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 「뉴로쉘」시의 쟌 로마니 헬로 몬시뇰은 「홍콩」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람이다. 그는 거기서 국수 신부라 불려지고 있다.
가톨릭 구제회 지도자로서 그는 한달에 1백만 「파운드」의 국수를 굶주리는 중국 피난민에게 배급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미국민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사실 그의 국수는 백만인을 구했다. 그의 국수 「프로그람」이 이렇게 성공하는 바람에 일본 대만 월남 필립핀 인도 등지에서도 공장이 설치되는 등 국수 「붐」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곳에 벌리고 있는 「보리싹 식당」이 유명하다.
그는 국수 「프로그람」을 시작한 동기를 「뉴욕」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그는 어느날 5「파운드」의 밀가루를 빵집에 가져가서 2「파운드」의 국수와 바꾸어 오는 한 작은 중국 소녀를 보았다. 로마니엘로 몬시뇰은 미국 잉여양식(剩餘糧食) 행정 책임자로서 그것이 불공평한 처사임을 느꼈다.
그는 『넌 다만 두 「파운드」의 국수를 받았으니 이건 공평하지 못한데』하고 그 소녀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난 국수를 삼을 줄 알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그걸 잘 먹어요. 또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밤 늦게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하고 이 소녀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 소녀야말로 로마니엘로 신부에게 멋진 한가지 묘안을 가져다준 것이다. 도시에 넘치는 피난민들을 위해 밀을 국수로 바꿀 수 없을까? 굶주린 자들은 빈 손으로 온 것이다. 그들은 밀가루나 옥수수가루나 우유가루를 그들 식성에 맞는 음식으로 바꿀 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이 신부는 1957년 자기 「프로그람」을 실천에 옮겼다. 그리하여 이 국수 신부는 홍콩 「귄」가(街)에 가톨릭 구제회 본부를 두어 식료품 상점에는 그가 만든 국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우유가루와 옥수수가루와 소맥가루로 하루에 4천 내지 5천 「파운드」의 국수를 만들러 낸다.
작은 가루 뭉치가 엷은 판에서 압축되어 제단기로 롬겨지고 다시 칼밑으로 들어가 그것은 긴 실로 뽑혀나온다. 그것을 대나무 막대기에 걸어 햇볕에 말린다. 비가 오는 날은 전기건조기로 말릴 수 있다.
국수는 「미국 국민의 기증품」이라 영어와 중국어가 쓰여진 종이 주머니로 포장된다. 여기서 한주일에 만 「파운드」 이상의 포장이 분배된다.
「홍콩」에서 이태리 공업 박람회가 있은 후 국수 기계 최신식 제작자가 이 적은 공장을 견학한 일이 있었다. 그는 이 계획에 많이 감동되어 그는 그 박람회에 출품한 기계를 여기다 선사했다.
이 국수 신부는 「뉴 로쉘」에서 친척들을 방문했을 때 또한가지 보다 큰일을 했다. 그는 내무장관과 농림장관과 더불어 본토에서 생계를 해나갈 수 없는 농부들이 일할 수 있는 세계적인 국수 「프로그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국수는 구호품으로서 공으로 배급된다. 저축된 돈은 농지 개량과 장구(裝具)에 충당된다. 또한 이 국수 신부는 이 농토가 노동자에게 신문에 알마는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하고 있다.
금년에 미국은 1백 이상의 나라에 구호물자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로마니엘로 몬시뇰의 말에 의하면 그 「프로그람」은 『증여자가 백성 그 자체를 도울 수 없는 방법』이다.
왜 경제적으로 개발된 나라를 도우지 못하는가? 하고 그는 말하고 있다.
이 국수 신부를 집으로 방문하면 그는 국수 접시를 들고 있다. 국수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한다.
『네 우리집에서 하듯이 한사발 가득 먹습니다. 그러나 나는 동양에 오니 오래 되었기 때문에 중국식 국수를 좋아하지요』
(「가톨릭다이제스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