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議會(공의회) 2次(2차) 會期(회기) 成果(성과)
敎會를 省察하고 世紀를 이끌고자
久遠의 回春을 期約
새로운 성신강림 교회와 세계 안에
問題는…團一性을 神學上으로 밝혀야
요안 敎皇의 設計대로 「再新」 本軌道에 올라
발행일1963-12-25 [제404호, 3면]
공의회 제2회기에 대해 어떤 매듭지은 글을 쓰기란 누구에게도 별 자신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제2회기의 의안 전부가 다음 제3회기로 넘겨졌으니 논평기사를 쓸만한 개재조차 못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다행히 이번(제2회기)은 취재의 자유와 편의가 충분했기 때문에 각종 보도 등을 종합해서 그간의 경위 정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공의회의 방대한 내용에 정통할 수는 없다. 또한 관련된 문제의 전문가는 신문기사를 잘 다루지 못하겠고 한편 기자들은 신학적인 어려운 논제를 알지 못한다. 공의회 소식을 보도하는데 큰 애로는 주로 여기 있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것에 국한해서 일반적인 관심을 보내고 그 경위를 알아봄으로써 그 대강을 줄잡아 보기로 한다.
◇성모님 공경에 대한 신문보도의 큰 오보는 순전한 신학상의 논의였음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공의회에서 성모마리아에 관한 발언이 나왔을 때 과연 큰 관심을 집중시켰었다.
이 문제는 오해를 일으킬만한 일반 신문들의 보도가 활발했었다. 요컨데 이 문제는 공의회가 가톨릭 생활에 있어서 성모마리아의 지위를 격하(格下)했거나 혹은 새삼스리 성모신심의 강조를 도모한 것이 아니었다. 가톨릭 안에서 여기 대한 합리(合理)와 감정의 갈등이 있는듯 문제삼은 것도 아니었다.
공의회는 교회 안에서의 성모마리아의 지위에 언급하면서, 그러나 순전한 신학상의 문제로 극히 신중한 발언을 했었으며 새롭게 들을만한 것은 없었다.
공의회의 교부들은 한결같이 성모 공경을 바라고 있지만 천주께서 당신 모친 공경을 원하시는 그 방법대로 될 것을 설명했었다.
공의회가 성모공경을 약화(弱化)시키려 했다는 인상을 주는 보도가 있었다면 그것은 오보(誤報)요 오도(誤導)할 위험성마저 있는 기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성모신심을 약화했거나 강조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고 본질적인 문제는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으로 어떻게 공경하느냐 하는 신학적인 논제를 다루었었다.
◇교회 자체를 다시 한 번 검토해보는 근본문제를 내걸고서…
이번 회기 토의의 중심(中心)은 역시 교회 자체에 있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개회연설에서 『교회의 검토는 공의회 이번 회기의 근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만큼 교회의 긴밀한 성질이 충분히 검토되며 최선의 표현이 되어 그리스도의 진리로 계발(啓發)되는 교회의 구령사업이 선양되어야 한다』고 했다.
공의회의 그간의 활동은 이러한 교황의 언명에 대답한 것이었다.
교회에 대한 토의는 실상은 자기 성찰(省察)을 겸해 어떤 천명할 길을 구하면서 그 타당한 표현에 전심했었다.
현대인들에게 교회를 어떻게 말해주고 드러낸다면 그들이 교회의 원모습 그대로를 알고 받아들일까 그런데 공의회의 교부들은 교회가 최초 그리스도로조차 나온 그대로 내세우고자 했었다. 이 취지는 교황 말씀 중에 언급된 것이었다.
『교회의 각성(覺醒)은 신자들이 더욱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상 안에 살게하고 더욱 전통적인 가르침에 주의하며 더욱 겸손히 천주성신이 불밝혀 주심을 기다리는 것 등을 명백히 해준다』고 했었다.
◇지방분권 주교들의 단일성 문제를 둘러싸고 찬·반으로 갈라졌다
교회에 관한 토의 중 몇 개의 근본적 문제가 나왔었다. 그 중 성모마리에 관한 것은 이미 밝혔거니와 「로마·꾸리아」(성청행정부)를 지방 분권(分權) 제도로 개편하는 문제, 이것은 한 획기적인 과업으로 볼 수 있겠다.
