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信徒(평신도) 눈에 비친 美國(미국) 겉 핥기錄(록) - 美國(미국) 가톨릭 안팎 (24) 한국 그리는 여자대학생
한국 알아주는 미국은 가톨릭교회
발행일1964-08-16 [제435호, 3면]
미국의 상권을 쥐고있는 유태인을 위협하는 민족이 있다. 차츰 중국인들이 상가의 패권을 쥐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사람-하면 한국사람 중국사람 일본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미국사람들은 중국사람에 대한 인상을 동양의 유태인 취급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일본사람에 대한 인상은 한때 적대시하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호감을 기울이고 문화인 대접을 해주는 상 싶다.
그런데 한국인에 대한 인상은 아직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아는 이만 아는 정도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또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외교관 출신의 선배를 만났더니 이런 말을 넌지시 말해주는 것이었다.
『신형! 될 수 있으면 한국인들을 만나지 마시요. 말만 많고 뒷이야기가 좋지 않게 난답니다.』
나를 위해주는 말이라고 꼬리까지 붙여 말해준다.
이 선배 뿐만의 말이 아니었다.
나를 아껴주는 분들은 대부분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학생들도 그런 소릴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려면 한국 유학생이 없는 곳엘 가야 한답니다.』
이국 타향에 와서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돕는 미풍이 아쉽기만 했다.
물론 친목단체도 있고 학생회도 있어 이같은 상호부조의 미풍을 일깨우는 움직임이 있긴 했다.
중국 사람들은 따로 헤져 살면 장사도 잘 안되니 한데 어울려 살자고 서로 권한다.
『외딴데서 중국식당을 내서 왜? 우리 이웃으로 이사와요.』
이래서 생긴 것이 「차이나 타운」이다.
「쌘프렌시스코」나 「로스안젤스」의 「차이나타운」도 유명하지만 「뉴욕」이나 「시카고」의 「차이나 타운」도 날로 번성해하고 있다. 한국인이 많은 「하와이」나 쌍항에도 「코리안타운」은 생기지 않았다.
일본도 차츰 미국 시내를 휘어잡고 있다.
「뉴욕」 번화가에 일본 백화점이 자리잡고 화랑이 생겼고 극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선배는 한국인의반성거리로 협조정신의 부족을 탄했지만 또 무계획성도 지적하고 있었다.
『장사를 해도 그래요 밑천이 백만원 있으면 중국사람은 50만원의 일을 벌려요. 그러니까 실패를 해도 일어설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한국 사람의 대부분은 백만원의 밑천을 가졌으면 이백만원 정도의 일을 벌린단 말예요. 그러니까 한번 실패하면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거든요. 애초의 생각은 일을 벌리는 동안 어떻게 되겠지-하는 생각이겠지요.』
내가 한국 땅에 살고 있을 때는 눈에 띄지도 않고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던 것이 미국땅에 와서 다른 민족과 비교가 되니 여러가지 되새겨지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국사람의 우수성이란 자타가 공인한다.
이 개별적인 우수성을 어떻게 종합해서 현양하느냐가 문제 같기만 하다.
한국마을이 미국에서도 생겨야겠지만 특색있는 민족으로 등록할 수 있는 여지는 너무나 많은상 싶다. 6·25사변을 통해 「한국」을 알게됐고 또 하나는 가톨릭의 전교회를 통해 한국을 알게된 어느 미국 여대생을 만났더니
『아 그래요? 한국에서 오셨어요? 그럼 서울인가요? 인천인가요?』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주 친한 친구를 맞는 태도였다.
『어떻게 그리 한국 사정에 밝아요?』
그녀는 책꽂이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메리놀」회서 발간한 잡지였다. 한국에서의 「메리놀」회 활동상이 소개돼있었다.
『학교를 마친다음 「메리놀」 수녀가 되어 한국에 가려고 해요』 그녀의 파란 눈동자 속에는 파란 꿈이 서려있었다.
동양중에서도 한국을 알아주는 곳은 역시 미국안의 가톨릭기관인상 싶었다.
「코리아타운」은 없어도 미국인들의 「코리안」을 위한 「타운」은 여기 저기서 산견할 수 있은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