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年(년) 回頭(회두) - 이렇게 活動(활동) 했다
발행일1963-12-25 [제404호, 6면]
1963년이 저물고 있다. 그리스도 구세주를 섬기고 선양하는 지난 1년간 「가톨릭 악숀」의 이름 아래 무던히 애들을 쓴 보람은 조금씩 발판을 다지는데 유효했다.
사랑으로 무장된 진리를 앞세우고 학원으로, 노동세계로, 생활하는 대중 속에 파고들어 전교사목에 유조했고 교세(敎勢)를 60만명에 육박시켰다.
그러나 각 활동단체들은 교회당국의 총애를 송두리째 아직은 믿지 못했고 스스로들이 더 많이 아니 모두가 참여해서 기르고 해야할 평신도 사도직의 모체들을 『아! 그거』하는 정도로 외면을 당하고 있다.
『밥벌이도 시원찮게 하는 친구들의 모임』 혹은 『별 것도 아닌 짓들을 하며 교회의 이름을 앞세우고 찬조금이나 조르는 단체들』로 백안시하는 「일방통행」 사고방식을 불식시키느라 「가톨릭 악숀」의 역군들은 2중의 공격 대상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자의 굳은 약속 그것이 뒷받침하고 있기에 최후의 승리가 그들의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각 단체들의 정비보강이 앞서야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할 수 있겠다.
자기확립, 과학적 조직정비 및 활동사전 계획 등이 그것이겠다. (編輯者 註)
■ 學生會 - 「셀」 活動을 强化 / 李敏彦(서울 학년부회장)
對象會員 參與·一般協助 緊要
한반도 이 누리에 평신도 사도직으로서의 학생회란 천주님의 밀알의 뿌리를 내린지도 어언 10개 성상…. 파란곡절 많던 학생회 활동은 한 해 연륜을 더해감에 따라 젊음에 불타는 학생들의 손에 의하여 내일의 보다 나은 한국 교회사 창조를 위하여 힘차게 자라왔다.
때로는 무엇을 해보고자 사제(司祭)에 선배들에게 아쉬움을 호소해가며 또 때로는 이를 이루지 못하여 힘과 맨주먹의 젊은 학생들이 서로 부등켜 안고 울며 자라온 우리 학생회는 조금만 더 누구의 협조와 지도하는 밀알의 거름을 부어 주었던들 오늘 이들은 보다 많은 천주님의 밀알을 추수해 들였으련만….
그러나 이러한 제난관(諸難關) 중에서 자라온 이들 학생회가 천주교 사회 내에서 등한시 되고 있다는 사실은 내일을 위한 이 누리에 커다란 암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중에서도 해를 거듭해 온 전국 대회는 올해에도 보다 나은 연륜의 보람을 가져왔으니 특히 자료의 빈곤 속에서도 교황 요안 23세의 칙서(勅書)인 「빠쳄인떼리스」가 하나의 「세미나」 형식을 통해서나마 내일을 걸머진 푸른 싹들에게 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앞을 내다보는 우리들에게는 커다란 수확이 아닐 수 없다.
한편 학생회는 이 누리의 젊은이들(교우 비교우)을 위하여 사상강좌(思想講座)로써 부족하나마 천주의 복음을 펴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중고등연합회(中高等聯合會)를 통한 성가대회(聖歌大會)는 노래로써 복음전파에 평신도 사도직으로서 임무 수행에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가톨릭 의대의 의료반(醫療班)을 비롯한 중앙대(中央大) 가톨릭 학생들의 각 단위 학생회에서는 하동계(夏冬系) 계몽 및 봉사활동을 통하여 농촌의 천주님의 자녀들을 천주님의 품으로 불러들임에 희생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학생회가 이러한 활발한 활동을 하는데 애로점(隘路点)이 있으니 한국의 일반 교우들의 대개가 그러하듯 학생들의 상호협조가 부족하다는 점과 또한 이들 행사는 필수불가결한 경제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학생회가 10개 성상을 자라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심지어는 연중 한 주일의 연보를 학생회 운영 기금으로 해달라는 제안까지 있었으나 별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런 점에 착안하여 「셀」을 통한 하생회 활동을 수년 전부터 행해오고 있다.
이 조직의 장점은 손쉽게 학생회 활동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실정에 불합(不合)되는 점이 좀 있으나 해를 거듭함에 따라 이제는 이외로 활발한 활동을 하여 「셀」에서 「유닡」로 「유닡」에서 「카운실」로 발전되어 앞으로가 기대되는바 크다.
