해 주셨고 우리를 개적으로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신비체에서 연결되는 놀라운 일치 가운데 우리를 공적으로 당신 본향에 초대하신다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우리의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대한 당신 사명과 「메시지」를 이해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성부에 대해 집중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대한 성부의 사랑의 가장 훌륭한 선물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메시지」의 중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천주의 사자(使者)로서 성부께로 가는 길에 있어 우리의 지도자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천주 중심(성부이신 천주가 우리의 구원의 시작이요 끝이다.)과 그리스도 중심(다만 성부께로 가는 길이다)이란 교리의 요소적인 면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당신과 성부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두가지 기둥이라는 것을 말씀하실 때 뜻하신 바로 그것이다. (요왕17-3) 물론 교리교사중 아무도 이 교리의 기초적인 진리를 부인하는 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가 교리교수 시간에 언제나 명확히 또 강력히 주장 안되는 수가 있다. 예컨대 성모께 대해 가르칠 때 그의 위치를 명백히 해야한다. 물론 우리는 성모가 구세주의 어머니요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가장 완전한 지체로서 인간 가운데 천주안에 영원한 때로부터 감추어 있는 신비(에페소 3-9)의 발전가운데 볼 수 있는 그의 위대한 업적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존경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의 신비에 최고로 봉사했다는 그 사실에 있다. 마리아의 교리와 신심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먼저 그리스도의 신비가 무엇이며 거기 참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우리의 성모께 대한 신심이 성모께 끝쳐서는 아니된다. 성모와 함께 천주께로 나아가야 한다.
이와같이 은총에 관한 교리도 그리스도의 신비와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교리는 강생하신 성자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감히 부당한 자로서 천주의 생명을 나누고 천주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은총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그 지체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 교리는 그리스도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신비의 이러한 점을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 너희들 안에」라 표현했다. 우리의 교리강화(講話)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은총」이다. 그러나 모든 은총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지적함으로만은 부족하다.
은총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만이 아니요 포도나무에 비할 수 있는 그리스도와의 생명으로 사는 공동체이다.
우리의 좋은 소식의 이 함축적인 견해는 분명히 좋은 교리교수법의 성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교리교수법의 쇄신을 철저히 강조해야 할 이유가 여기있다. 우리는 아직 교리교수법처럼 생각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말자. 왜? 물론 좋은 뜻을 안가진 교리교사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직 성공 못한 이유는 우리의 모든 교리교수법의 중심에 그리스도와 그의 신비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로지 교육의 불충분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교리교사는 어느 단계에서 너무 자세하고 철저한 교리해석을 못해도 좋다. 특히 수녀들은 이미 여러가지 교리의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이 보여준다.
그러나 먼저 그들이 필요로 할 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의 여러가지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수녀들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요구된다. 그러므로 선교적으로 방향을 둔 신학연구의 특수목적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학생들이 할아야 할 모든 면에 분명하게 나타나도록 해주는데 있다. 그리하여 교사들이 교리를 병치함으로 전체의 시각(視覺)을 잃고 옆길로 빗가는 자 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신학이란 천주께서 당신계획을 그리스도의 계시 속에서 우리에게 알게하셨고 그를 가능한 한 우리가 이해하도록 하는 체계적인 노력이기 때문이다. 이 계획은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리신 그리스도 안에 한몸이 되게하신」(에페소 1-10) 거기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