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천주님과 결합하는 둘땟 길은 그리스도 당신이 우리게 가르쳐 주시는 성체성사를 통한 길이다. 사랑과 인식을 통한 결합은 지난번에 말했으니 이번에는 지능과 의지를 통한 결합 뿐 아니라 우리의 전부를 통해서 이룩되는 결합을 말하고자 한다. 『내 마음과 내 살이 생활하시는 천주님을 향해 소리쳤다.』고 다위 성왕은 읊고 있다.
성체성사를 통해 천주와 인간이 실제적 결합을 이룩하는데 있어서도 두 본체가 혼합되는 것은 아니다. 천주님은 어디까지나 순수하신 분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이 그와 더불어 혼합됨을 원한다면 망령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혼합이 아니고서도 우리의 전부가 천주님과 가장 친밀하게 결합하는 길은 있는 것이다.
이런 결합을 유(有)의 결합이라고 한다. 이런 결합은 먼저 우리가 강력히 원해야 한다. 마치 먹고 마시는 것이 우리 육신에 겨랍하듯이 천주님이 우리 생명에 결합하시게 될진저! 천주님께 대해 우리는 언제나 배고파하고 목말라하고 있다. 천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긴밀한 것이 우리에게는 요구된다. 우리는 천주님을 점유하기를 원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그를 먹고 마심으로 우리 안에 모시고 그로 말미암아 배부르고 만족하고 꽉차있기를 원하고 있다.
『생활하시는 성부 나를 보내시고 또 나는 그로 말미암아 삶같이 이렇게 나를 먹는 이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물론 우리는 우리 자작으로 이렇게 원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왕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에야 안심하고 원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간 야심이라고 까지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원의는 조금도 천주님께 불경(不敬)이 되지 않을 뿐더러 천주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면서까지 우리보다 먼저 원하신 것이다. 천주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이런 원의를 불질러 놓시고 우리를 당신의 아들들로 만드시려는데 우리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천주님의 무한하신 자비에서 솟아 나오는 선물을 받아들여 줄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저 내 살은 참으로 먹을 것이오 내 피는 참으로 마실 것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게 거(居)하고 나도 저에게 거하며 마치 생활하시는 성부 나를 보내시매 내가 성부로 말미암아 삶 같이 나를 먹는 자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은 바로 그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먹고 사람이 되신 천주님을 우리 안에 받아 모시는 것이다. 이는 참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천주님과 인간이 가장 긴밀하고 전체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이 신비를 실행하는데 빵과 술은 신기하게도 가장 적절한 도구들이기도 하다.
빵은 사람의 일상생활에 가장 필요한 식품이며 절친한 물품이다. 천주님은 빵의 형체를 취하셔 사람의 생활한 양식이 되신다.
「안띠오키아」의 이냐시오께서는 「불사불멸의 한 보증인 빵은 우리는 서로 나누고 있다.』고 「에페소」 신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빵은 우리를 천주님으로 먹여 기르며 우리를 천주님 안에 있게 하고 천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게 하는 양식이다.
술은 또 단순히 갈증을 풀어주는데만 그치지 않고 『사람의 마음까지를 즐겁게 해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감흥에 차 있는 내 집은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같은 성경은 읖조리기도 한다. 물론 여기 말하는 도취는 술에 취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빨간 색갈의 포도즙을 마시는 사람을 흥겹게 하는 향기와 힘이다. 그리스도게서는 당신의 피를 우리에게 마실 것으로 주시기 위해 술을 이용하신다. 『그리스도의 피는 나를 취하게 하실지어다.』 이는 타는듯한 마음의 기사(騎士)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외침이다. 아녜스 성녀는 예수님의 피를 사랑의 신비이며 형언할 수 없는 미(美)의 신비인 양 말씀하고 계신다. 『나는 그의 입에서 꿀과 젖을 받았으며 그의 피는 내 볼을 불게 물들였다.』고 그녀의 첨롓날 우리가 읽은 경본을 읊고 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빵과 술이 되셨다. 우리는 이제 항상 굳세고 힘있고 즐겁게 거닐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마시지 않으면 아니되게 되었다.
黃旼性(가톨릭대학장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