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59) 코트 ①
발행일1964-07-26 [제432호, 4면]
나는 될 수 있는데로 마음의 동요를 누르고 태연한 자세를 가지려고 애를 썼다.
『생활을 위해서 다방 「레지」로 취직한 것이 왜 나빠?』
나는 스스로 타일렀으나 「레지」로서 그의 앞에 가기는 싫어 같이있는 미스박을 보내었다.
미스박은 진호 앞에 갔다오더니 손님이 나를 만나자는 말을 전한다.
조금 후에 커피잔을 들고 그의 앞으로 갔다.
『여기 주인 아주머니는 내가 아는 이야요. 「레지」가 모자란다고 해서 일 좀 거들어 주러 왔어요』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친구들한테서 미스양이 이곳에 있단 말을 듣고 처음에는 곧이듣지 않았어! 와보니 소문은 거짓말이 아니었어…』
진호는 얼굴빛을 흐린다.
『「레지」하는 사람 따로 있나요?』
『딕슨과의 일은 어떻게 되었어요?』
진호는 나의 얼굴에 그의 시선을 지긋이 댔다.
『그 사람은 「코리아」에 못오게 됐어요』
『내가 당초에 뭐랬어? 가볍게 남을 믿지 말아요?』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사정인 것을 어떻게 해요?』
나는 싹 돌아서서 「카운타」로 와 버렸다.
삼십분쯤 묵묵히 앉았던 진호는 다시 미스박을 시켜서 나를 보자고 한다.
귀찮았지만 그의 앞으로 갓다.
『좀 앉아…』
『「레지」는 손님 옆에 앉을 수 없어요!』
『딕슨과의 관계를 자세히 예기해봐요?』
『더이상 얘기할 것이 없어요.』
『「레지」는 그만두고 딴 직업을 구하도록 해요!』
『「레지」가 어때서요?』
『……』
『「레지」는 나쁜 직업인가요?』
『미스양은 영어도 하고, 「타이프」도 칠줄 아니, 그 방면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구하라는 거야요… 특히 이 다방은 양키들이 많이 오는데…』
『양키가 많이 오면 어때요 그 사람들이 사람 잡아 먹는 호랑인가요?』
『…미스양, 나는 진정으로 얘기하고 있는거야!』
『나도 진심으로 얘기하는 거야요…』
『미스양은 타락할 생각이야?』
『「레지」를 모욕하지 말아요! 서울 안에는 수천명의 「레지」가 있어요. 그 여자들이 타락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레지」가 타락이라는 건 아니아요. 나순이로서는 하나의 타락으로 기울게, 방향을 가졌다는거야!』
『진호씨가 저녁에 공장에 가서 직공노릇 하는 것도 그럼 하나의 타락이겠군?』
『그것은 나에게 필요한 「아르바이트」지』
『이것도 나에게는 필요한 「아르바이트」야요!』
『나순이는 많이 변했군?』
『사람은 성장하는거야요.』
『후퇴지 성장이 아니야…』
『쓸데없는 충고마세요, 남의 걱정보다 진호씨 자신의 일이나 잘 하세요…』
나는 이렇게 뱉듯이 말을 던지고 그의 옆을 떠났다.
진호는 갈적에 「카운타」에 차값을 내면서 종이 쪽지 하나를 나에게 주고 갔다.
펴보니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나는 이곳에 미스양을 공격하러 온 것도 아니고, 미스양에게 부끄럼을 주려고 온 것도 아니요. 미스양의 조언자가 되고 협력자가 되고자 왔을 뿐이요. 돈이 없는 나는 물질적으로는 미스양을 도울 힘이 없지만, 정신으로는 누구보다도 좋은 친구가 될 생각이요, 인간을 구하는 것은 몇푼의 돈 몇가지의 물질이 아니라, 하나의 올바른 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요. 주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진실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려고 온 것이요! 왜 내 말에 반발을 하시오! 껍질을 쓰지말고 솔직히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도록 하세요. 우리는 서로 고민을 이야기 하셔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참된 내일의 성장을 위한 발디딤을 찾게 될 것이요! 또 오겠으니, 그때까지 생각해 두세요…)
미스박과 마담이 무슨 편지냐고 묻는다. 미스박은 연애편지인 줄 알고 놀린다. 마담은 살피는 눈초리로 좀 보자고 한다.
『아무것도 아니야요!』
나는 그들의 보는데서 편지를 손바닥에 똘똘말아 창밖으로 내던졌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진호의 편지는 내 마음 속에 걸려 있었다.
(나는 자유이다. 내 몸을 내 맘대로 할 것이지 남의 말이 무슨 소용있어!)
이런 생각으로 자신을 받치고 있었으나 어쩐지 그 기둥이 흔들거린다.
하루는 가끔 오는 중년손님 하나가 저녁 무렵에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한다. 다방의 음식은 작곡밥과 고추장 김치뿐이었다. 다방의 「홀」의 장식은 화려하지만 종업원의 먹는 음식은 너무도 초라했다. 마담도 하루걸러 사치스런 옷을 갈아입지만, 우리들과 같이 반찬없는 밥을 먹었다. 가끔 딴 것이 먹구 싶으면 따로 나간다. 이러한 식생활이니 만큼 나는 손님이 저녁을 사주겠다는 것을 반갑게 승락했다.
감출 것도 없어서 마담한테 저녁을 얻어먹고 오겠다고 말하고 다방을 나설적에 진호와 마주쳤다.
『어디 가요?』
진호는 손님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나섰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 꽤 큰 양식점으로 따라 들어가다가 힐끔 돌아보니 진호가 저편 모퉁이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끈덕진 진호이 눈초리에 반발심을 느꼈다.
(이대로 진짜 타락해 버릴까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저녁을 사주는 남자에게 애교있는 표정도 해보였다. 그의 환심을 사서 옷이나 한벌 얻어입고 싶은 생각도 든다.
(거러다가 그가 날 잡으려고 하면 어떡허지?)
그때는 호르르 날라가 버릴 생각을 하니, 나는 나대로 그 중년신사를 이용해 먹을 일이 흥미롭기도 했다.
한시간쯤 후 다방에 돌아오니, 진호는 없고 그대신 그가 써놓고간 편지 쪽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주님께 나순이를 지켜주시기를 노상 기구하고 있어요. 지금도 나는 교회로 가서 나순이를 위하여 기구할 것이오!)
어쩐지 나는 이 두번째의 편지는 찢어비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뭘? 이까짓것!』
문득 반발심을 불러일으키어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휴지통에 버렸다.
그러한 행동이 무언지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그날밤 나는 거미줄이 낀 잠자리방 천정을 바라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언지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진호의 말 속에서 샘솟는 것을 느낀다.
나는 갑자기 진호를 만나고 싶어졌다.
며칠동안 진호 오기만을 기다렸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마담은 새로 「바바리코트」를 했는데 내가 입어 보니 꼭 맞았다. 나는 그 「코트」가 퍽 부러웠다.
『미스양 나 따라와』
저녁 무렵, 손님이 적을 때 마담은 무언지 속에 품은 표정으로 나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갓다.
『「코트」 골라잡아…』
양품부 앞에서 마담은 싱긋이 웃으며 말한다.
진호의 말이 나의 마음에 낚시 끝 같이 걸리기는 하였으나, 나는 「코트」하나를 달라고 하여 입었다.
내 몸에 꼭 맞았다.
이상했다. 옷 한벌에 대한 기쁨은 진호의 말을 짓밟고 위에 올라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