이러한 학생회 활동에 우리 교우들은 좀 더 성의 있는 지도와 편달이 있어야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누리에 천주님의 자녀로서 품에 찾아들지 못한 이들을 찾아들이는 학생회의 활동을 더욱 민활히 하여야겠다.
■ JOC - 「韓國勞動」 硏究·組織에 全力 / JOC 전국본부
全國에 男女 72 「섹숀」
지난 12월1일자 가톨릭시보 사설란에서 실린 가톨릭 「악숀」과 1년 회고를 읽고 반성과 느낀바 JOC(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 「악숀」으로서의 책임과 위치를 재삼 확인하는 바이다.
금년 중 JOC는 춘천 부산의 두 교구가 연합회의 결성을 보게되어 7개 교구 남녀 13교구 연합회에 72 「섹숀」으로 구성되어 789명의 정회원과 1415명의 예비회원 2816명의 일반회원으로써 공장 일터 사무실에서 노동계의 정화와 천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JOC 대외적 활동으로는 JOC 4개년 계획 중(노동의 가치문제) 자유노동자 문제가 금년 활동계획이다.
JOC는 자유노동자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자유노동자들의 생활실태조사」를 JOC가 접촉하고 있는 자유노동자 3000명에게 실시한 결과 이들의 당면문제인 식생활 문제를 제3차 전국 평의회에서 결의된 바 노동자를 위한 간이식당 설치 계획을 세웠다.
먼저 JOC는 NCWC(천주교구제회)의 협조하에서 서울시내 남대문로에 1일 1천5백명의 노동자에게 급식할 수 있는 식당을 세워 음식을 제공하여 오던 중 서울특별시는 시에서 운영하던 근로자식당 4개소를 JOC에 인계한 것이다. 이로써 시내 5개소의 「보리싹식당」은 1일 5천명의 노동자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또 광주에서도 1일 1천5백명의 노동자에게 대구는 64년 1월에 그 외 각 교구에서 노동자 간이식당의 설치계획에 추진 중이다.
다음 JOC가 발족 이후 교화지도해 온 방지거반(넝마주이)의 활동은 그간 동대문 지대엔 상담원을 배치하여 그곳 150여 명의 대원을 비롯하여 성동 서대문 용산지대 등에 JOC 정기회합을 실시하며 동대문에는 가톨릭 여학생관의 여대생들과 합하여 100여 명의 예비회원과 4명의 투사를 양성했다. 그의 각 지대의 일반회원 300여 명의 교화지도에 발을놓고 있다. 다음 JOCF(가톨릭노동여자청년회)의 연간계획은 식모문제이다. 식모의 생활고 인권문제를 노동자로서 대우받게 노력 중인 JOCF는 제1차 「색숀」별 「식모에 대한 생활조사」 결과 제2차로 전국에 각 교구 단위로 여론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그리고 JOCF 전주교구 소속 전북제사회원들은 6개월간 기업주와 투쟁하여 전북제사지역지부결성을 보게되었다. 이에 80 「퍼센트」 이상의 종업원들이 JOC 교육을 받고 있다.
그 외 교육강좌로선 꽃꽂이 결혼에 관한 문제 음악감상을 통하여 여성으로 갖추어야 할 제반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심지어 「뻐스·걸」 「빠·걸」과 같이 힘들고 고된 일과를 보내며 사회의 인식이 부족함과 윤락의 함정에 빠진 여성들을 위하여 JOCF는 『어둠에 길 잃고 헤매는 천주님의 딸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소서』하며 기구와 용기로써 교화지도에 다대한 성과를 오리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같이하면서 현세의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이 긴급한 노동계를 구출할 자,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한 시 바삐 가톨릭노동청년회의 깃발 아래 모여줄 것을 호소하는 바이다.
■ 敎育 - 「量」 向上의 해 / 葬炳補(大建中高校長 神父)
精神敎育·組織的 發展은 踏步
대학- 서강대학에서 생물학과 경영학과 독일이학과, 효성대학에 상학과와 생활미술학과 등이 증설되었다. 서강대학에서는 5월4일이 제2교사(600평)를 낙성하였다. 춘천에 성심여자대학이 신설된다. 성심수녀회에서 경영할 이 대학은 기숙사 중심의 여성 「엘리트」 교육을 목표로 대지 4만명 위에 연건평 5천평의 건물을 세울 것이라고 하며 금년에 이미 1천3백평의 건물을 준공하여 오는 신학년에 개교하리라고 한다.
