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작품으로 옮긴 작가는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몸이 아팠고, 여생의 시간을 생각했다”며 “더 이상 미루어 둘 수가 없다는 절박함이 벼락처럼 나를 때렸다”고 회고했다.
실존 인물의 삶을 재구성하려면 표면적인 기록에 묶이기 쉽지만, 책은 소설적 상상력으로 인간의 내면을 탄탄하게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죽은 기록을 생동감 넘치는 살아있는 시간으로 부활시켰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칼의 노래」가 ‘명장’이라는 업적에 가려졌던 이순신의 흔들리고 고뇌하는 내면을 그려냈다면, 이번에는 ‘영웅’이라는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안중근의 가장 격정적이고도 긴박했던 그 시간을 독자들 안에 재현해냈다.
그러면서도 책은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하게 기록들과 이미 연구된 사실들을 바탕에 두고 그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안중근의 신문과 공판에서는 기록 그 자체를 활용해 현장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살려내기도 했다. 또한 소설에 다 담아내지 못한 기록은 후기의 형태로 첨부하기도 했다. 작가는 “(안중근 신문과 공판의) 그 짧은 문답 속에는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고, 그 시대 전체에 맞서는 에너지가 장전돼 있다”며 “이런 대목들은 기록의 원형을 살려나갔다”고 말했다.
신앙인 안중근과 그에게 세례를 준 빌렘 신부, 당시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의 갈등을 역동감 있게 살려낸 점도 인상적이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고해성사를 받기 원하는 안중근과 이에 반대하는 뮈텔 주교, 주교의 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안중근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감옥을 찾은 빌렘 신부. 그리고 세례받던 날의 평화를 죽는 날까지 잊지 않았던 안중근. 믿음과 죄, 그리고 용서에 대한 인물들의 서로 다른 시선과 갈등이 서사의 긴장감을 더한다.
책은 ‘동양 평화’를 말한 안중근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걸어간 길의 옮고 그름은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신념들이 인물 간, 혹은 내면에서 얽히고설키면서 드러나는 복합적 갈등의 양상을 매끄럽게 직조해, 인물을 바라보는 시야의 차원을 한층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