이것은 현 교황의 뜻대로 단행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중대한 문제이면서 공의회로서는 크게 논의한 바 없었다. 이와 관련해서 주교들의 단일성(團一性이란 역어를 달아 보았지만 COLLEGIALITY이다-註)에 분명한 찬반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 뜻은 전교회의 통치에 주교들이 그 몫을 차지한다. 그렇게 분여(分與)할 성질은 어디 근거가 있다는 것을 밝히자는 것이다. 이것은 해결을 보지 못했었다.
대체로 강력한 집권제(集權制)를 원하는 측은 다수 의견과는 반대로 주교들의 단일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일성이란 신학상 불충분한 내용이라고도 하고 성서에도 그 정의(定義)를 찾아낼 수 없다고 공박했다. 그리고 그것은 「로마」 교황의 최고 통치권을 위협한다고까지 극구 반대했었다. 이러한 견해와는 달리 바오로 교황은 개회 연설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권느으이 충족을 보증받으면서 나의 전교회에의 직무는 경애하는 주교들로 더불어 더욱 효과적이며 책임있는 협동의 방법으로 보다 크게 지지와 보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 교황 말씀은 명백한 주교들의 단일성을 천명한 것으로 보고있다. 어떤 공의회 신학자는 주교들이 공의회에 회동(會同)한 사실이 바로 단일성의 산경험이라고 논평했었다. 그러나 문제되는 것은 교회 안에서 그와 같은 단일성을 어디까지 연장하느냐는데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근본문제가 되고 있다.
◇초대 교회의 결혼한 부제제도를 부활시키는 문제는 아직 해결을 보지 못했다
부제직제(副祭職制) 문제, 이것은 초대교회 때 있었던 부제품(副祭品)을 부활시키자는 것인데 이 또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었다. 이 문제에는 찬·반이 갈려져 때로는 격렬한 논전을 전개했었다. 이 문제도 해결을 보지 못했다. 다음 회기로 넘겨진 현안의 문제로 큰 폭을 차지하고 있다.
한 영어 사용 대주교는 가장 실천적 방법을 내놓았었는데 그같은 종신(終身) 부제직을 결정적으로 부활시킨다기 보다 한 번 시험삼아 그 필요성을 느끼는데서 시행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결혼생활도 할 수 있게해서 한 세대(世代) 동안만이라도 지내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그는 『우리는 이 문제를 토론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다. 먼저 그 성과를 한 번 보기로 하자. 그 결과가 좋으면 그때 가서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고 했었다.
◇구라파 출신과 미국 출신 교부들은 너무나 뚜렸한 성격의 차이를 솔직히 나타내고 있었다
공의회의 교부들이 지루한감과 회의진행의 부진을 초조히 생각한 것은 인내의 문제이기 전에, 장황한 연설과 또 그것을 되풀이하는데 지쳤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것은 11월 중순을 전후로 고비를 넘겼다. 이러한 가운데 공의회를 어떻게 좀 더 능률적으로 운영하여 모든 불필요한 사태를 배제할 수 없으냐는 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이 무렵해서 유명한 말들이 떠돌았다. 그것은 구라파인과 아메리카인의 현격한 성격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말은 행동이다』하는 태도를 내세우고 어떤 일을 말로써 표시했을 때 그 일은 이미 끝난 것이다라고.
미국인은 전혀 그 반대인 것을 내세웠다.
먼저 한 번 일해보고 그리고 나서 조용히 앉아서 거기 대한 말을 해보자 하는 식으로 말만 앞세울 때는 거기 많은 의문을 달고 의심스럽게만 여긴다. 이에 구라파인은 말에 신비적 성격까지 붙이려고 한다. 이것은 아주 대조적인 관점이요, 태도이라고 하겠는데 이것은 공의회 안에 적지 않은 작용을 주었다고 내다본다.
◇프로테스탄 「옵서버」 또는 공의회 밖에서의 주목할만한 논평들은 공의회의 민주적 방식에 놀라고 있었다
공의회가 지루했다. 연설들이 너무 장황했다는 여론을 돌리고 있는데 대해 미국 신문인 죤.코글레씨는 『언로누 자유가 있는데서 회의 진행의 서행(徐行)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작은 「클럽」이건 미국 정부이건 민주방식을 취한데서 그만한 서행은 어찌할 수 없는 법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는 공의회가 지지부진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게한 위대한 일면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그의 예리한 관찰을 피력했다. 「프로테스탄」 「옵서버」 한 분은 이 문제를 다른 방면에서 논평했다.