신학교- 금년들어 3개 소신학교가 기공되었다. 하나는 대구시 대명동에 9월9일 기공된 대구소신학교(後稱)이다.
총예산 5천3백만원으로 연건평 2천2백평의 대규모의 최신 시설을 갖출 것이라고하며 대구관구와 광주관구 관하 5개교구의 소신학생들을, 양성할 것이며 다음은 대구 범어동에 건립 중인 성 프란치스꼬회(꼰벤뚜알) 신학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서울시 교외(영등포구 대림동)에 300평 건물로 준공된 「사레지오」회 신학부이다.
중고등학교- 전주의 해성공업고등학교의 실습공장 80평 준공, 천안복자중고등학교 6개 교실 준공, 인천박문여자중고등학교의 생활지도관과 가사실 준공 등이다. 이외에도(가톨릭시보의거)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교사 강당, 특별교실 신축, 운동장 확장 등으로 학교 발전의 일로를 계속하고 있다.
국민학교- 인건비 국가보조와 수업료와 기성회비 등의 징수를 허가하여 사립국민교 설립법이 작년 가을에 나왔다.
서울의 성심여자중고등학교에서 금년 봄에 여아 50명을 모집하였고 광주 사레지오 부속 국민학교가 생겼고 서울계성여자중고등학교가 계성국민학교의 인가를 얻었다.
계성국민학교는 종교 영어 특기교육의 특수학교 경영을 목표로 한다.
현재 정부에서 제시한 이러한 조건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유리한 조건이다.
교우 2천명을 가진 본당은 단독 국민학교를 경영하여 동심(童心)에 신앙을 넣어주고 아동들이 종교적인 습성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장학금- 오지리 부인회서는 1963년부터 1965년까지 3년간 매년 46명의 국내 가톨릭학생에게 매 인당 1만3천원의 장학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
동 부인회에서는 금년에 또 국내 실업계 고등학교에 징학하는 학생 10명에게 매 인당 연 2만6천원을 지금하고 있다.
그리고 금춘에 대구에 석강장학금이 설치되었다. 동 장학금은 삼덕섬유회사 사장 바오로.김(金德龍)씨가 대구대교구 산하 중고등학교에 재적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각급학교 각학년 3명에게 공납금을 지급해 준다.
오지리 부인회를 본받아 우리 한국에도 각 단체에서 장학금을 설치해 준다면 가톨릭 내의 가난한 수재들을 구하며 인재 양성에 큰 힘이 되겠다.
전국 가톨릭중고등학교 교장회의- 제5회 회의가 6월6일 제주시 신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열렸다. 동 회의에서는 서울에 교학부(敎學部) 설치문제를 주로 논의했다.
그 이유는 교회경영학교의 가톨릭교육이념과 특성의 발휘를 위한 연구, 교회학교에 사용될 도의 생물 교리 역사 교과서의 편찬발행 및 검인정 문교부와의 제반문제 교섭을 위해 중앙에 어떤 기관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고 이 교학부의 설치를 주교단에 건의할 것을 결의하였다.
1963년 교육발전을 회고해보면 수 개 학교의 증설과 물질면의 발전은 어느 해보다 현저했다.
그러나 아직 정신적면 조직면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이 해를 넘기게 된다.
■ 레지오 - 收穫期 맞는 「레지오」 / 李 원선시오(세나뚜스 團長)
첫 全國巡回 視察 意義 커
우리의 「레지오 마리에」가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면서 영혼들을 성화하여 천당에 인도하는 사업에 성모마리아의 군사가 되어 충성을 바치는 자부스러운 투쟁을 하는 중 오 주 예수 성탄을 맞이하면서 일년 동안의 발자취를 잠간 돌이켜 보고자 한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우리 「레지오」의 휴일동안의 사도직이다. 「세나뚜스」 전 간부는 각 교구 「꼬미씨움」 간부와 산하 「레지오」 단원들을 방문하여 친목을 두터웁게 하고 「레지오」 문제 전반에 걸쳐 실천을 통한 연구를 마치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동안 서신 연락만으로는 알지 못했던 여러가지 문제를 발견하여 다룰 수가 있어 예기 못했던 「레지오」의 유익한 수확을 거둘 수 있어 소비된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우리들은 돌아와서 「레지나 레지오니스」라는 기관 잡지를 발행 착수하여 매달 조직체 내에 보내줌으로써 전체 단원들에게 세계의 「레지오」 활동 모습을 소개하여 단원들의 교육과 사기 앙양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가운데 금년(63년) 7월에는 한국 「레지오」 창설 10주년의 돌을 맞이하여 이 나라에 「레지오」를 처음 가져오신 광주 헨리 대주교님의 『나는 「레지오」를 택한다』라는 중요한 문헌을 「가톨릭시보」에 연재함으로 전국 「레지오」 행동·협조단원뿐 아니라 이를 이해하는 많은 남녀 교형자매들에게 좋은 감동을 주었다.
