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連載講座(지상연재강좌) 敎理敎授(교리교수)의 現代化(현대화) (4) 敎理(교리)재료의 올바른 順序(순서)
義務(의무) 强調(강조) 아니고 기쁜 「메시지」傳達(전달)
발행일1964-07-05 [제429호, 4면]
「믿을 교리」 「지킬 계명」으로 된 「요리 문답책」은 현대 교리교수법의 요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어떤 단편(斷片)만을 전달할 수 없다.
우리의 「메시지」는 선교적 문제를 제기한다. 교리 강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우리는 전호에 보았다. 오늘은 교리교수 재료의 올바른 순서가 무엇인지 보자. 이 문제는 과거 20년 이래 고려해온 것이다. 요즘 요리교수 재료의 올바른 순서를 정하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문제는 오히려 이러한 순서를 정하는 것을 적은 일이라고 무시하는데 있다. 이러한 자들은 성사편과 계명편이 믿을 교리편 앞에 오더라도 상관치 않을 자들이다.
왜 우리는 이러한 순서를 필요로 하는가 좋은 선생은 생도들에게 근본관념을 파악시키고 또 강의의 각 부문을 서로 연결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재료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생도들도 그들의 매일의 경험에서 그러한 순서에서 오는 교훈적인 가치를 한 강의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강의의 전체의 내용을 알고 싶어 한다. 종교교육은 다른 교육보다 더욱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천주의 사자로서 다만 어떤 특수 교리 뿐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선교(케링마)를 선포할 의무가 있다. 이 선교가 이미 우리가 본 그리스도의 신비이다.
우리는 저학년 생도들에게도 단편적인 어떤 교리보다 전체적인 것을 가르쳐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성서이야기에서 아이들의 나이에 알맞게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천주의 사랑을 파악하기에 도움이 되는 교리교수 재료를 선정해야 하다.
선의를 가진 생도나 신자들이 아직 그리스도교적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종교가 사실 그들의 생활에 산 힘을 못주고 있다. 이 한탄스러운 사실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종교교육이 흔히 어떤 단편적인 교리를 가르치고 어떤 특수한 종교생활 실천을 명하는데 완전히 휩쓸리기만 하고 주님의 「메시지」를 조금밖에 선포하지 아니하는데 있다.
어떻게 하면 교리교수 재료의 올바른 순서가 생도와 교리교사를 도울 수 있는가. 첫째 이것은 교리교사 자신에게 유익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신앙의 유산을 올바른 반향에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를 선포하는 것이 우리 주심 자신이 주신 교리교수법의 음색(音色)을 드러낸다.
만일 교리교수법의 내용이 우리를 위한 천주의 영원한 사랑의 선표와 천주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대답처럼 제시되면 또 단편적으로 가르치는 교리가 이 중심사실에서 명백히 흘러나올 때 생도들은 그리스도의 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리교사 자신이 재료의 중요한 윤곽을 더 깊이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교리시간에 전체적인 중심사상에 맞추어 그 시간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매번의 교리시간마다 그러한 윤곽에 맞춘 정확한 자리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이러한 올바른 전망 속에서 제시되면 단편적인 교리가 이미 얻어진 인식과 교육과 함께 생도들의 마음에 유기적인 전체에서 그 자리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리시간에 좋은 교리교과서에서 주어진 순서에 따라 가르치면 좋을 것이다. 그러게 하는 것이 우리가 신앙의 모든 보물을 취급할 수 있는 필요한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면 교리교수 재료의 올바른 순서에 따라야 할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 현대 교리교수법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가운데 세가지가 여기서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다.
전체 윤곽이 명백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 요소적인 것이라야 한다. 즉 명백해야 한다는 것은 쉽게 읽고 기억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하고 또 그것은 우리의 생활의 모든 「프로그람」을 위해 짧고, 요령을 얻는 안내를 우리이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할 이유는 평범한 아이들이나 단순한 어른들이라도 그것을 쉽게 취급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리스도교적 생활을 「리드」하는 한가지 방법으로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소적이라야 한다는 것은 그것이 주제의 본질에서 흘러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목표는 참 「그리스치아니즘」의 정신을 아이들에게 넣어주고 그들을 종교의 내부 지성소에 인도하는데 있다.
교리교수의 재료를 올바른 순서를 호교학적으로 배치해서는 아니된다. 그것은 우리를 신앙의 교리의 내부 지성소까지 인도하지 못한다.
또 교리교수 재료의 다른 성격은 교훈적인 것 보다 먼저 신학적이라야 한다. 신학에서 그리스도교 계시의 중요대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의 천주시다. 이 천주가 그리스도 안에 당신 영광을 나누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성 바오로는 이것을 선교라 부른다. 우리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그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파견된 자이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우리의 교리교수법을 본질적으로 남에게 천주의 계시를 전하는 데 있다. 천주의 계시의 특수한 성격을 가능한한 명백히 드러내어야 한다. 우리는 또 모든 시대를 통하여 천주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시고 계시며 또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알려야 한다.
그러므로 교리시간의 중요 제목은 그리스도교적 종교의 역사적 성격을 명백히 묘사해야 한다.
우리이 교수법은 구원의 역사를 적으로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제목의 순서는 가치(價値) 구조(構造)에서 오는 주제를 명백히 제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리체계의 윤곽이 의무를 나열하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되고 오직 우리의 종교가 그리스도의 신비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기쁨의 영광스러운 「메시지」의 선포처럼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부(富)를 이야기 해야 하기 때문에 교리시간의 중요제목은 우리의 「메시지」의 그리스도 중심성격을 명백히 띠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