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무엇인가? (3)
敎會(교회), 곧 그리스도
聖經(성경)만이 信仰(신앙)의 모든 바탕 아니다
발행일1964-08-30 [제436호, 1면]
성경이 있고(물론 여기서는 신약성경을 뜻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신앙하는 자들의 단체, 즉 교회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어떤이들에게는 괴이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혹은 그것은 성경을 경히 여기는 소치가 아닐까 하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성경을 경히 여긴데서 온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도 성경을 소중히 하고 보존해오며 모든 위험에서 구하여 온 것이 다름아닌 가톨릭교회이다. 또한 이것을 교리와 신앙생활의 바탕으로 하는 것이 역시 이 교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교회가 난 것이 아니다. 즉 성경 이전에 교회가 먼저 있었다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성경이 교회에서 나왔다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서 뿐 아니라 교회는 성경을 읽은 사람들의 집결된 신앙체험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닌 교회 형성의 본래적(本來的) 모습에서 달리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교회가 성경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 아님을 재강조하는데는 파견=설교-들음-믿음이라는 이 단계질서 안에 생활하신 그리스도, 언제나 이 교회와 함께 있다는 더 깊은 뜻이 있다.
그것은 단지 파견한 이가 그리스도이고 설교의 전내용이 그리스도인데서만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종도들을 파견함에 있어 그들과 함께 세상 마칠 때까지 같이 있을 것을 확언하였기 때문이다. (마테오 28장 20절)
종도들의 파견이 곧 교회의 파견을 뜻함을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세상 마칠 때까지 함께 있겠다.』는 그리스도의 그 약속의 말은 바로 이 종도들의 바탕 위에선 교회를 향하여 한 것이다.
여기 우리는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위하여 역사적 시간 안에 파견된 현실임을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종도들의 사명계승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구속사업 계승이다.
따라서 어느 시대에 어느 곳에서 누가 듣고 믿게되든지 그 들음과 믿음을 위한 파견과 설교는 종도들의 그것을 이음에 있어 종도들의 파견-선료와 동질적(同質的)일 뿐 아니라 그것과 또 동시적인 효과를 가진 것이다.
그리스도는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들음이요 또 너희를 업수히 여기는 자는 곧 나를 업수히 여김이요 나를 업수히 여기는 자는 곧 나를 보내신 자(천주성부)를 업수히 여김이니라』(누까 10장 16절) 하였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설교 즉 종도들의 설교에 말하는 이가 그리스도였듯이 오늘 교회의 입을 통하여 말하는 이도 그 같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승리를 통하여 언제나 생활하고 그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다.』(헤브레아 13장 8절) 교회는 결국 그를 통하여 그리스도 현실세계 안에 살고 행하는 가견적(可見的) 유기체(有機體)이다.
이 교회를 거역함은 바로 그를 보낸 천주성부를 거역하는 것이다. 개종 이전의 바오로 즉 사오로가 교회를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꾸스」로 말을 달렸을 때 그리스도는 그에게 『사오로야 사오로야 너 어찌 하여 나를 핍박하느냐』(종도행전 9장 1절-4절)고 그와 교회를 동일한 것으로 말하였다.
교회를 이같이 시작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또 「천상 예루살렘」으로 완성될 때까지 동일한 것으로 만드는 이는 물론 천주성신이다. 그러기에 교회의 가르침은 그르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파견되고 설교하는 교회가 어떠한 권위의 뒷받침 위에 서있는지 이해하면서 동시에 오늘의 교회가 옛날의 그것과 같이 어떻게 인류구원의 교회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볼 때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위해 역사적 시간 안에 파견된 현실인 동시에 그리스도를 이 시점에 있어 시현(示顯)하는 주체(主體)이다. 따라서 성세때 수세자(授洗者)와 성세지원자 사이에 교환되는 문답은 교회와 인간 사이에 대화일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인간의 대화이다. 성세에 있어 인간이 대면하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리스도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받는 구원이 현실적일 수 없다.
성세에 있어 뿐 아니라 모든 성사에 있어 신앙생활 전부에 있어 신자가 받는 것은 「어떤 무엇」의 은총이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교는 도대체 추상적 진리체계 또는 빋을 교리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흔히 교리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관념을 가질 수 있지만 교리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불완전하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스도자의 실존은 무슨 「이승」 즉 사상체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자의 실존은 그리스도 안에 세워져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그리스도를 입는 자」 가 그리스도 신자다. 이와같이 교회는 현실에 있어 그리스도를 인간과 세계에 주는 주체(主體)이다. 우리는 물론 이 교회가 현실에 있어 인간으로서 구성되어 있고 따라서 인간적인 시대적인 제약성을 받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또 그 때문에 다른 어느 인간단체의 그것과 같이 교회의 모습도 현실에 있어 불완전할 뿐 아니라 교회성원인 인간의 죄의 부담까지 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 관점에서 본 교회는 죄인들의 교회이기도 하다. 분명 현실의 교회는 아직 「새로운 예루살렘」(묵시록 21장 9절 이하)은 아니다.
아직도 『천주 만사에 있어 모든 것이』(코린토 전서 15장 28절) 되어있지 않다. 아직도 투쟁하는 교회, 인류의 죄의 십자가를 지고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로서의 교회이다.
그러나 이 교회는 그 근원이 세상이 아니다.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에서 오지 않았다. 교회는 세상 안에 보내진 은총 「천주의 나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는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구원이 된다.
인간의 단체이면서 동시에 「천주의 백성」이다. 따라서 거룩한 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피로 그와 배합(配合)된 정배(貞配)이다. 그 때문에 또 그리스도와 하나이된 그의 몸이다.
인간과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 가지신 천주의 뜻은 무엇이든가? 아담의 타죄가 천주성자를 강생케 한 제일의 이유가 아니다. 그것은 천주의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유명한 「목자」의 저자(著者)가 『교회는 만물에 앞서 창조되었으며… 그를 위하여 세계는 만들어졌다.』고 하였을 때 이는 과언이었을까?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