일년동안에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영혼들을 추구하여 들어간 곳이 너무도 범위가 넓으며 접촉된 영혼의 수도 막대한 것이다. 단적으로 몇 가지 그 영웅적인 활동을 들어보면 「프로테스탄」 27명 안식교인 20명을 집단개종케 했으며 형무소 내에 정치범 살인미수범을 방문하여 교리를 가르치며 3년·7년 동안의 냉담자를 59명이나 성사보게 한 애덕의 활동, 농번기에 보리베기 모내기 밭매기 일을 도우면서 그 영혼을 놓치지 않으려고 달라붙는 활동, 몇 달 동안에 외인 752명을 접촉하여 179명을 예비되게 하고 227명의 예비자를 가르쳐 188명의 영세자를 냈으며 소년소녀 단원들의 슬기롭고 씩씩한 활동은 어른들께 감명을 주었다. 이렇게 많은 영혼에게 생명을 주고 진리의 횃불을 잡게한 위대한 일은 양적으로 많은 「레지오」 단원들이 엄격한 규칙에 복종하면서 쉴새없이 활동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이 해 동안에 세기적인 위대한 공의회를 보고 있다. 바오로 6세 교황님은 『교회재생을 위해서는 사도직의 광범위한 형태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평신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세계는 변천의 세대로 옮겨가고 있다. 교회는 거기 관심할 수 없다. 시대가 곧 우리에게 설교하고 있다. 우리가 주저할 때는 아니다』 『우리는 안이하게 앉아있을 수 없다. 좋은 뜻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등등의 말씀을 보내주심으로 우리 평신자 사도직하는 마음에 선풍적인 의욕을 일으켜 주셨다.
소수의 일군이 하는 것보다 많은 일군이 하는 일은 더욱 큰 것을 쉽게 얻는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고루했던 사도직은 현대에 영웅적인 활발한 날개를 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성모님의 「래지오」는 사도직을 수행하려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국 1만명의 활동단원과 3만명의 협조단원은 하나의 「세나뚜스」와 9개의 교구 「꼬미씨움」 산하에 우수한 조직을 이루고 완전히 교회와 일치한 사도직 운동이다. 참으로 흥정 없는 「레지오」 대열에의 참여가 있어야 할 일이 아닌가 하고 「레지오 마리에」의 전망에 생각이 간절하다.
■ 出版 - 惡條件 아래… / 李錫鉉(가톨릭소년 편집장)
全國 8個社서 年間 62鍾 發刊
▲定期刊行물
정기물의 변동은 「경향신문」이 교회의 날개 밑을 완전히 떠나서 개인의 소유로 운영되게 된 점과 순교자현양회가 회보(반월간 신문)를 내게 된 점을 꼽을 수 있고 일간지 「매일신문」과 주간지 「가톨릭시보」와 월간지 「가톨릭소년」 「가톨릭청년」 「경향잡지」는 저마다 궤도를 별다른 변함 없이 그대로 달리고 있는 셈이다.
십여년간 교우들과 정들인 「경향신문」이 교회와 절연(絶緣)하고 남의 손에 넘어간 것은 다년간의 이 신문의 공죄(功罪)는 엎어두고 섭섭함을 금치 못하겠으며 어떤 뜻에서는 교회에 적지 아니 「마이너스」가 되리라고 본다.
▲記念스런 單行物
단행본으로서 두드러진 출판물은 「매일미사경본」(분도 出版社)과 가톨릭사상(史上) 처음으로 나온 종교극의 집대성(集大成)인 「가톨릭 _集」(가톨릭 出版社) 「교리해설그림괘도」(上同) 그리고 「神曲」의 번역문학상에 빛나는 시인사제(詩人司祭) 최민순(崔민순) 신부께서 스패인 유학에서 돌아와서 처녀시집 「님」 이후 8년만에 제2시집 「밤」을 자비 출판하였고, 김(昌文) 신부 심혈의 결정(心血結晶)인 「한국가톨릭 어제와 오늘」이 46배판 1천백면의 두룸 한 책으로 올해의 추수에 보탬이 되고 있는바 한국교회의 현황과 교회사적 사진 다수를 수록한 점에서 참고자료가 되겠고 「가족계획과 현대적 과제」(청라版)도 이 땅의 현실에 알맞는 출판물이라 하겠다.
