降福(강복)
間斷(간단) 없이 사랑안에 招待(초대)하고자…
발행일1964-08-09 [제434호, 4면]
권능이 있는 분만이 강복(降福)할 수 있고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 분만이 우주에 강복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강복은 천주님만이 하실 수 잇는 것으로 되어있다.
천주님이 누군에게 강복하실 적에는 그를 바라보시며 그의 이름을 부르신다. 천주님의 사랑은 천주님 당신을 조물에게로 이끌어 놓는다. 또 천주님의 손은 삼라만상을 창조하고 성장시키며 행복하게 만드는 위력을 풍부히 발산하고 있다.
『나는 너를 바라보기를 원하며 너를 번영시키기를 원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강복은 천주님만이 내릴 수 있다. 강복하는 것은 있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배치하고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이며 전능하신 천주님의 부르심은 각 사무를 속으로부터 움직이고 있다. 강복은 또 섭리자이신 천주님의 동정을 불러 일으키며 행운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니체는 일찌기 신에 반기를 들면서 『우리는 이제 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강복하는 사람들로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물론 그도 강복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천주님만이 생명의 임금님이시기 때문에 그 홀로 강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잇었다. 그리고 우리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본성적으로 보아 걸인에 불과한 것이다.
강복하는 것과 정반대의 사실은 저주하는 것이다. 저주는 한마디로 죽음을 선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저주는 마음 속 깊이 무겁게 박히며 받는 그 죽시로 얼굴 표정에 나타난다. 그러기 때문에 저주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다소나마 상대방을 죽이려는 생각이 들어있다. 설득과 저주와 악담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이제 우리는 알았다. 천주께서 만일 누구를 저주하신다면 그 시각부터 이 저주는 그의 생명을 고갈시키기로 결시하신 당신의 원의를 표시한다.
그런데 천주님께서는 강복하는 당신의 권위를 부모들이나 신부들에게 일부 맡겨주신다. 이렇게 하심으로 자연적으로나 초자연적으로 생명을 다른 이에게 부여하도록 배정하신다.
『아버지의 강복은 아들의 집을 이룩한다.』고도 기록되었다.
강복하는 영광을 향유하는 이는 순결해야 하며 천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있기 위해서 자신을 완전히 망각할 수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강복하는 이 권리는 천주께만 해당하며 따라서 이를 제 멋대로 사용하면 강복 자체를 무익하게 하기 때문이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누구나 걸인이며 천주님의 성총을 통해서만 강복하고 명령할 따름이다.
저주는 강복과 정반대의 효능을 발생한다. 『어머니의 악담과 저주는 자녀들의 집이나 생명이나 구원을 파괴한다.』 이런 파괴는 자연계 안에서는 한낱 상징에 불과할지라도 초자연계 안에서는 실현을 보게 되는 무서운 예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어머니에게서 저주와 악담을 받고 자란 어린이가 잘 될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 아니겠는가?
천주님은 당신의 전부를 통해 우리를 강복하시며 강복과 더불어 당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신다. 당신은 우리 안에 살으시며 우리는 당신 생명에 참여한다. 이는 바로 성총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해사하시는 은혜이다.
이 때문에 신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음으로 천주의 이러한 귄위와 혜사를 대리하여 강복하고 있지 않은가?
영신적으로 강복할 수 있는 이 권한을 천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대리하는 분들에게 주시고 계신다. 혼배성사의 신비를 통해 천주님께서는 이 권한을 부모께 내리시며 신부들에게는 신품성사의 신비를 통해서 주신다. 또 성세나 견진성사를 받음으로 천주님을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영신과 모든 힘으로 사랑하며 남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도 이 권을 부여하신다.
천주님께서는 이 모든 이에게 각자 맡은 사명 안에서 당신 이름으로 강복하는 권함을 주시고 계신다.
흔히 사제는 손으로 십자를 그어서 천주님의 생명을 풍부히 내려주지만 견진과 신품성사 시에는 특히 주교가 손을 머리에 얹음으로 성신의 은혜가 충만히 내리도록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강복할 수 있는 이의 손은 천주님의 은전을 골고루 나누어 주고 창의력을 갖는 격려를 하며 사람들을 천주께로 이끈다. 이런 의미로 사제들의 손은 얼마나 거룩하며 숭고한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신부는 또 성인들의 유해나 성체로서도 강복한다. 우리는 이제 신부의 강복을 정성되이 맏아 마음속 깊이 간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