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信徒(평신도) 눈에 비친 美國(미국) 겉 핥기錄(록) - 美國(미국) 가톨릭 안팎 (19) 한국 간호원들 ③
임명도 받지 않은 외교관 노릇해야
환자가 간호원에 친절한 나라
발행일1964-07-05 [제429호, 3면]
(방담자 명단) ▲발비나 박복연 ▲막달레나 양은경 ▲필로메나 김영자 ▲임마클라 조순자 ▲막다레나 은숙 ▲헤레나 이행자 ▲도나
E. 『나도 이곳 사람들이 대체로 친절한 것을 인상적으로 느꼈어요. 한국에 있을때 간호원들이 불친절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걸 들었는데 우리도 더 친절히 환자를 대해야 겠지만 환자도 간호원들을 애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대요. 서로 친절해야겠다 싶더군요.』
A. 『여기와서 일하기 좋은건 환자들이 말을 잘 들어주는데 있는 것 같더군』
F. 『정말 그래, 수술후 「일어서 봐요」하고 말하면 있는 힘을 다해서 일어나려고 하데. 그렇게 의사 지시를 잘 딿거든. 근대 우리나라 형편은 간호원이 의사지시대로 「일어나세요」, 「앉으세요」하는데 「수술 막 끝난 사람 보고 어떻게 일어서라는 거요」식으로 나오니까 간호원의 표정도 아름답게 안되기 쉽잖아.』
F. 『미국에 올 때는 미리 준비해가지고 올게 한두가지가 아닌듯해, 사람 접촉을 매일 하게 되는데 동양인 간호원이니까 호기심이 있어 그런지 한국에 대한 걸 많이 묻거든, 또 어떤 가정에 초청되면 한국노랜 어떤 거냐고 불러 달라는 사람도 있고 -한국 민요도 공부해오고 간단한 한국춤의 「스탶」도 배워 뒀더라면- 하는 후회도 생기더군.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민간 외교관이 되는게 사실인 것 같다.』
E. 『미국에 올 때는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국을 대표하는 긍지를 가져야 하는게 사실이야. 우리가 하는 행동이나 표현으로 「한국」이란 나라의 인상을 좋게도 봤고 나쁘게도 봤고 하니 말야.』
C.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와야겠어, 그리고 종합병원 수라든지 큰 병원의 「벳드」수라든지도 알아오고 -가끔 말문이 막힐 질문을 하는덴 질색이거든. 그리고 참 남자고 여자고 간에 미국 올때는 요리 만드는 법을 배워와야겠어. 대개 자취생활 하기 쉬우니까.』
F. 『그래 그래 요리 솜씨가 있어야 해.』
E. 『영어 회화도 좀 더 익혀 왔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우기 병원에서 쓰는 용어를 한국 있을때 선배한테 배웠더라면 한결 나았겠는데 「간호 기록부」 같은 것에 대해서도 그렇구.』
B. 『미국에 대해 미리 알고 올게 많지 뭐, 「미국에 대해 미리 알고 올게 많지 뭐, 「에치케트」도 그렇고 문화생활 풍속 등 다-』
C. 『간호원의 의학 지식이 너무나 빈약했음도 고백안할 수 없군. 공분 그래도 한답시고 했는데 얼마나 부족한지-』
D. 『간호 학교에선 실습도 많아야겠고 교양시간도 많아야겟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 일반 사회생활 속에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A. 『학생교육도 철저하더군』
E. 『약을 다루는 태도 하나도 신중하고… 』
D. 『아이 참 글쎄 걸음 걸이까지도…』
B. 『정말 철저해 그리고 영양학에 대해서도 배워야겠어, 환자 식사 「오다」대로 식사 이름을 알아야지, 수백종이니 말야. 한국은 미움과 죽 그리고 밥만이 환자식사였으니까 좋았지만, 배울게 한두가지가 아냐.』
C. 『환자한테 약을 갖다 주면 「이게 무슨 약이죠?」하고 묻는 수가 있는데 의사는 말해줄 수 있어도 간호원은 말해서 안되는 수도 있잖아.』
G. 『이곳 간호원들은 무척 건강해』
F. 『얼마나 일이 고된지 하긴 한국에서처럼 일이 질질 끌려다니지 않는 대신 8시간 근무는 철저히 일을 하게 되었잖아. 일 끝나고 나면 충분한 수면이 절대 필요할 정도야.』
B. 『태만 할 사이가 없어. 조직이 그럴 틈을 안주니까』
D. 『난 병원 아네서 의사나 간호원이 개인적인 전활 한번도 걸거나 받거나 하는 걸 본적이 없어』
B. 『책임감은 최고야. 공사구별도 철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