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39) 온갖 榮華(영화) 獨(독)차지 했던 로마 盛史(성사) 찾을 길 없고
발행일1963-12-08 [제402호, 3면]
차는 밀감나무밭을 누비고 바나나밭을 지나 달리고 굴러 「체사레아」 폐허에 이르렀다. 지금은 바닷가에 내버려진 인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폐허이지만. 그 옛날 바오로 종도 때는 로마 총독 페릭스가 주재해 있던 곳이다. 산 하나 보이지 않는 이 해변에 어디서 운반해 온 바위인지 큼직큼직한, 정으로 다듬은 바위로 쌓아올린 벽들이 남아 있고 「아취」형으로 된(廻廊)도 아직 남아있다.
건축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지금 이 형태만으로서는 건물의 구조를 추정해 낼 수는 없으나 여하간 투박지고 완박한 건물임에는 틀림 없었다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요원(요原)의 불길처럼 일어나 한 때 서반구를 휩쓸고 깨끗이 꺼져버린 로마민족, 지금은 한톨의 씨조차 찾아볼 수 없게 전멸되었다지만 하여간 굵고 힘찬 민족이였나 보다.
우리가 이곳에 찾아온 것은 로마인들의 유적을 보려옴이 아니다. 이곳은 외교인의 사도라 일컫는 바오로 종도를 추모함에서다. 「종도행전」 27장17절부터 27장2절까지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오로 종도께서 제2차 전교여정을 마치시고 「밀레또」에서 이곳에 돌아오셨을 때 『「예루살렘」에로 올라가지 말라』는 아가보 선지자와 교형들의 권고가 있었지만 『나는 예수를 위하여 결박뿐 아니라 또한 죽음이라도 받기로 예비하였노라』(종동행전 21장13절) 하사ㅣ면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다가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아 시비가 벌어져서 그들 손에 죽을번 했는데 다행히 당신 생질(생_)의 재치 있는 알선으로 천부장(千部長) 리시아에게 이 사실이 알려져 당시, 펠릭스란 총독이 주재하고 있던 이곳 「채사레아」로 호송되어 2년 이상 머므셨던 곳이다.
여기 우리가 하나 알아둘 것은 바오로 종도께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바오로 종도께서 당신이 「고린토」 후서 11장22절에 분명히 밝히심과 같이 해브레아인이요 더우기 종도행전 23장6절에 친히 말씀하심과 같이 「바리세이」였다. 그러나 그 부친이 돈을 주고 로마시민권을 샀기 때문에 바오로 종도 또한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유데아 관헌에게 보다 직접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하셨고 또 그 말씀이 용납되어 이곳 「체사레아」에서 로마로 호송되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권력 가진 자들의 불의와 부패는 언제나 있었던 모양으로 펠릭스는 바오로가 무죄한 줄을 번연히 알았으면서도 뇌물을 바라서 그를 석방하지 않았고 페스 또는 유데아인에게 인심을 얻고저하여 호송 중 피살될 위험이 많은 바오로를 「예루살램」에 가서 재판 받기를 원하는지 물어보았고 아그리빠는 바오로 종도께서 체살에게 공소했다는 핑계로 그를 즉석에서 석방하지 않았다.
권리란 본시 정의와 정도를 펴기 위해 인간에게 주워진 조물주로부터의 특별한 선물이겠거늘 이것을 받은 인간은 마치 제게 부여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특권인양 사리사욕을 위해 제멋대로 휘두르니 한심한 일이다. 이런 자들을 맞같게 준절히 벌하기 위해서도 연옥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