▲單行本 鳥瞰
이제 중앙에 여섯 지방에 둘 있는 가톨릭적 출판사의 금년 수확을 보면 가톨릭출판사가 26종(社刊 19·自費 7) CCK가 14종 갑진문화사가 10종 바오로출판사가 4종 청라출판사가 3종 바오로수사원이 신설한 대조사(大潮社)가 2종 분도출판사가 2종 대건출판사가 1종- 총합 62종의 책이 시중으로 쏟아져 나온 셈이다. (重版物은 포함하지 않았음)
교우들의 독서경향은 예년이나 다름 없이 딱딱하고 무게있는 내용보다 성인전이나 전교용, 그리고 아동물이 비교적 환영을 받는듯 싶다.
자비출판의 「톱」을 달리는 이는 연전히 김정진(正鎭) 신부로서 「교리교수법」 2권 「순결」 「교리이야기」 ③ 등 네 권을 내고 있다. 문필가들이 글쓰기만도 고역인데 출판비마저 자담(自擔)해야 하는 한국적 참상의 하나로 시조시인 하(漢珠) 신부의 예를 들 수 있다. 이 분은 제4시조집 「태양의 노래」를 지형(紙型)까지 떠두고도 제작비 부족으로 부득이 내년 봄으로 출판을 미루게 되었다.
▲來年의 出版計劃
내년도 출판계획으로 대조사(大潮社)는 「가정문고」 14종과 묵상책을 내겠다고 하며 바오로출판사는 「기독신자보감」 「주일미사」(羅韓對譯) 등 7종을 CCK는 「그림성경」 「교사용 교리」 등 20종을 갑진문화사는 「신곡이야기」 「소년교회사」 등 13종을 청라출판사는 「퀫숀·뺙스」를 각각 출판할 예정으로 들린다.
■ 信用組合 - 3年間에 54個 組合 세워 / 메리.가별(국제협동교육연구원장)
長足의 發展하고
신용조합운동이 시작된지도 어느듯 3년반이 되었다. 세계 신용조합운동의 역사는 115년-이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세월이었지만 우리에겐 가장 귀중한 3년반이었다. 두말할 것 없이 신용조합운동이 한국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운명이 바로 이 3년간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5월1일 부산에서 성가신용조합이 27명의 조합원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오늘날 전국 방방곡곡에서 불길처럼 꺼질줄 모르고 퍼져나가고 있다.
1961년 말 현재까지 전국에는 3개의 신용조합밖에 없었다. 이는 하나의 시험단계였었다. 1962년 2월에 제1차 전국신용조합지도자 강습회르 개최한 후 신용조합운동은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1962년 말에 가서는 전국적으로 27의 신용조합에 3,621명의 조합원을 갖게되었고 출판자금총액도 약 52만원으로 증가되었다.
한 마디로 요약해서 1962년은 신용조합운동의 씨가 전국적으로 뿌려진 해였다. 1962년은 국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신용조합운동이 인정을 받은 해였다. 그것은 1962년 제14차 「국제신용조합의 날」 세계경진대회에서 1등상을 받은 사실이다. 이는 너무나도 벅찬 감격을 주었고 우리의 사업에 대한 국제적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었다.
1963년은 우리나라의 신용조합운동을 어느 정도 확고한 기반 위에 올린 해라고 볼 수 있다. 1963년 10월 말 현재로 전국에는 46개의 신용조합이 조직되었고 조합원 수는 5,821명, 조합 총재산은 8백43만원을 돌파하였다. 한편 대부금 총액은 1천3백32만원에 도달하고 있다. 12월8일 현재로 전국의 조합수는 52개이며 금년 말까지는 54개 조합이 생기게 될 것이다.
금년 말에 가서는 전국 54개 조합의 출자금 예금, 그리고 적립금 등을 합하면 전국조합 총자산이 약 8백50만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돈이 조합원들이 1원 2원, 5원, 10원, 짜리 푼돈을 계속해서 저축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6천명의 조합원은 이에 대하여 잘 댇바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대부상환 성적도 매우 좋은 편이다. 금년도에 대부를 받아간 인원수는 총 3천1백명이며 고리채 정리, 장사밑천, 생산자금, 교육비, 의료비 등으로 이용되었다. 금년도에는 지도자 강습회가 두 번이나 연달아 개최되었다. 3월에는 농협중앙회의 요청에 의하여 농협의 일선지도자 8명을 포함한 27명의 지도자를 양성하였고 4월에는 재건국민운동 경남지부 산하 요원 34명에 대하여 지도자 강습을 마쳤다. 이 지도자 강습회는 10일간에 걸쳐 하루에 10시간씩 공부하게 되어 있다. 최근에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국민운동 경남지부에서 54개의 신용조합을 이미 조직하였고(경남일대) 120개 부락으로부터 신청이 들어왔다고 한다.
