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30) 주린 사랑 ③
발행일1963-12-15 [제403호, 4면]
역 앞의 번거로운 한길을 지나 한 언덕길로 접어든다.
『시골은 어디지?』
낯선 아주머니는 다정스러히 돌아보며 묻는다. 담뱃가게 불빛에 그 아주머니의 얼굴이 빛었는데 역앞에서 느낀 것보다는 주름이 많은 얼굴이었다.
『집은 서울이야요.』
『서울이라구?』
노파에 가까운 중년 여자는 이맛살에 굵은 N자를 모두고 놀란듯한 표정이다.
『…집 사정이 복잡한가?』
『속 상하는 일이 있어 나왔에요』
『부모는 계시나?』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어요.』
『친부모가 아닌가?』
『……』
그 여인의 들여다보는 눈초리에 내 눈을 마주치고, 나는 나대로 여인의 관상을 좀 보았다.
『아주머니는 점쟁인가봐?』
『내가 잘 알아. 마치지? 핫핫… 보면 다 알지, 알고 말구』
세상을 다 아는듯한 자신을 가지고 얼굴의 주름을 씰룩거린다.
그는 「트렁크」를 들지 않은 왼손을 회색 쟈켙 속에 찌르고 있었는데 그 손을 꺼내 손목시계를 힐긋본다.
『몇시야요?』
『아홉시…』
노파의 시선은 힐긋 내 몸 매무시를 아래위로 훑는다. 이 때의 그의 눈초리는 내 알몸까지 들여다 보는듯하여 무언지 불쾌하다.
『나이는 몇 살이지?』
『열여덟!』
이렇게 나이를 속이고 그의 반응을 엿보았다.
그는 눈까풀을 사르르 접더니, 말없이 또 간다. 아까보다는 걸음이 좀 빠르다.
하숙집이라면 길가의 이층집쯤을 생각했는데, 우중충한 좁은 골목을 끼고 들어선다.
『먼가요?』
『이제 다 왔서!』
하면서 자꾸 간다. 몇 개의 골목을 굽어드니 추녀가 곱추같이 주저앉은 얕은 기와집들이 늘어있는 막바지 골목 안에 들어왔다.
그 중의 한 대문을 밀고 들어선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조그만 집이었는데 안마당에 들어서니 무대 「셋트」모양 사방에 다닥다닥 방문들이 있다. 그 중의 불이 켜진 방문이 활짝 열리더니 한복차림의 젊은 여자가 하나 내다본다. 그 방 속에는 양장한 진한 화장을 한 또 한 여자가 있었다. 본 여자가 아주머니라고 부르는걸 보니 딸들은 아니다.
『저 여자들은 누구야요?』
안방에 들어가서 앉자, 물었다.
『하숙하는 색시들이야!』
안방은 두 칸쯤 되는데 3분의 1은 이불장과 낡은 옛날농과 너절한 방세간이 두서없이 놓이고, 한 구석에는 지지하게 요강도 놓인 살림방이었다.
『하숙비는 얼마야요?』
『우린 말야. 처녀같이 집을 나온 사람을 위해서 치는 하숙이니까? 많이 안 받아. 그저 형편 되는대루. 있으면 내고 없으면 후에 천천히 내도 좋아! 저녁 안 먹었지? 국수 한 그릇 시켜줄까?』
『………』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방문을 열고 나간다.
『순자야. 너 가서 국수 한 그릇 시켜 오느라!』
『누구유? 에쁜인데… 아주머니의 일가유?』
『그래 그래 일가다 어서!』
밖에서 이렇게 주고받는 말이 들린다.
얼마 후에 십원짜리인듯한 국수가 한 그릇 내 앞에 놓인다. 시장한 김에 우선 먹었다. 그러자 아까 양장하고 있던 여자가 안방문을 열고 쓱 들어선다. 그녀의 옷차림과 화장과 말과 거동이 무언지 불결한 인상을 준다. (이 집이 혹시 소문에 듣는 그런 집이 아닌가?)
내 신경은 좀 날카로워졌다.
아닌게 아니라 밖에서 남자소리가 난다. 양장한 여자는 바꼼이 내다 보더니, 어마 하는 표정으로 뛰어나간다.
이러는 동안 주인 아주머니는 은근히 내 얼굴을 살피는 눈치다.