그는 공의회를 「프로테스탄」 세계교회회의(WCC)에 비교해서 논평하였다. 세계교회회의는 민주주의 정신과 그 방식을 채택한다고 자부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전제(專制)를 규탄한 바 있었다. 그러한 규탄과는 엄청난 결과를 내었던 것을 기억한다. 결국 WCC는 그 후반기 회의에 들어가서 전제로 기울었었다. 「교회의 성질」에 관한 토의양말로 참으로 값있게 맺어야 한다고 논평했었다.
◇「전례」 개혁안 한 가지만 하더라도 공의회를 개최할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이번 회기가 제의된 문제에 대한 방대한 토의만으로 그친 것은 아니다. 그 토의내용만 하더라도 그 중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것이 있다고 하겠지만 「전례」와 「메스·콤」에 관한 두 기초안의 완성으로 교황의 선포를 보게된 것이다. 논평자들은 이 「전례」에 관한 것 한 가지만 하더라도 만일 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다른 임무를 더 해보지 못했을 망정 그것은 교회의 재신(再新) 과업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본다. 달리말하면 이 한 가지(전례개혁)만을 위해서도 공의회를 개최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공의회만큼 그 진행실황이 자세히 보도된 공의회는 없었다. 「매스·콤」 발달에 그 원인을 다 돌린다 하더라도 가령 「전례」 의안 한 가지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한 재검토와 다짐이 있었느냐 하는 것은 공의회 밖에서 족히 알 수 있었다. 실로 전례의 개혁을 단행하는 공의회의 의안을 완성한 것은 교회가 그 내부적 재신(再新)을 위한 근본을 해결한 것이었다.
◇종교의 자유를 공의회가 설명하고 선언할 까닭은 어디 있었던가
베르기의 데.슈미트 주교같은 분은 공의회 최상의 웅변가로 지목 받았었다. 웅변이란 말투가 적당하지는 않지만, 그는 그리스도교 일치국의 일원으로 종교자유에 관한 제안설명을 했었는데 그는 동 의안에 대한 확고한 자기 신념을 토로하여 그만한 주목을 받았었다. 그의 제안설명이 끝나자 우뢰와같은 박수는 좀체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공의회 개회 후 처음이며 최대의 환호였었다.
한편 이러한 열렬한 환영은 공의회의 교부들이 종교자유에 관한 동 의안을 절대로 지지한 무엇보다 분명한 표적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연설은 이렇게 나갔었다.
『다수의 교부들은 종교 자유에 대한 인간의 진리를 이 공의회가 설명하고 선언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 속에 느끼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 4원칙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1. 진리=교회는 진리를 가르치고 종교 자유에의 권리를 수호(守護)해야 할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진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 수호(守護)=교회는 오늘날 각종 무신적(無神的) 물질주의로 인해 전인류의 반 이상이 종교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데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 없다.
3. 평화스런 사회생활=오늘날 세계의 각 민족들은 상이(相異)한 종교에 매여 있거나 혹으 모든 종교신념에 결핍하면서 하나로 그리고 동일한 사회 내에서 같이 살아가야 한다. 교회는 진리 안에 함께 평화스러이 살아가는 길목의 지표(指標)가 되어야 한다.
4. 교회일치=많은 비(非)가톨릭은 어떤 국내에서 가톨릭이 소수인 때는 종교의 자유를 요청하고 가톨릭이 다수를 차지한 때에는 종교자유를 거부하는듯한 인상을 주는데 혐오를 가졌거나 적어도 일종의 「마키아벨리즘」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갈파했었다.
공의회 주변에서 돌리는 기자들의 보도와 논평에 대해서도 주의할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매우 중요히 다루어 왔었다. 그것들을 줄잡아서 말한다면, 이제 교회는 자신의 재신(再新)을 위해 본궤도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저명한 신학자 한스.큉 신부같은 이는 이같은 교회의 경향은 공의회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논평했었다. 그것은 곧 교회 및 세계 안에 천주성신의 새 성신강림(聖神降臨)을 보여준 것이며, 요안 23세가 공의회를 소집한 근본 목적에 부응(副應)한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