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응답] 典禮(전례)와 自國語(자국어) 使用(사용)
발행일1964-07-12 [제430호, 4면]
【문】 교리전례어는 「라띤」어인데 어찌하여 일부지방의 방언삽입을 자랑인양 기재하고 있읍니까?(「가톨릭시보」 제424호 1면=編輯者 註 질의자가 지적한 기사는 주교회의의 전례 및 교리위원회가 전례속에 한국민족문화 · 풍속을 흡수하려는 것)
「한 신앙 한 말」(UNA FUDES UNA KINGUA)을 고이 간직함이 옳지 않습니까?(경북 하양 朴)
【답】 귀하의 질의에 대한 답은 역사 가운데 있다고 봅니다. 즉 변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아니요 교회가 그 종교신앙 형식을 통해 천주의 나라를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인간의 종교적 인간적 조건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주의 말씀을 우리에게 이해시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국어 미사경본책이 출판되고 해설자가 전례의식(典禮儀式)의 뜻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식적인 수단으로써는 도지히 문제의 핵심을 찌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 공의회의 전례에 관한 헌장(憲章)에서 전례 가운데 천주의 말씀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읍니다.
예컨대 오늘까지 미사에 천주의 말씀을 우리는 듣고 있읍니다.
그러나 수세기이래, 이 천주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이해가 안가는 말로써 사제가 낭독합니다. 낭독하는 가운데 혹 그 전후에 번역한 것을 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일종이 메우는 것 밖에 안됩니다.
미사경본을 보면서 한사람 한사람이 읽으면 되지 않느냐 하실 겁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읽는 것과 말씀을 듣는 것과 다릅니다.
성당에서 성서가 낭독될 때 말슴하시는 이는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신자들은 이 말씀으로 양육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전례는 포교나 선교를 직접의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신비가 거듭되고 전례중에 전해지는 것이 사람에게 이해되는 것이라면 신앙의식에 참여할 때 반드시 그 의식(儀式)을 알아야 할 겁니다.
「코린토」전서 14장 9-23절을 읽어보십시오. 바오로 종도는 전례에서 말씀이 사용되는 것은 천주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모여있는 신자들이 모두 「아멘」이라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라 말씀하셨읍니다. 따라서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 아닙니다. 전례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만 무지에 대한 양보다 시대유행을 따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의식이 계시요 구원의 신비의 전달이라면 신자들이 아는 말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은 합법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