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0回(제10회) 全國學生大會(전국학생대회) 輿論調査(여론조사)를 中心(중심)하여
大學生들의 一致展望
가톨릭大學 宗敎社會學會 提供
一致 親敎가 保守的
相互 理解時 急性 露出
聖經 知識 不足… 缺陷 으뜸
앞서야 할 自體 凾養
一致方法論, 姿勢는 健全
발행일1965-01-31 [제456호, 4면]
■ 프로테스탄의 反應
【承前】 대화에 있어서 프로테스탄의 반응은 그들과 접촉을 건전하게 지속시키는데 특히 중요한 면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통해 그네들이 대 가톨릭관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학생사회에 반영된 프로테스탄의 모습인 것이다.
첫째 그네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고집하고 있었다.』가 54.9%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가 18.9%, 『가톨릭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는 응답이 17.1%,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가 9.1%의 순위로 되어 있다. 즉 접근적 자세가 36%, 경원의 자세가 64%로 접근자세보다 거의 배수에 육박하고 있다. 이 사실에서 통합을 위한 상호 이해에 쌍방이 얼마나 조심성 있는 접근을 해야할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해 주는 것이다. 이는 현 한국 프로테스탄 교파 중 상당수가 WCC 운동에서 탈피했다는 사실의 내면적 반증이 되겠다. 그러므로 통합 문제에선 프로테스탄이 가톨릭보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농후할지 모른다는 어느 정도의 암시를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접촉대상이 대부분 「인테리」일 것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프로테스탄의 가톨릭 이해가 아직도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자편에 나타난 반응이 남ㅁ자편보다 경원의 자세가 훨씬 높다. (경원자세-ㄴ마자 58% 여자 68%)
이상과 같이 밝지 못한 반응이 나타나는 프로테스탄의 가톨릭 이해에 힘드는 문제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일까? 제2표(前號參照)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해에 힘든 문제들은 ①성모공경문제, ②교황권 문제, ③고해성사, ④면죄부(대사) ⑤성직자의 독신생활, ⑥성상공경의 순위로 되어 있다. 그리고 남녀 구분을 보면 여자편이 성모공경 문제가 48.6%를 수위로 하여 다음이 고해성사가 45.7%로 순위가 되어 있는데 비해 남자편은 교황권 문제에(38.1%) 더 촛점을 두고 있고 다음이 성모공경 문제로(35.5%) 나타나고 있는 사실은 흥미 있는 일이다.
남녀 모두 성모공경 문제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문제로 나타나는 것은 그네들이 아직도 가톨릭이 마리아 교회라는 무지한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 가톨릭측의 성모공경에 대한 태도가 잘못 표현됐을지도 모를 지나친 「데보띠즘」(경건주의)의 영향에도 있지 않을지 반성할 문제이다.
이상에 열거된 여러 문제들의 이해의 관문은 우리 자신드르이 기술적인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통합문제에 가장 난점인 성모공경 문제와 교황권 문제가 한국의 프로테스탄 형제들에게도 가장 어려운 숙제로 나타난다.
■ 우리가 反省할 點
대화 중 가톨릭 학생들이 느낀 반성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화에서 부족을 느낀 점은 성경지식 64.6% 교회사 지식 13.7% 일반 상식 1.6%의 순위이고 8.8%가 부족을 느끼지 않았다. 11.7%가 모르겠다고 응답하고 있다. 성경지식의 부족을 통감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또 희망적인 자세이긴 하다. 그러나 이같은 성경지식 부족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련만 신약성경을 갖고 있는 학생은 72%까지 되나 신약성서를 한 번 읽어 보았다고 응답한 학생은 49.5%밖에 못 되는 한심한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72%라는 응답수를 많다고 보아야 할까? 적어도 크리스챤이요 「인테리겐챠」로서 학생회 대의원의 자격을 가진 사람들 중에 성경조차 갖지 않은 학생들이 28%까지 된다는 사실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신약성서를 한 번 읽지도 않은 50% 이상의 학생이 통합운동의 대화에 임하였다는 점은 오늘날 한국 가톨릭의 성경관이 건전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거의 69% 이상의 학생이 성경지식의 빈곤을 통감하면서 어찌해서 성경을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것이 과연 학생편의 책임으로만 돌려야 하는지 얼핏 촛점이 잡히지 않기에 말이다. (이 점은 학생들이 「셀」 운동을 통해서 성실하게 새로운 자세를 취하는 것 같다.)
▲둘째 프로테스탄에서 본받을 점은 성경공부 45%, 열성 21.6%, 찬송가의 대중화 11.7%, 청년운동 11.7% 헌금 9.0% 예전의 단순성 1.8% 문화정책 0%의 순위로 응답이 나타나고 있다. 역시 성경공부가 첫자리를 차지한다. 이와같은 현실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학생지도의 아니 교회의 진정한 지도자세일줄 믿는다. 성경공부를 통감하면서도 선듯 그 실현에 옮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는 냉철히 반성해 볼 필요가 있겠다.
다음으로 학생운동과 직접 연관되는 잘 발전된 청년운동과 문화사업 방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물론 타문제들이 현실적으로 더 긴박한 문제였기에 그리 되었겠지만 특히 문화사업면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음은 학생들의 시야가 그리 넓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쨌든 성경공부와 열성을 본받으려는 태도는 크리스챤적이고 젊은이다운 현실적 자세이다. 응답빈도가 높은 부면은 그만큼 가톨릭의 내적 결함도 될 수 있으므로 이 문제점들을 교회는 길이 반성해야 할줄 믿는다.
