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學(동학), 基督敎(기독교)의 異端(이단)?
徐廷道(서정도) 神父(신부)님을 追思(추사)하며
서 벨라도 신부님께서 대구를 떠나신 이래 이제나 저제나 벼르다가 한번 가뵈옵지 못한채 승천하셨다.
옛 이야기를 들려 주실 수 있는 집안어른이 또 한분 줄었다. 다시한번 더 여주어 보려던 이야기였는데 이제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발표 아니할 수 없다.
어느해 여름 대구에 들르신 윤 마두 신부님에게 그 어른이 하신 이야기-윤신부님은 나더러 글로 발표하라고 부탁하신 사연이다. 서 신부님께서 열살 전후, 그때 생존하신 당신의 아버님에게 역력히 들으신 이야기- 『동학이 우리 천주교에서 갈라진 하나의 열교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라고 신부님은 처음 듣는 귀를 놀라게 하였다.
『왜 그런고 하니, 정다산(丁茶山) 선생이 고향에서 글을 가르치고 있던 무렵 천하의 수재들이 모였을 것 아니오? 그런데 그중 하나가 그것도 제일 출중한 선비가 어느날 부지거처가 되었더랍니다.
그 선비를 충심으로 존경하던 동문(同門) 하나가 있었는데 자기가 가장 아끼는 친구가 그리워서 그만 병이 날 지경이었더랍니다.
그러나 서 신부님은 그들이 성명을 잊으셨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연대도 모르신다. 아마 아잇적 일이라 그런데까지는 미처 캐 묻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아, 그래, 그 친구가 그 선비를 찾아 팔도강산을 샃샃이 뒤졌으나 그 자최를 모르다가 얼마나 지났던지, 한번은 경주 땅엘 들어섰더랍니다.』
나는 「경주땅」이란 말에 귀가 쫑긋해지면서 정신이 쏠렸다. 또 『그 땅이 경주 어딘가?』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나 서 신부님은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신다.
『그런데 거기는 수석이 맑고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인데 마침 석양때는 되고 다리는 아프고 해서 시냇가 나무 밑에 앉아 쉬노라니 산 골짜기로 내려오는 길로 정자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들이 책을 끼고서 하니씩 내려 오더니 각기 동네로 흩어져 올아가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경주에 살았었고 가끔 다니기는 하나 신부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그러한 현장을 상상할 수가 없어 답답해졌다.
『선비들이 다 돌아가고 난 뒤에 그 친구는 그네들이 내려오던 산 길을 혼자서 되 올라 갔읍니다. 필경 이 위로 가면 강학(講學)하는 글방이 있으려니 하는 짐작은 들어맞았지마는 방 안에 들어서자 아랫목에서 일어나 맞는 훈장이 자기가 오매불망하던 바로 그 수재 인줄은 몰랐더라니다.』
정다산 선생은 「서학」을 가르쳤을 것이니 이 선비도 천주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러면 왜 그가 스승을 배반했으며 세상마저 등졌던가? 천주의 상선벌악은 동양의 전통 정신으로도 납득될 수 있었으나 성자의 강생구속은 당시의 선비들에게 일반적으로 얼른 용납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네들은 「서학」에 대립하기로 「동학」이라 자칭했다는 것이 서 신부님의 해설이었다. 그런데 이 동학의 발상지가 바로 경주라는 사실이 이 이야기를 뒷받침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생각해 보시오. 「시천주조화정 영세물망 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라든지 특히 「천주」라는 명사는 동양의 다른 철학에는 없거든. 「천주」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담대하게 말하는 사상이야 말로 그리스도교가 아니고 동양 사상의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읍니까?』
나는 그 후 「동경대전」(東經大全)을 훑어 보았고, 박종흥 박사의 글에서 단편적으로 「동학」에 관한 글귀를 보았으나 결국 그네들은 「지상천국」의 꿈에 치우쳤다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지상에서 최후의 수단인 혁명으로 사회개혁을 시도했던 것이다. 「스케일」의 크기는 다르지마는 이와 똑같은 역사가 청조말(淸朝末) 「대평천국」(大平天國)의 혁명이었다. 「홍수전」(洪秀全)은 『내가 예수의 아우다』라고까지 장담했다.
최근에 나는 경주출신인 박문군자 김범부(博聞君子 金凡父) 옹에게 이 이야기를 들렸더니 그 경치 좋은 곳이 바로 최제우(崔濟愚) 선생의 고장인 용담(龍潭)이라고 그는 단정하면서 당시 정(丁)씨와 최씨는 남인이라는 동색(同色) 관계로 서로 내왕이 자주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이 이야기에 오하(5何)가 분명치 못해 정식 사실(史實)로 규정은 못할망정 신빙성이 충분한 전설임이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김익진(文責在 筆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