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61) 백금반지 ①
발행일1964-08-09 [제434호, 4면]
마담에게 백금반지 값을 물었더니 2년전에 2천원을 주었으니 지금은 3천원은 하리라는 대답이다. 「레지」의 월급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큰 돈이었으나 어쩐지 손닿는 곳에 있는 물건만 같다.
다방에 오는 손님들 중에는 은근히 나를 의식에 넣고 있는 듯했다. 젊은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머리가 벗어지고 반백의 노인층들도 『미스양 때문에 우리는 이 다방에 오는거야!』하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물론 그들은 나를 연애의 대상으로는 알지 않았고, 단지 화초를 애완하는 그런 기분인듯 했다.
나도 그런 가벼운 「무드」가 편해서 그들에게는 친절히 대했다. 미군들도 가끔 오는데 마담의 분부로 영어로 접대하며 그들에게도 돈 안드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젊은 남자들 중에는 영문 소설책을 두어권씩이나 옆에 끼고 와서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곁눈질을 해가며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
마담과 미스박은 그런 손님을 누룽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솥밑바닥에 찰싹 붙은 누룽지 모양, 그들의 엉덩이는 의자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그들이 의자 누룽지가 되어 싫은 것이 아니고, 「폼」을 재는 꼴이 눈꼴이 시었다.
한번은 영어 실력을 시험해볼 생각으로 회화를 걸어보앗더니, 「비코우즈…비코우즈」만 연발하고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하이힐」을 사준 바가지 신사는 하루에 한번은 꼭 꼭 들렀다. 누룽지들을 빼놓은 손님들 호주머니 속에서 백금반지 하나쯤은 튀어나올듯한 기대를 나는 가졌다.
그러한 속셈이 있었으므로 한층 그들에게 싹싹하게 굴었다.
『미스양이 온 뒤로 우리집 손님이 늘었어…』
마담은 양성이라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좋아라고 했다.
그러나 미스박은 두틈한 입술을 씰룩거리며 좋아하지 않았다.
미스박은 「하이힐」 때문에 내가 인기가 있는 줄로 알앗는지, 자기도 「하이힐」을 마춰 신었다.
미스박과 나와 나란히 섰는걸 보고 하루는 마담이 이렇게 말했다.
『미스양이 백로(白露)라면 미스박은 가마귀다!』
미스박은 그후부터 상당히 짙은 화장을 하고 나왔다. 그러나 그는 나와같이 싹싹한 대답과 웃는 얼굴을 배우려고 안했으므로 여전히 인기가 없었다.
한번은 바가지 신자가 왔을 때 미스 박이 주문을 맡으러 갔다가 투덜거리며 돌아왔다.
『별 사람 다 봤네 차마시러 온 사람이 아무한테나 차를 시키지 않고, …얘, 미스양 네가 와야 차를 시키겠단다!』 하고 암상을 부린다.
『오케이』
나는 명랑하게 대답하고 바가지 신사 앞으로 갔다.
『오셨어요?…』
나는 싹싹하게 미소를 보냈다. 처음에는 웃는 얼굴이 퍽 어렵더니, 몇번 해버릇 하니 기계적으로 나왔다. 손님들은 차만 마시러 오는 것이 아니고 「레지」의 미소라는 덤을 바라고 있었다.
「파인쥬스」를 먹겟는데 얼음은 한덩어리만 띄워죠? 얼음이 너무 많은건 싫단 말야…』
『알겠어요. 너무 찬걸 안자시겠다는 거죠, 염려마세요. 얼음 꼭 한덩어리만 띄워 드리죠…』
나는 일부러 긴 대답을 했다. 미스박은 이런 경우 귀찮은 표정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턱만 끄덕하고 돌아선다. 손님들은 입을 사용하지 않고 턱을 사용하는 대답을 과히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다방의 「레지」가 된 덕분으로 미소와 대답이 사람의 기분을 얼마나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덕분에 하루에 한번은 영화구경이나 식사를 같이 하자는 청이 들어왔다.
