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六島(오륙도) 相愛園(상애원)
癩患者에 「레지오」
旺盛한 自立精神의 뒷받침
발행일1963-12-25 [제404호, 5면]
오륙도(五六島) 상애원(相愛園)으로 알려진, 부산시 부산진구 용호동(龍湖洞) 산의 2번지에 있는 「국립 용호동병원」 천주교회는 1951년 7월부터 거제리(巨提里) 포로수용소에 UN군 종군사제직을 맡고 계시던 메리놀회원 후고.크레이(奇厚根) 신부님이 이곳 교우들을 매주 두 차례식 찾아주며, 또 메리놀회의 안드레아 수녀님이 매주 목요일마다 약품과 위문품 등을 갖고와 위문하는 한편 부인네들의 교리강좌를 열어 줌으로 그 이듬해인 1952년부터는 새로 영세하는 사람이 늘게됨으로써 시작되었다.
현재 수용인원은 1천5백명인바 이중에는 임원 수속이 되지 않은 대기자 약 2백명이 포함되어 있다.
원내의 종교별 인구는 가톨릭 신자가 108세대에 2백37명(미감아동 40명 포함) 「프로테스탄」이 8백30여 명이다.
국립 나병자 수용소에서는 어디서나 「프로테스탄」츠겡서 먼저 포교활동을 개시했기 때문에 가톨릭보다 그들의 교세가 우세하며 또 이러한 특수사회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수파의 횡포와 종교적 차별대우로 교우들의 설움은 많았던 것이다.
특히 1960년 3·15 전후와 4·19 이후에 일어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 사이의 대분규는 정치성(政治性)을 띤 것으로서 3·15 전후는 가톨릭을 야당(野黨)이라고 탄압했기 때문에 4·19 후는 가톨릭신자들이 『이 원내에서도 혁신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하는 것으로 일어난 것이다. 원내의 중요 간부직을 독점하고 있는 「프로테스탄」은 그들의 전도사 양성기관인 신학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경과 외로움 가운데서 자라온 이곳 신자들은 한 때 돌봐주는 신부도 없이 잊어진 존재였지만 레지오·마리에 「쁘레시디움」을 조직하고 전교활동을 전개하고, 교회의 자치(自治)와 자립을 위한 내부 조직을 강화하였던 것이다.
현재 이 원내의 교회는 회장 스데파노 하(河_雲)씨를 「꾸리아」 단장으로 그 산하에 5개 「쁘레시디움」이 있는데 그 중 「병인의 나음」 「인자하신 경녀」 「죄인의 의탁」 등 3개 「쁘레시디움」은 이 원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편 회장 스데파노.하, 부회장 겸 총무 요안.최(崔鳳浩) 재무 베드루.유(柳志龍) 전교부장 이나시오.김(金昌秀) 그리고 1·2·3의 각 구역회장과 친목회, 청년회, 부인회, 등 대표들로서 「교회역원회」를 구성하여 원내의 모든 전교활동과 교회 살림을 자치적으로 해나가도록 조직을 짰다. 재정(財政)은 교무금으로서 영세한 이는 한 사람 앞 매월 10원 이상을 증수하며 예비자는 어른에 한하여 자발적 성금(誠金)을 받는다. 청년회 비용은 주일미사 애긍으로, 친목회비는 성미(誠米)로, 부인회비도 역시 부인들에게만 성미로 받는데 이러한 단체들이 거둔 회비는 모두 전교비로 사용되는바 원내의 환자 각 가정을 방문할 때 위문품 대금으로 매월 적어도 4·5백원은 쓰여진다고 한다.
약 2년 전부터 대연동(大淵洞) 본당에 계신 「꼼벤뚜알」회의 프란치스꼬.활다니(范) 신부님이 주일과 매월 첫 첨례 6일에 오시어 미사를 드리고 고해성사를 주고 성당신축을 위하여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