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80) 虛實(허실) ③
발행일1965-01-10 [제454호, 4면]
그 후 일주일간에 나의 주변에는 어떤 변화가 가로질렀다.
「미스터」강은 내가 예상한대로 우리를 속였고 양부의 마지막 재산인 육만원은 그의 손에서 빠져나오지를 안았다. 약속한 다방에 양부와 함께 갔을 때 「미스터」강은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우리가 땅문서를 가지고 오지 않을 것을 알자, 그는 「카운터」로 전화를 걸러 간다고 일어서더니 화장실로 가는척 하면서 내빼고 말았다. 양부의 조급한 안색에서 기미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양부는 그날 경찰서에 가서 「미스터」강을 고발하고 밖에는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도 「미스터」강한테 속은 것이 분했으나, 양부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미스터」강이 밉다기 보다는 내가 그를 이용하지 못하고 되려 이용당하고 속아넘어간 것이 안타까왔다.
만약 「호텔」에서 최후의 일선을 허락했으면 어찌할번 했을까?
위험한 순간에 내 자신을 지켰던 것만은 통쾌했다. 며칠 후에 「미스터」강에 대한 고발장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마침내 신문기자의 취재거리가 되어 사회면에는 그의 사진과 사기행각의 조목들이 자세히 났었다.
그 신문을 보고 양부는 잠시 허탈한 사람같이 앉았다가 갑자기 병난 오뚜기 모양 픽하고 몸이 쓸어진다.
양부는 그날부터 왼쪽 반신을 전혀 못썼다.
의사를 불러와서 진단을 하니 고혈압이라 하였다. 한동안은 횡설수설 뜻모를 말을 하더니 주사를 맞고 수시간 안정을 한 뒤에야,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강, 그놈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다.…』
양부는 누워서도 이를 갈았다.
그러나, 나는 양부의 그 모습에 대해서 아무런 동정도 가지 않았다.
강을 믿은 양부가 잘못인 것이다.
양부는 강을 밥으로 알고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먹힌 것 뿐이었다.
결국 허실(虛實)이 뒤엉킨 연극에서 양부보다는 「미스터」강의 연기가 높았을 뿐이었다.
기거가 불편한 양부는 변소에도 갈 수 없었으므로 그 뒷치다꺼리를 일일이 내가 하게 되었다.
하루 이틀 날이 가니, 양부는 차즘 기가 죽어 들어갔다.
『예수라도 믿어 볼까?』
하루는 이렇게 말한다. 내 가방 속을 찾아보니 십이단책이 있기에 그의 베개 머리에 아무말 않고 놔주었다.
며칠동안은 조용한 표정으로 읽고 있었다.
그러던 하루, 취직자리를 구하려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오니, 잡지에 난 불상(佛像) 사진을 찢어서 벽에 붙여 놓고 눈을 감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있었다.
『아버지, 그리스도보다 석가모니가 더 좋으세요?.』
『모른다. 이것 저것 빌어보는 중이다!.』
양부는 웃지 않고 나직이 말하며 다시 눈을 감고 염불을 외웠다.
그 후 열흘이 지나도 그의 병에는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인삼 녹용이나 데려 먹어 보았으면….』
양부는 커다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날 그날 조석 끓이기도 집안 물건을 하나 하나 팔고 있는 형편에 그 비싼 약재를 무슨 돈으로 사라는지 몰랐다. 나는 대답 없이 가만히 있었다.
『너를 키워준 애비가 이꼴이 되었는대도 너는 근심이 안 되냐?.』
양부는 원망과 애원이 뒤섞인 시선을 보낸다.
『돈이 있어야잖아요?.』
나는 딱했다.
『뒷집 처녀는 「바」에 나가서 돈을 곧잘 벌어 들인다던구나. 동생들을 공부까지 시킨다는데, 너는 애비가 다 죽어가는데 약 한톨 쓸 생각을 않는구나?.』
『「바」에 나가도 좋아요?.』
『급한데 아무거라도 해야지! 별 수 있냐? 하느님이나 부처님도 이해해 주실거다…』
『……………』
그렇지 않아도 막다른 골목에 이른지라 「바」에라도 나갈 생각을 하고 지난 며칠간은 이곳 저곳 「바」의 샂어을 알아보기도 했던 나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하느님이나 부처님도 이해해 주실거라고 한 그 말이 몹시, 귀에 거슬린다.
내가 한 때 성당에 갈려고 할 때, 책을 뺏고 내던지고 못가게 하던 그가 자기가 편리할 때는 하느님을 찾는 것이 비위에 거슬린다.
이웃에 「바」에 다니는 여자를 만나서 「바」의 수입과 분위기를 묻기도 하였으나, 문득 딴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안집의 어린 남매는 오늘도 학교서 돌아오자 찬 밥술을 우거지 김치쪽에 맛있게 나눠 먹고, 구두 목판을 들고 나란히 집을 나서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두 아이는 괴로운 일을 하러간다는 표정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저만큼 언덕바지에서 서로 킥킥거리며 떠밀고 쫓고하며 장난까지 치며 간다.
『더러운 옷을 남자같이 입고 구두닦이로 나서볼까?』
「스타킹」도 다해져서 반듯한 양장도 할 수 없는 형편도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밑바닥에 내던져 볼 모험심이 생긴다.
그날밤, 양부는 「바」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기를 재삼 권한다.
양부가 그렇게 말할수록 나는 구두닦이 노릇을 할 결심을 오히려 여미었다. 그가 만약 구두닦이를 할 망정 「바」에는 나가지 말라고 하였으면, 나는 「바」에 나갔을 것이었다.
「바」라는 위험지대는 나에게 오히려 매력이 있었으나 양부에게 반발하기 위해서 이튿날 아침 나는 구두약과 솔을 사고, 안집 남매아이의 도움을 얻어 사과궤짝을 하나 사다가, 구두닦이 목판을 만들었다. 옷은 양부가 입던, 무릎이 나간 바지를 꿰어 입고, 위는 역시 양부가 입던 목깃이 해진 헌 남방샤쓰를 입었다.
양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내 모양을 바라보았다.
『「바」에 나가서 돈 벌기는 싫어요. 제 마음 아시겠죠?』
『……』
양부는 아무 말도 못했다.
안집 남매 아이와 함께 나도 구두 목판을 들고 움막을 나섰다. 아무래도 좀 낯이 간지러워 「넥가치후」를 머리 위에서 얼굴까지 깊이 감쌌다.
살색 「스타킹」을 날씬한 두 다리에 신고 「하이힐」 끝으로 나서던 때는, 세상도 내 발걸음 소리에 장단을 맞춰, 돌고있는 것 같더니 긴바지에 나무 목판을 들고 나와보니 땅 속으로 내 몸이 반쯤 기어들어 가는 것만 같다. 그러나, 사내같이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내렸다. 마침 비탈길을 올라오는 청년이 하나 있다. 한 다리를 절룩거리는 폼이 진호같았다.
나는 그를 피하지 않고 내려갔다.
그와 나의 거리는 불과 십 「미터」로 접근했으나 그는 나를 못 알아보았다.
『진호씨?』
내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