식사는 사양하지 않고 따라갔으나 영화만은 시간이 허락지 않아 가지를 못했다.
그러던 하루, 바가지 신사가 나타난 저녁무렵에 진호도 잇달아 들어와서 바로 건너편 「복스」에 앉았다.
바가지 신사의 앞이라 일부러 그에게는 냉담히 대했다.
그러자 그 두 사람 사이의 빈 자리에 또 단골 손님인 대머리 사장이 와서 앉았다. 무슨 회사 사장인지 몰라도 마담이 정사장이라고 불렀다. 다방에 오는 손님들 직함에는 사장이 굉장히 많았다. 전기요금 받으러 오는 수금쟁이 같이 보이는데도 사장, 깡패같이 생긴 새파란 젊은 사람도 사장, 모두 사장이었다.
그 중에도 대머리 영감 정사장만은 옷차림이나 말하는거나 두둑한 얼굴 생김이나 어디로보나 사장 다운데가 있었다.
『미스양, 내일 우리회사 직원들이 야유회를 가는데 한목 끼어줄까?』
『감사합니다만… 다방의 일 안보고 놀러갈 수 있어요?』
하루쯤 휴일을 얻을 수도 있었으나, 바가지 신사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라, 일부러 거절을 했다.
정사장이 가고나자,
『미스양, 내가 가자면 가지?』하고 묻는다.
『그러믄요!』
『오늘저녁 식사 같이 할까』
『아이 좋아!』
나는 살지 이상으로 기쁜 표정을 했다.
시간 약속을 하고 돌아서니, 진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마, 엽차를 안갖다 드렸군…』
나는 이렇게 딴전을 부리며, 미스박을 시켜 엽차를 보내고는 바가지 신자와 함께 다방을 나섰다.
식사보다는 백금반지에 생각이 있었으므로 근방에서 식사를 마치자, 산책을 권하여 백화점으로 그를 끌고 들어갔다.
금은시계부 앞에서 발을 멈추고, 반지들이 들어있는 유리 진열장을 들여다보았다.
『반지 사게?』
바가지 신사가 묻는다.
『지금은 돈이 없으니, 보아두는거야요. 돈 생기면 백금반지 하나 해 낄래요!』
바가지 신사의 반응을 살피니 사 줄듯한 얼굴은 아니었다.
금은부를 지나 한바퀴 돌아 나올적에
『나, 백금반지 하나 사줄 생각 없으세요?』
하고 물었다. 이렇게 말을 한 내 자신이 퍽 뻔뻔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가지 신사의 둥글둥글한 얼굴은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지금 돈가지고 나온 것이 없으니 내일이나 모래 사주지』
『그럼 약속?』
나는 바가지 신사의 굵직한 새끼 손구락에 내손구락을 걸었다. 무심코 옆을 보니 진호가 2「미터」 가량 거리를 두고 말끔히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의 뒤를 진호는 같은 간격을 두고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기분이 나빴다. 진호가 뭐라고 또 설교를 하면 적당히 꾸며댈 궁리를 했다.
바가지 신사와 헤어져서 혼자 다방으로 갈 적에,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고 총총 걸음을 놓았다.
『미스양!』
날카롭게 부르는 진호의 목소리가 뒷덜미에 쫓아왔다.
『형사야요, 사람의 뒤를 쫓아 다니게?』
『그사람 누구야?』
『우리 다방 손님이야요!』
『미스양이 그처럼 타락할 줄은 몰랐어?』
『뭐가 타락이야요. 난 가난하니까 남의 사주는 밥 한끼라도 고마운거야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진호의 손이 내 볼을 후려 갈긴다.
별안간 얻어맞은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생각하니 분했다.
『이 자식아 왜 사람 치는거야?』
나는 막말을 하며 그에게 대들었다.
『내가 타락하든 못되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나는 미스양을 동생과 같이 알고 있어…』
진호는 나직하나마 의연한 표정으로 말한다.
『………』
어쩐지 그 한마디에 나의 감정은 팍 수그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