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58) 작별 ④
발행일1964-07-19 [제431호, 4면]
나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으나 곧 태연한 자세를 갖췄다.
『어디 갔다 오세요?』
『내 모양을 보면 알게 아니야요!』
진호는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을 스스로 내려다 본다.
『아까 그 미군은 누구죠?『
진호는 별로 의힘하는 기색이 없이 묻는다.
『딕슨의 친구야요!』
『딕슨의 소식을 전해 왔나 보군?』
『네에!』
나는 그럴사하고 웃었다.
『행복한 소식이라도 있었던가 보군?』
나는 또 그럴사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낯선 퇴기장교와 같이 다닌 오늘 밤 일을 감추고 싶었다.
『진호도 「타이프」와 영어 배우러 다녀요?』
『네에』
『나순이가 행복하다면 나도 기뻐….』
전날과는 딴 판으로 진호는 부드럽게 말하며 딕슨과 나의 약혼을 함께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딕슨이 아마 미국을 떠난나 보죠?』
진호가 넘겨짚어 말한다.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잠시 망서리다가
『…수일내로 곧 떠난대요…』
하고 거짓말을 했다.
『일전에는 미안했어!』
『뭐가요?』
『…그대신 나는 나순과 딕슨의 행복을 기구하였다, 앞으로도 기구하지… 그때는 내가 질투심이 있어서 그런말을 하였지! 냉정히 생각해 보면 나순과 딕슨은 잘 만난 사이였어.』
진호의 얼굴에는 체념의 그늘과 함께 진정 나를 아껴주는 듯한 애정이 서리어 보였다.
진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 해버리고, 그품에 껴안겨 울고싶은 충동이 물컥 치민다. 장소가 버스 안이 아니었더면, 나는 그렇게 했을런지도 모른다. 도중에서 같이 내려 「케익」가게라도 들어가서 얘기를 할까?하고 혼자 생각하고 있을때, 지놓는 친구네집에 들릴데가 있다 하면서 종로 오가에서 내려버렸다.
그후 나는 멍하니 집에서 날을 보내었다.
잡지나 책을 읽으면서 제멋대로 공상에 잠기었다. 나는 나의 외로움을 공상 속에서 화려하게 분장을 시켰다. 마냥으로 사치스런 공상에 잠기었다. 공상에서 깨고 나면 내 몸둥아리는 길바닥의 돌과 같이 무의미해 보였다.
얼마후에는 한시라도 집에 붙어 있기가 싫어 밖으로 싸다녔다. 영화관과 「뮤직홀」과 그리고, 정처없는 도보행진으로 하루의 시간을 메웠다.
한달 쯤 그렇게 지나는 동안에 수중에는 돈이 떨어지고, 갑자기 작엽이 우수수 지는 추운 날씨로 다가들었다.
여름철 「원피스」를 그대로 입고 있는 내 꼴은 「코트」를 폭신하게 입은 사람들에게 비하여 매우 초라해 보였다. 작년에 입던 「세타」를 꺼내 보니 군데 군데 좀이 먹고, 작아서 입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나 「세타」 하나 샀으면 좋겠어?』
『지금 밥 먹기도 바쁜데 「세타」가 다 무슨 얼어죽을 「세타」냐…』
양부는 뱉듯이 대답한다. 성미가 괴팍하고 어딘지 야한데가 있었으나, 지금까지 나의 사철 옷 차림만은 비교적 남만큼 해주던 양부였다. 그는 나를 하나의 장식물과 같이 옷차림을 다듬어 주려고 하였다.
남 보기에도 양부노릇을 잘 한다는 시위하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한 그가 잘난 「세타」 한 벌 못사주는 걸 보니 몹시 궁핍한 모양이었다.
나는 찬바람에 휘둘리는 「원피스」 꼴이 싫어서 뚜 부엉이 모양 방 속에 틀어 박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하루 봄날씨 같이 따듯한 날씨가 있었다.