■ 理解하려는 勢力
이제까지 분석한 여러 여건을 참작하며 프로테스탄 형제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의 노력을 살펴보자.
60% 정도의 응답빈도를 차지하는, 예배광경을 구경간 정도는 별 의미를 못 주고 있으나 15.3%나 차지하는 프로테스탄 예배에 적극 참여하였다는 학생들의 응답에는 주의가 끌린다. (프로테스탄 미숀계 학교에선 예배 참석을 학점제도화하여 강제로 예배에 참석시키는 학교도 드물지 않다는 점을 유의해야겠다) 예배 참석의 점, 부당성을 여기서 논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는 현실이니까 과연 이같은 행위가 이해의 노력의 방법으로 적절한 것이냐 하는 점과 또는 이 정도의 적극성을 띤 학생들의 믿음이나 지적 준비자세 애덕의 균형 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계획된 지도에 의한 것인지 개별적 행위였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여백을 남겨놓는다.
프로테스탄에서 발간하는 잡지 「팜프렛」 신학생도 16.2%나 된다.
여하튼 금번 학생대회의 결의문을 보아도 각 교구에 프로테스탄 연구기관을 둘 뿐 아니라 프로테스탄 학생과 공동으로 연구 계몽 강연 자선 진료 등의 사회봉사 활동을 전개함으로 그 유대를 견고히 하기로 한 이상 앞으로는 프로테스탄 형제와의 접촉기회도 훨씬 높아지리라 미든ㄴ다. 차제에 위에 분석한 여러 문제점들을 고려하여 그에 대응하는 자체 내의 적절한 지도적 대비는 급선무가 되리라.
■ 結合의 姿勢
통합의 전망이 소극적이고 이에 대한 준비가 불실함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위해 성실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현실적 과제인 동시에 의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학생들이 관망도 하고 소망도 하는 방법론적 방향은 다음과 같다.
①공동기도를 통한 방법이 51.3% ②사회 및 문화사업의 공동활동을 통한 방법이 34.2% ③신학자들의 의견일치가 10.8% 그리고 교회지도자간의 정치적 해결 0%의 순위다. 즉 정치적 해결을 바라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 이는 올바른 자세라고 보여진다.
우리 스스로가 할 일은 무엇일까? 그들은 다음과 같이 응답하였다. 사랑으로 그네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응답이 45.9% 가톨릭 교회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는 학생이 41.4%로 전(前) 질문에 육박한다. 그리고 자연스런 접촉만이 좋다는 소극적 자세를 취하는 학생이 9.9% 교리를 통해서 설복시켜야 한다는 전투적 학생은 단 한 명 뿐이다. 먼저 애덕으로 너그럽게 대해야 할 것이지만 가톨릭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도 빠질 수 없는 중대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사랑의 건전한 발전이 결실하기까지엔 나 자신을 철저히 아는 데 있다. 이것이 대화적 접촉을 전제로 할 때 더욱 그러하다. 양 응답간에 비율차가 많이 나지 않는 것은 학생들의 정신적 자세가 건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프로테스탄과 초교파적으로 합동연구나 행동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학생이 72% 시기상조라고 약간 경계하는 학생이 16.2% 반대가 4.5% 모르겠다가 7.2%이다. 결의문의 실증적 반증이라고나 할는지 진보적인 태도들이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분석 비판한 바와 같이 이를 위한 자체 내의 보다 더 조직적이고 확고한 정비가 있어야 할 줄 믿는다.
■ 結論
대부분의 학생이 일치의 전망을 실망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면서도 노력해야 한다는 정열적 의지를 확고히 드러냈다. 그러나 정열이나 막연한 관념만으로는 산적해 있는 현안(懸案)의 타개에 효과를 낼 수 없다.
구체적인 자세의 기준이 서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지도측의 착안도 철저치 못한 인상이 짙다. 결의문에서도 시사한 바와 같이 프로테스탄과의 접촉도 현실적인 문제인데 여론조사 반응에 나타난 현상으론 대프로테스탄의 자세가 만족할 수 없겠다. 즉 그 접촉빈도나 대화의 내용 프로테스탄의 반응을 살필 때 공동으로 연구나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이해와 익숙한 대화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차제에 인내와 용기 사랑으로 장애를 극복할 더 굳건한 정신무장이 급선무의 과제인 것 같다. 그리고 대화의 「리드」에 있어서 가톨릭학생의 크리스챤으로서의 지적 준비(성경)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것은 범 크리스챤적 대화 실천에 결정적 결함임을 간과해선 아니된다. 도대체 성경을 모르고 그들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교회는 이 결함을 조속한 시일 내에 극복하기 위해 적어도 성경연구의 「무드」를 조성해 주어야 할 것이다. 사실 가톨릭에선 성경을 읽게하려는 노력이 너무나 미미하다. 대학생 대표들이 성경을 읽은 사람이 50% 미만이라면 프로테스탄과 대화를 가져야 할 한국 가톨릭의 앞날은 그리 밝지 못하다.
고무적이고 진지한 연구회의 결론을 실천적으로 결실시키기까지엔 보다 더 많은 과제가 가로놓인 것 같다. 이는 학생회만의 과제가 아니라 바로 한국 가톨릭의 과제인 것이다.
(끝)
-文責在李鉉益