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連載講座(지상연재강좌) 敎理敎授(교리교수)의 現代化(현대화) (5) 現代(현대)에 맞는 敎授指針(교수지침)
强調(강조)할 것과 말아야 할 것들
발행일1964-07-12 [제430호, 4면]
먼저 예비지식을 몇개 열거하겠다.
우리는 성부의 사랑과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본질적이다.
천주의 본성에 관해서는 추상적으로 시작하지 말고 천주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그러한 것을 하신 천주가 누구인지 이해할 것이다.
천주께 대한 관념을 집어 넣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특수한 교리를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천주의 위대성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생도들은 교회의 다른 교리도 중하게 여길 것이다. 교리교사의 영적생활이 천주의 위대성을 인식케 하는데 있어 절대 필요한 열쇠이다. 천주가 교사의 기도생활에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이러한 예비지식을 넣어준 다음에 천주의 사랑과 인간의 배은과 천주의 자비에 대해 가르친다.
창조의 이야기가 천주의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세가지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천주께서 무엇을 어떻게 왜 만드셨는가.
젊은이들은 자기자신보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 관심이 더 크다. 천주가 만드신 훌륭한 세상을 보여준 후 인간 -아담, 에와- 창조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일하시는 것과 천주가 하는 일을 대조한다.
사랑이 넘쳤기 때문에 만물을 만드셨다. 저학년에서 『천주가 당신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세상을 만드셨다.』는 표현은 피해야 한다. 죄가 우리를 위한 천주의 사랑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것을 가르치면서 천주의 사랑과 인간의 배은 사이에 벌어진 비극을 역설한다.
아담의 죄 안에 우리는 대죄의 표준을 배운다. 그것은 완전히 알고 자유로, 천주의 양자가 아버지에 대해 반역한 것이다. 아담의 죄를 제시할 때 그 이야기 뒤에 천주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요리가 무엇인지를 중시해야 한다. 즉 이렇듯 사랑하올 아버지께 대한 인간의 지겨운 배은이란 것이 중대하다. 사과나 갈빗대 등이 중요치 않다. 또 뱀이나 7일창조설을 문자 그대로 이해시키지 말 것이다. 6·7세 아이들이 대죄를 범할 수 없다.
이 나이에 대죄로 성립되는 조건 등을 그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인간이 천주의 자비를 받기에 부당했으나 천주는 넘치는 자비를 보여주었다.
원죄를 벌하심으로 천주는 죄를 미워하셨다.
그러나 구세주의 약속으로 그의 자비를 보여주셨다. 저학년에서는 구약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이야기하고 성모영보란 약속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구약에 대해 더 이야기하라.
그리스도를 요약할 수 있는 「심볼」이 초대교회에서 즐거이 쓰던 희랍어 「익투스」=「물고기이다」의 다섯글자의 머릿말을 따면 예수 그리스도 천주의 아들 구세주란 뜻이다.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업적을 가르쳐야 한다. 그는 성부로부터 파견된 신신(神人)이다. 즉 영원하신 성부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신이요 동정 마리아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다. 그의 업적은 구세주 되는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생활의 ABC를 적어도 가르쳐야 한다. 소극적인 업적은 그가 죄를 범할 수 없다는 것이요 적극적인 업적은 그가 성부의 사랑을 드러내고 그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고 천주의 자녀들의 큰 가정을 건설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께 대해서는 천천히 구체적으로 성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천천히 즉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가장 내부적인 핵심을 명백히 할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즉 복음서에서 나오는 사건을 이야기 하라.
사건과 신비를 구별해야 하며 사건을 통해 신비를 가르치라.
성실하게 즉 감정적으로 드러내지 말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성실하게 드러내야 한다.
특히 그의 영성의 가장 특징적인 점 -예컨대 그의 성부중심-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와 그의 신비들을 구별해야 한다. 전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원에 대한 성부의 계획이다. 후자는 성부가 그 구원의 계획을 그리스도의 생활을 통해 계단적으로 실현하시는 사건 등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본적인 신비 등을 가르친다. 첫째는 강생이다.
강생의 뜻은 교환에 있다. 즉 천주의 아들이 우리로부터 우리의 인간성을 받았고 그대신 당신의 천주의 부(富)를 우리에게 주셨다. 강생의 목표는 우리를 천주의 자녀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천주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강생은 구원의 사업의 싹이 되는 것이다.
강생의 동기는 우리를 위한 성부의 큰 사랑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모의 위치를 생각해야 한다.
천주의 나라에 있어 어떤 이의 업적은 천주의 계획에 있어서의 그 역할여하에 달렸다. 마리아 신심에 대한 가톨릭의 태도는 첫째 교리적이다. 즉 그 신심은 그리스도교적 교리에 절대적으로 기인해야 한다.
둘째로 그것은 그리스도 다운 애정이다. 그리스도는 마리아를 성무가 준 가장 위대한 선물처럼 보신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봐야 한다.
셋째로 그것은 조화(調和)적이다. 즉 마리아는 천주님의 계획에 있어 다른 어떠한 피조물보다 초월하다. 그러므로 그는 루이의 기도생활에 특수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그 자리는 우리의 신앙의 중심신비에 관계있다. 즉 교회는 결코 우리의 기도를 성모께 그치지 아니한다.
교회는 언제나 성모와 함께 천주께로 나아간다. 교회는 성모께 하는 모든 기구를 천주께 향하도록 작성하였다. 달리 말하면 마리아께 대한 우리의 기구는 천주께로 가는 길이어야 한다. 이런 길에서 우리의 사적 기도는 교회의 기도이 방향과 함께 조화를 이룰 것이다.
다음은 그리스도의 사생활 공생활을 가르친다. 그의 사생활에서 제시되는 사건은 저학년에 교화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기예수께 대한 기구를 역설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기도서에 아기 예수께 바치는 것이 없다. 물론 우리는 그의 사생활에 대해 묵상한다. 그러나 기구는 공상이 아니다. 기구는 지금 생활하는 예수께 대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께 기구한다. 그의 사생활에 있어서의 성모로부터 우리는 그가 주님과 같이 있었고 그와 함께 그의 생명과 사랑을 나눈 것이 그를 행복케 했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스도의 공생활에서 우리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시고 무엇을 하셨는가를 드러낼 수 있다.
그의 교훈의 목표가 얼마나 성부와 우리를 위한 사랑이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야 하고 기적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명과 그의 천주성에 대한 깊은 신앙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은 우리의 「메시지」의 가장 내부에 있는 지성소이다. 「필립버」서 2장 5-8은 그리스도의 태도와 업적이었고 9-11은 성부의 보답이었다. 이 두가지 교리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가르쳐야하고 그리고 수난하시고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보다 구원의 신비를 더 강조해야 하고 구원의 모든 업적은 철저히 성부 중심이란 것을 역설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난은 그것이 성부께 대한 주님의 완전한 순명과 사랑을 드러내는 한(限) 성부중심이요 부활은 더욱 성부중심이다.
부활은 성부이신 천주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부활은 승천으로 완성됐다. 승천은 우리의 마지막 목표가 천주의 궁궐에서 영원히 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천국을 위한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