본원이 서울에 이전한 것은 7월 말이었고 지난 10월3일에는 서울지구 지부를 창설하였다. 국민운동 서울지부의 요청에 의하여 12월11일부터 지도자 50명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예정으로 방금 그 준비에 착수하였다.
신용조합 운동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 내년 초에는 전국연합회를 조직할 계획이며 지도자 양성을 전국적으로 실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따라서 민정이양 후에는 신용조합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 社會事業 - 事業方針 「自活」에로 / 尹乙洙(사회사업 「콜롬바」社 이사장 신부)
내 同胞 내가 求해야 할 때 到來
우리나라 사회사업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특수한 위치에 놓여있다. 민주정치에 입각하는 자립경제에 미달하는 해방 후 한국이 필연적으로 외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더우기 전쟁으로부터 발생한 긴급 또는 특수 구호대상자가 증가함에 따라 그날 그날 살아가는데 급했을뿐 하나의 발전적인 토대를 세우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민주주의에 입각한 사회사업은 살 수 있는 사람이 살지 못할 때, 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에 한국인이 조금씩 인식해가는 점이 이념적으로 본 큰 성과일 것이다.
외국의 원조에만 의지하려하지 않고 우리끼리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상의 싹이 터오르는 것도 앞날을 약속하는 발전이라 하겠다.
1963년부터 국가나 사립단체에서 자립자족 재활 등등에 요구호자 자립경제 방향의 원조를 실시하는 것은 그 결과가 예상대로 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국가나 또는 민간외원단체 또는 민간국내사회사업 단체에서 농지 개발 조림 공익사업 등에 크나큰 안을 세워 실천을 보려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사업계에 오로지 하나의 큰 서광일 것이다.
소록도 나환자들에 노동력을 빌어 오마도 농지개발을 하는 위대한 계획은 현재 난관에 봉착해서 준공의 시일이 늦어질 망정 한국사회사업 역사상 빛나는 사실이다. 국외 민간외원단체는 특히 금년부터 원조의 방향을 바꾸어 하나의 구호사업을 떠나 농지개발같은 부문에 좀 더 효과적으로 도우려한다는 것은 위선 인간개조에 도움이 되리라 보며 기대하는 바 크다. 구정권 때보다 혁명정부이래 사회사업부문에 좀 발전은 있으나 하나의 정치적 선전재료로 되어있다고 볼 수 있고 이상과 또는 주의에 있어 발전은 컷으나 실천에 크게 옮겨지지 못한 것을 민중은 하나의 기만정책이라 한다.
고위층 한 분이 나환자들을 전부 몰아다 먼 섬에 갔다 버려둠은 어떠냐고 하는 말까지 들었다. 나환자에게는 대한민국이 보장하는 시민권이 없는가?
금년처럼 식량정책에 민생고가 심한 것을 알면서도 위정자는 과연 또다시 농지개발 사업에 좀 더 나은 예산을 책정하지 않겠는가 1964년도 농지개발자금이 1억5천만원였다는데 시중은행은 아이스크림 제조하는 한 사업에 1억5천만원을 대부했다니 절대식량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 아이스크림으로 살 것인가.
이런 부문에는 자금이 들지만 토지개발해서 식량증산에는 이처럼 체면차릴 정도로만하니 위정자는 과연 옛날 절양사고로 불란서 조정이 망하고 임금이 단두대에 올라 죽은 역사를 모르는가. 연내 인구 절대증가수가 60만으로 계상됐다는데 그렇다면 60만에 해당하는 식량증산안이 서야 남한테 빌어먹지 않고 살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점은 외교 재무 상공 등등의 치례정치보다 더 급하고 중하다고 보는데 건국 이래 이 점을 얼마나 소홀히 했는가 한다.
결론으로 보아 이념적 발전이 확신한 토대 위에 앞날을 약속하며 좀 더 위정자들의 참된 국민문제를 생각해서 사회사업에 좀 더 관심을 두어 새해부터는 효과적인 성과를 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