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60) 코트 ②
발행일1964-08-02 [제433호, 4면]
며칠후 다방이 한가한 시간인 저녁 무렵을 타서 나는 내발로 한 열흘만에 집으로 찾아들어 갔다.
양부는 반가움과 성난 기색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대했다.
『그간 어디서 뭘 했냐?』
『취직했어요.』
『어디?』
『양장점이야요!』
『어느 양장점이니?』
『명동이야요!』
『명동 어디쯤이니? 양정점 이름은 뭐니?』
『……〃
나는 이때 벽에 걸린 달력 그림에 여자가 「쥬스」를 앞에 놓고 웃고 있는데서 「힌트」를 얻었다.
『미소양장점이야요』
『미소가 뭐니?』
『웃는다는 미소 말이야요!』
『그 「코트」는 어서 났니? 속에 입은 것도 새로 한거구나!』
『양장점에서 해 주었어요!』
『네가 양재 기술이 있니?』
『바느질 하는 것이 아니고, 출납회계 사무야요.』
『어디니, 그 양장점 있는 곳이!』
『명동이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며명동 어디쯤이냐 말이다?』
『충무로 2가에서 3가 사이에 조그만 골목이 있어요, 그 골목을 두번째로 꼬부라져서 셋쩨 집에서 다시 두번째 왼쪽 골목으로 글어서면 바로야요….』
일부러 복잡하게 말을 했다.
『좀 더 알기쉽게 말해라!』
『……………』
다방의 「레지」가 되었다고 바로 말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아서 가공이 양장점이 있는 곳을 아뭏든 양부가 납득이 가도록 그 소재를 설명했다.
결국 설명을 하고 보니 현재 「레지」가 되어있는 그 다방 근방을 가르쳐 주고 말았다.
『월급은 얼마나 되니?』
양부는 과히 싫지 않은 표정이다.
『먹고, 옷해주고, 용돈 좀 얻어쓰는 정도야요….』
『너 왜 진작 집에와서 얘기안하고 이제야 돌아오냐, 사방팔방으로 구두바닥이 닳도록 찾았다….』
양부는 때릴듯이 몸을 들먹거리며 두눈을 부릅뜨기도 하였으나 폭력을 발사하지는 않았다. 미리 나는 양부가 좋아하는 생과자를 한상자 사왔었다.
그는 주당이 아닌만큼 단것을 어린아이 못지않게 좋아했다.
『아버지 내가 차 끓여 올까? 따끈한 차 하고 잡수세요?』
나는 다방에서 조그만 비닐 주머니에 들은 한잔짜리 홍차를 몇개 훔쳐온 것이 있었다. 물을 끓여 홍차를 타서 아버지 앞에 놓았다.
그가 홍차를 마시며 생과자를 먹는 것을 보고 나는 이내 일어섰다.
『가보아야겠어요.』
『집에서 다니면 안되니?』
『나 하나라도 먹는 것을 더니 좋지 않아요!』
『네가 없으니 쓸쓸하다!』
이때의 양부의 얼굴은 조금 가엾어 보이길래
『그럼 자주 집에 들릴게요!』
나는 더 이상 그가 캐묻는 것이 싫어서 총총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
『얘…』
양부는 따라 나오며 소리친다.
『나하고 같이 가자. 어떠한 곳인지, 좀 보자!』
『…딴데 들릴데가 있으니 오지마세요!』
나는 그가 쫓아오지 못하게 내뺐다.
진호네 집에나 들러볼까 하다가 그만 두렀다. 설교하는 그가 진실해 보였으나 어쩐지 싫다.
나는 전보다 더 몸의 자유를 느꼈다. 나는 이미 양부라는 테두리 속에 갇혀 있던 어린 나순이는 아니었다.
굼틀거리든 벌레가 한겨울을 지나고 나니 나비가 되어 훨훨 공중을 날으는 이야기가 영어교과서 속에 있는데 나는 그 나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기어다니던 전날의 나를, 나는 마치 딴사람의 일쯤 생각했다.
그날밤, 다방에 돌아와서 있지나 열시쯤 걷어치우려는 무렵에 전날 저녁을 사주던 중년 신사가 술이 얼근해서 혼자 나타났다. 그는 목이 마르다고 하면서 소다수를 시키더니, 굵은 목의 심줄이 요란스럽게 요동을 하며 단숨에 들어마신다.
『나 말야, 미스양 보고싶어서 왔어?』
미(美)라는 것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에 웃음을 담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웃으며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낡은 바가지에다 눈 코 입을 박아 놓듯, 오뚜기 같은 얼굴이었다. 어리숙하게도 보이고, 자로니 그다지 보기 싫은 얼굴은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일부러 좋아하는 척 했다.
『집에 안가?』
『전 여기서 자요?』
『그래? 그럼 무어 하나 사주께 나하고 같이 산책할까?』
『뭘 사주시겠어요?』
『「아이스크림」 어때?』
『그런건 애기들이나 조아하죠 뭐?』
『핫핫… 좋아, 그럼 미스양이 원하는걸 사주지?』
『정말이야요?』
『난 거짓말 안해!』
바가지 신사는 찻값을 치르고 먼저 나선다.
다방에는 마담은 없고 미스박과 둘이 있었는데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미스박은 내가 나가려고 「코트」를 입자 붙든다.
『나혼자 두고 어딜 가니?』
『문 닫을텐데 어떠니?』
『괜히 처녀가 저런 사람 따라 다니는거 아냐?』
『3왜?』
『그러다가 괜히 나이 많은 사람과 연애되면 어떻게 하니?』
『난 연애됐으면 좋겠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딱 벌리고 섰는 미스박을 뒤로 남기고 층계를 내려섰다.
『뭘 사고 싶지?』
바가지 신사는 걸으면서 묻는다.
『구두 사주세요!』
신이라고는 「산달」밖에 없었다. 「코트」를 입은 이상 「하이힐」이 신고 싶었다.
『좋아!』
가까운 양화점에 가서 그는 8백원짜리 검정색 「하이힐」을 나에게 사주었다. 「산달」은 구두 곽 속에 넣고, 「하이힐」을 신고 나섰다.
갑자기 바가지 신사가 눈 아래로 내려다 보이도록 내키가 커졌다. 그리고 한결 어른이 된 기분이 든다.
구두를 얻어신은 김에 곧 돌아가려니까 그는 좀 더 산책하자고 하며 나의 가정환경을 묻는다.
부모없는 고아라고 간단히 대답해 버렸다.
한 십분쯤 덕다가, 나는 다방에 내가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고, 그와 헤져서 돌아와버렸다.
미스박은 「하이힐」을 보자 시기하는 눈으로 그 손님이 사준거냐고 묻는걸, 내 돈으로 산거라고 시침을 뗐다.
다음날 나는 다방안에서도 「하이힐」을 신었다. 조금 작은 구두의 길도 들일겸, 또 「리드미칼」한 굽소리를 내고 싶었다.
마담은 굵직한 백금 반지를 끼고 있는데,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나도 백금반지를 손에 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