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會期(회기) 点描(점묘)
12月4日 第2會期 마치는 날
두 敎皇令 宣布 實況
莊嚴禮 다 갖추어
9週間 44總會 거듭하고
요안 聖下의 偉業을 매듭
발행일1963-12-25 [제404호, 3면]
제2차 바티깐공의회는 12월4일 회기의 연장을 선언하면서 두 개의 완성된 의안을 전통적인 장엄한 성식(盛式)을 갖추어 정녕 소기의 성과를 채운 자랑가운데 이를 세계만방에 선포(宣布)했다. 이 역사적 장면은 구라파의 「테레비」망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다. 이윽고 교황 바오로 6세 성하는 성 「베드루」대성당 교황제대에 마련된 교황의 어좌로부터 2천2백명에 달하는 추기경 총주교 대주교 및 주교들과 거대한 동 대성당에 들어선 2만여 성직자 평신도에게 교황의 사도적 강복을 베풀었다.
이마당에 『이는 교회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찬연하다』고 한 저 선교황 요안 23세의 말을 상기하지 않는 이 없었다. 지난 9월30일부터 12월4일에 이르기까지 실로 44총회를 거듭하면서 이 두 개의 의안만을 완전히 통과시켰고 선포했었다고 하겠으나, 이것이야 말로 주교들의 단일성(團一性)과 무류성(無謬性)에 관련된 제1차 바티깐 공의회를 완성하는 역사적인 전진(前進)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뜨리덴띠노」 공의회의 「반동개혁」을 결론짓는데로 나갔다고도 할 수 있고 그리스도교 교회들의 통합과 모든 종교간의 공동 이해(理解)를 촉구한 요안 23세 교황의 열렬한 기구의 의향을 따라 가톨릭 교회가 그 길로 나섰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9주간의 토의 그리고 수정안 통과 등 공의회의 활동을 거쳐 12월4일, 이 최고조에 달한 거식(擧式)은 선교황 요안 23세가 미리 마련한대로 진행되었다. 공의회 사무총장 펠리처 대주교는 바오로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전례 및 사회전달(傳達)에 관한 원본을 받았다. 이 두 공의회 결정안은 얼마 전 공의회의 교부들이 채택한 것이었다. 펠리치 대주교는 강론대에 올라서서 동 결의안을 읽었다.
「테리비」에 비쳐진 것은 펠리치 대주교가 동 끝장을 읽고나서 교황께 향해 깊은 절을 한 다음 교부들 쪽으로 돌아서는 장면이 나왔었다. 공의회에서 투표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교부들이 전기(電氣) 연필을 써서 기표를 하면 그 즉시로 전자(電子) 계산이 수초간격을 두고 적혀지곤 하는 것이었다. 펠리치 대주교는 투표 결과를 가지고 교황 앞에 나와 『교황성 부여, 동 교황령과 법전(法典) 등은 방금 검토했던바 모든 교부들의 찬성을 받았나이다』고 한다.
이에 교황은 그의 어좌(御座)로부터 장엄(莊嚴) 예식을 갖추어 『방금 읽은 교황령과 법전 등은 교부들의 찬성을 얻었으니… 나는 공의회의 승인대로 교황령을 결정하면서 저들이 읽은바 그대로를 승인하노라』고 공의회 결정에 의한 두 개의 교황령을 선포했다.
이동안 「테레비」 영화촬영반의 조명이 눈부신 가운데 성청 서기관들과 제의자(提議者)들이 어좌 앞으로 나갔다.
서로 무릎을 꿇고 제의자들은 서기들에게 경위 등을 기록하도록 요청한다. 『우리는 증인 앞에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수석서기관이 대답함녀서 서로 서명함으로 그것이 된 것으로 한다. 이 순간 「시스띠노」 소성당 합창단의 사은(謝恩)의 노래 「때·데움」이 터져나오고 바오로 6세 교황은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제2회기를 막음하는 자리에 나온 모든이에게 교황강복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