『이봐. 우리 집에 있으면 옷도 해 입고 싶은걸 해 줄테니, 자기 맘 먹기에 따라 돈도 많이 벌 수 있어… 그 뿐인가. 세상 재미도 보구, 한 세상 고생할 거 없는거야』
나는 벌떡 일어나서 내 가방을 찾으니 없다.
『「트렁크」 어디있어요?』
『왜?』
『가겠어요!』
『앉어! 내 말 좀 들어!』
수상한 노파는 잡아끈다.
『놓세요…』
나도 힘을 들여 뿌리쳤다.
『아니, 내 말 좀 들으라니까!』
여인은 앙칼진 눈으로 쏘아본다. 어쩐지 무섭기도 해서, 우선 앉았다.
『친부모가 아니라며? 오죽하면 집을 튀어 나왔겠어? 서울이 싫으면, 딴 데 좋은데에 보내줄까?』
『……………』
『……… 오늘은 여기서 자구, 내일 나하고 딴 데가?』
『딴 데라니요?』
『대구도 좋구, 부산도 좋구, 더 시골로 가고 싶거든 시골로 보내주께…』
나는 이때, 그가 내 「트렁크」를 벽장 속에 넣어둔 것을 기억했다. 선듯 일어나서 벽장문을 여니 「트렁크」가 바로 눈 앞에 있다. 쏜살같은 기세로 안방을 나섰다. 신발을 신자마자 주인 여자의 손이 내 옷자락을 꽉 잡았다.
『아니, 어까지 데리고 와서 저녁 요기까지 시켜 놓으니, 어딜 달아나려는거야! 어설피 놔 줄줄 알구?』
『국수값 내면 될거 아니야요』
내 호주머니의 마지막 재산인 십원짜리 한 장을 꺼내던지고는 힘차게 뿌리치고 수상한 하숙집을 뛰쳐나왔다. 발달음질로 지렁이 허리같은 좁은 골목을 뛰었다.
낯선 주정꾼이 일부러 길을 막기도 하고 툭 치기도 한다.
얼마쯤 뛰다가 뒤를 돌아보니, 조용했다. 그래도 무엇에 쫓기는 기분으로 골목을 벗어날 때까지는 불안스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겨우 골목 어구에 이르자, 발걸음을 늦추고 숨을 돌렸다.
『이봐! 색시!』
뒤에서 그 주인 여자의 소리가 들린다.
한길이 바로 눈앞에 있는지라, 나는 오히려 태연하게 돌아보았다.
『이봐! 지금 가면 어디로 가지?』
아까와는 딴판으로 부드럽게 묻는다.
『상관하지 마세요!』
잘라 내던지듯이 한 마디를 남기고 한길로 나섰다. 그는 더 이상 나를 쫓아 오지를 않았다. 몇 분쯤 걷는동안 그의 그림자가 아직도 내 뒤를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돌아보니, 노파는 골목어구에 아직도 서 있다. 나는 그 시선을 벗어나려고 이번에는 달음질을 쳤다. 그리고 아까 올라오던 그 언덕길로 접어 내릴 때 겨우 맘을 놓았다.
그러나 이 안도감도 몇 분이 못 갔다.
(어디로 갈 것인가?)
당장에 갈 곳 없는 불안감이 또 나를 잡아 쥔다.
나는 얼마간의 시간을 지향없이 걷고 있었다. 걷다가보니 용산쪽으로 가고 있었다. 낯설고 아는 친구 하나 없는 곳이다.
(나같은 인생, 그런 마굴에나 떨어져 되는대로 살아버릴까?)
이런 생각도 든다.
『그 노파 집을 찾아 가라! 먹을 것과 잠자리가 거기 있다. 갈 곳 없이 헤매는 것보다야 낫다!』
내 맘 속에서 이렇게 꼬디기는 입이 있다.
『그래 버릴까? 나를 내 던지고 다라난 부모에 대한 복수심으로 타락할때로 타락해 버릴까…』
나의 중심도 호응하는 기색이다. 이러는 동안에 어느듯 용산역이 눈 앞에 보인다.
이 이상 더 가면 한강이 있을 뿐이다. 한강 깊은 물이 이번에는 나를 유횩하는듯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오던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색시 어디 가오!』
거리에 섰던 한 노파가 나를 따라 오며 묻는다. 아까 서울역에서 잡아 끌던 그런 종류의 여자 같다.
『저 노파를 따라가 버릴까?』
이렇게 생각했을 때는 이미 백미터 이상이나 걸은 뒤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