집에 있으려니 몸부림이 났으나 나가자니 돈 한푼 없었다. 이제는 소용 없이된 중3 교과서를 신문지에 싸서들고 헌책점에 가서 팔고서 용돈을 만들었다.
취직자리라도 부탁할 생각으로 동이네 집으로 갓다. 딕슨의 얘기를 하려니 부끄러웠으나 허는 수 없었다.
동이엄마는 동이아버지에게 부탁을 해보겠다고 한다.
『부평 미군부대에서 「타이피스트」로 써주겠다는 건 어떻게 되었니?』
동이엄마가 묻는다.
『가면 될지도 모르지만… 가기가 싫어요?』
『왜? 딕슨의 추억이 남은 곳이 돼서!』
『아니요』
『그럼?』
『이렇게 거지 꼴을 하고 가기가 싫어요.』
동이네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거리로 나왓다. 직업보도소 있는데를 알아 찾아갔더니 이력서와 사진을 내놓고 가면, 구인자가 있을 때, 통지해주겠다고 한다. 구인자가 없으면 1년이 되어도 그만이고 10년이 되어도 그만인 것이었다.
보도소 문을 멍하니 나서다가 들어서는 양장한 중년 부인의 발등을 밟았다.
『엑스큐즈미…』
무심코 내 입에서 영어가 나왔다.
나는 다시 한국말로 고쳤다.
『미국 색신가? 한국 색신가?』
본인은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한국이야요!』
하고 나는 그의 옆을 떠났다.
『이봐요!』
부인은 부른다.
나는 그의 앞으로 다시 왔다.
『여기 무엇허러 왓어요?』
『영문 「타이피시트」자리라도 있나하고 와보았어요!』
「콤파스」로 그려놓은 것 같이 얼굴 윤곽이 동그란 부인은 철늦은 내 의복을 은근히 훑어본다.
『난 명동서 다방을 하고 있는데 「레지」를 구하려고 왓어. 처녀가 우리 다방 「레지」가 되었으면 잘 대우하겠는데?』
생긋 웃는 품이 사람은 좋아 보였다.
『월급 얼마나 줘요』
꼭 갈 생각은 없었으나 한번 물어보았다.
『먹고 이삼천원 정돈데, 처녀같으면 좀 낫게 주지!』
『……』
『「레지」한번 안해볼래? …옷도 내가 해주께!』
그말은 내귀에 솔깃했다.
나는 그 부인을 따라갓다.
명동 중심가의 중간쯤은 되는 다방이었다.
「레지」가 두명있는데 하나는 수세미같이 얼굴이 길고, 하나는 식모 같았다.
마담은 영어를 하느냐고 묻고 그 다으은 집 사정을 묻더니, 이내 데리고 나가서 「세타와」와 「스카트」를 사주었다.
「세타」는 보라색에 흰 줄이 섞인 것인데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처음에 「카운타」에서 전표를 적다가 손님이 많을 때는 직접 찻잔을 들고 날랐다. 처음은 어색하엿으나 몇번하니 금방 익숙하게 되었다. 하루를 있어보니 미군들이 꽤 많이 왔다.
집에는 연락도 않고 주방이 달린 조그마한 방에서 식모같이 생긴 「레지」와 둘이서 잤다.
수세미는 집에서 다니고 있었다. 화려한 다방도 밤이 익숙해지니 창고 속 같이 쓸쓸했다. 며칠 있는 동안에 잠자리의 쓸쓸함도 과히 느끼지 않게 되었다.
나는 오히려 몸에 꼭맞는 「세타」와 「스카트」가 맘에 들어 찻잔을 들고 날르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열흘쯤 되던날 저녁무렴, 「복스」에 빈 찻잔을 거두어들고 「카운타」로 오는데, 또어를 쑥 들어서는 진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찻잔을 든 손이 약간 떨리었는데, 진호는 별로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옷은 낡았지만 신사복을 입고, 아무말도 않고 구석 「복스」에 가서 앉는다. 미리 알고 온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