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40) 聖地(성지) 떠나 「로마」로 떠나면서 더 아쉬워
발행일1963-12-15 [제403호, 3면]
여기는 「체사레아」 로마가 「빨레스띠나」의 침략을 위해 고르고 고른 기지(基地)가 이곳이였겠다.
그러기에 거기 총독부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느냐? 이곳이 선택된 곳이라면 이곳이 「빨레스띠나」에서는 제일가는 항만이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이 항만을 보라! 2천년 전 그 시대의 항해 여건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송진포(松진浦)나 통영(統營)에는 감히 비기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마산(馬山) 정도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이곳은 천연지세로 보아 독두병자(禿頭病者)의 이마팍같은 곳이다.
때마침 날이 흐려 시야를 넓힐 수 없었던 것이 유감이었지만 동은 밋밋한 들판이요 서는 막막한 바다, 이러고서야 수심(水深)이 깊을수도 없겠고 설령 수심이 깊어 20세기 오늘처럼 수만 「톤」짜리가 아니면 적어도 수천「톤」짜리 거선(巨船)이라 해도 바람 하나 가리워줄 섬 하나 없는 이곳에 정박하기 어렵겠거늘 2천년 전 고작해야 수십「톤」, 아주 커서 수백「톤」에 지나지 못했을 범선을 정박시키기 위해 고른 곳이 이곳 뿐이었다면 이 나라에 얼마나 자연적 이점을 가진 항만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럼에도 이 나라는 우리로서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의 부(富)를 향유하고 있으니 부러운 일이다.
우리도 마의 38선만 없었던들 오늘날 요모양 요꼴로 허덕이고 있겠느냐? 그리고 보면 미·소의 군사적 정치적 작희(作戱)가 너무나 얄밉고 분하다.
여기 「체사레아」는 베드루 종도와 백부장(百夫長) 꼬르넬리오와의 사기(史記)로도 얽힌 곳이다. 지면이 없기에 성경구절만 기록해드리니 종도행전(宗徒行典) 9장36절부터 10장 끝까지 참조하시라. 재미 있는 사기가 기록되어 있다.
「체사레아」를 떠나 베드루 종도께서도 바오로 종도께서도 전교하셨다는, 지금도 하그리 번거럽지 않는 「잛하」를 그냥 지나쳐 「로드」 비행장에 이르러 양피지(羊皮紙)에 쓴 옛날 수기(手記)의 성경 모형을 하나씩 기념품으로 선사받고 4발기에 올라 「로마」로 향했다. 성지를 떠나려는 정은 자꾸만 그곳에 머문다.
예상보다 너무 길어 장황해진 졸고를 끝까지 게재해 준 가톨릭시보사에 먼저 사의를 표하며 그간 직접간접으로 격려해주신 여러 선배님들과 동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우기 당신의 편의를 희생하시면서까지 수행원으로 도구견문(渡毆見聞)의 기회를 마련해주신 서대주교님께와 성지순례를 위한 여비를 주선해 주신 최주교님께와 지금은 이미 주교가 되셨지만 그 때는 아직 신부이던 윤주교님, 성지에서 친절히 안내와 통역을 해주신 대대해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끝으로 독자 여러분들께는 졸고가 없었던들 더욱 유익하고 더욱 재미있는 기사를 읽을 수 있었을텐데, 졸고로 말미암아 방해를 해드리지나 않았나해서 심히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머지않아 크리스마스. 여러분들 천주의 은총 많이 받으심 축수하오며 이만 각필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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